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든다는 것은 잃을 것이 많다. 가까운 가족이 죽거나 친하던 친구가 하나 둘, 세상을 떠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버릴 것이 점점 많다. 욕심을 버리고 물욕을 버리고 무언가에 대한 기대를 버린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포기해야 하는 것이 많다. 가볍게 오르던 산행을 포기하고 바다를 가르며 물개처럼 재빠르게 파도를 탔던 것도 포기한다. 청춘은 늘 마음에 그대로 자리 하지만 몸은 늙고 얼굴에는 세월의 흔적이 그려져 있다.
그러나 나이가 든다는 것은 얻은 것도 많다. 지난 세월이 준 경험과 주변의 사람들에게 받은 사랑 그리고 따뜻한 가족이 있다. <<노을 따라 세월은 흐르고>>에는 그 나이듦이 글 속에 녹아져 있었다.
저자의 나이 여든, 그 나이가 주는 무게감에 그의 글이 세월을 역주행 해 한 사람의 생이 그림처럼 지나간다. 어린 시절의 가난함이 청년 시절의 고단함이 종교를 품고 살아가던 단단함이 그리고 지금의 울창한 숲속에 높게 솟은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저자의 글을 보면서 나는 할아버지가 생각이 났다. 평생 농사만 짓다가 생을 마감한 한 소년의 삶이 겹쳐졌다. 인천에서 피난 온 할아버지는 책을 좋아했지만 공부를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할아버지는 다섯 살의 동생에게 밥 한 그릇을 먹이려면 남의 집에서 새벽부터 일을 해야 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에 지게를 지고 나무를 하던 할아버지의 메마른 등에는 늘 고단함과 피곤이 쌓여 있었다. 할아버지가 볼 수 있는 책이라고는 농사에 관한 것 뿐 이었다. 조금씩 나이가 들면서 신문도 보고 잡지도 보면서 배움에 대한 한을 달랬다. 할아버지에게는 자신이 키우던 포도나무처럼 복숭아나무처럼 땅에 나무가 되길 바랐다.
가난하고 배고픈 시대를 살아간 두 남자의 삶에 나무는 그들의 삶 그 자체였다. 나의 할아버지에게는 자연에게 온 삶과 생명에 대한 감사라면 저자에게 나무는 자신의 정신적 힘인 종교에 대한 대답이었다. 자신의 삶을 온전하고 아름답게 이끌어주는 신에 대한 감사였다.
가난에 찌든 세월
정든 친구는 하나둘 고향 등지고
외로움에 홀로 둿산에 오르면
저 멀리 흐르는 금강 위로
고깃배가 한숨을 낚고 있던 그해 칠월
무심한 세월이 앗아갔는가
이제는 잊혀가는 그 여름날
아련히
아픔은 그리움으로 다가서고
세월은 어느새 노란 낙엽이 되어
내 고향 은행나무 아래
말없이 수북하게 쌓이고 있구나
=내 고향 칠월 중=
저자의 이야기가 책 속에 수북하게 쌓여 아름다운 노래가 되어 삶을 허밍한다. 그의 박자에 맞춰 울고, 웃고, 미소 짓고, 그리워하다가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우리의 삶이 둥글게 둥글게 연결되어서 ‘그래, 이게 인생이지’하며 서로에게 마음이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