아주 이른 결혼으로 이십 대 초반에 아이를 낳았다. 꼬물거리는 아이를 안아주는 것도 내게는 벅찬 일이었다. 육아서에는 아이의 성장 발달 과정에 따른 안내와 주의해야 할 점들이 빼곡히 적혀 있지만 정작 아이에게 어떻게 해 줘야 하는지 나는 늘 망설였다.
<<부모 인문학 23>>은 자녀교육 마음가짐을 바꿀 새로운 시선을 던져준다. 인문학적 사유를 통해 부모의 입장과 아이의 입장에서 상황을 설명하고 재해석한다. 아이들은 매 순간 감정과 행동이 변한다. 그것을 예민하게 찾아내고 공감하는 일은 어렵다.
아이가 갑자기 학교에 가기 싫어했다. 이유도 말하지 않았다. 그저 온몸으로 온마음으로 아이는 학교를 거부했다. 홀로 두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늘 아이의 시선에서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자녀를 키우는 과정은 실존적 수행이다”
아이는 아팠다. 몸도 마음도 지쳐 있었다. 아이는 친구들 사이에서 받은 상처를 자해로 표현했다. 처음, 아이의 고백을 들었을 때, 나는 나를 자책했다. 왜 몰랐을까, 후회도 들었다. 자주 여행을 가고 자주 영화를 보고 자주 쇼핑을 했었는데... 나는 위장된 안심 속에서 살고 있었다. 아이가 주체적으로 살아가겠다고 했을 때, 나는 흔쾌히 아이의 편이 되어주었다. 아직, 아이가 내 곁에 있기에, 아이가 살아 있기에 무엇이든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무리에서 이탈할까 봐 눈치보는
한 마리 양이 되게 하고 싶은가”
중학생이 자퇴를 하는 일은 아이도 엄마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아이는 친하던 친구와의 잠시간의 이별과 주변 친구들의 모든 연락을 끊었다. 나는 아이의 담임선생님부터 교장선생님까지의 면담이 진행되었다. 모든 면담의 결과는 ‘그래도... 학교는...’이었다. 그러나 나는 아이의 마음이 먼저였다. 아이는 쉬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시간이 날 때마다 여행을 다녔다. 오랜 시간 바다를 바라보거나 초록의 숲을 걸으며 각자의 내면으로 빠져들었다.
“내면을 돌아보지 않으면 어린 시절의 경험에 갇힌 채
현재를 살게 될 지도 모른다”
나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모두 개근상을 받았다. 초등학교 때에는 빈혈이 심해 운동장에서 자주 기절을 했다. 담임선생님은 하얗게 질린 내 얼굴에 아프다는 이유로 나를 조퇴시켰다. 집으로 돌아가 마주한 엄마는 나를 다시 학교로 돌려보냈다. 학생은 학교에 있어야 한다면서. 그 뒤로 나는 기절을 해도 학교에서 묵묵히 수업을 다 받고 집으로 왔다.
엄마는 사남매의 맡이로 동생들을 뒷바라지 하느라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학교에 가고 싶은 열망이 나에게까지 영향을 미쳐 나는 늘 모범생이 되어야 했다. 나의 엄마의 생각대로 나의 아이를 대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아이가 혹은 내가 둘 중에 하나 아니 둘 다 서로에게 질려서 서로를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학생은 공부를 해야 하고 학생은 학교에 가야 하고 학생은 이건 하지 말아야 한다는 엄마의 생각이 나의 내면에 남지 않은 것은 참으로 다행이다.
엄마는 아이가 학교를 그만두었다는 말을 나중에 듣고서는 학교를 폭발하겠다며 난리가 났다. 어떻게 학생을 포기하는지, 아이를 힘들게 했던 친구들이 누구인지 색출해야 한다고 마음이 방방 뛰었다. 나는 엄마의 통제 속에서 자랐다. 그러나 나와 함께 한 책들 덕분에 나를 마주보고 타인을 마주보는 법을 배우고 행동까지 나아가게 되었다.
“품위 있는 아비투스는 자녀 인생의 강력한 자산이다”
문화적 아비투스는 아이에게 새로운 환경으로 작용한다. 나는 여기에 심리적 아비투스를 더하고 싶다. 부모의 안정된 심리적 환경은 아이의 정서에 영향을 미친다. 책을 보더라도 행동하지 않으면 그저 책 안에 머물게 된다. 말과 행동 그리고 주변의 분위기까지 바뀔 수 있는 품위는 마음으로부터 나온다.
아이가 용기를 내서 내게 학교를 그만둔다고 할 수 있었던 것은 엄마를 믿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제 편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멈춘다고 그만두는 것이 아닌 잠시 쉬어가는 것을 선택한 그 시기를 지나고 아이는 다시 학교를 간다. 아이는 쉬면서 자신의 인생 계획을 세우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배우고 생각하고 다시 첫시작을 했다.
아이는 키도 몸도 자란다. 그리고 자신 스스로가 누구인지 물어보면서 생각과 마음이 성장한다. 부모는 역시 아이라는 위대한 손님을 맞이하면서 생각과 마음이 성장한다. 서로가 함께 한 사람으로 빛난다. 그게 인문학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