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리버는 여행을 한다.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 그는 끊임없이 자신과의 한계에 도전한다. 자신의 삶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그는 모험을 포기하지 않았다.
릴리 퍼즈로부터 후이늠국까지 여러 대륙을 여행하면서 그는 그 나라의 제도, 법, 풍습, 문화 등을 배우려고 노력하고 그들의 생활방식 그대로를 존중해 준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섬 안에 산다. 스스로가 만든 프리즘에 반사된 철학이 생기고 규칙을 따르며 하나의 생활습관으로 발전시켜 나간다. 한 나라의 제도 안에서 살지만 각기 다른 한 인격체로서 자기만의 섬을 만들어 나간다.
누구를 소인국이라 부르고 그 누구를 후이늠국이라 부를 수 있을까. 나를 바라보는 상대방의 시각에 따라 그 섬의 이름을 여러 가지로 불릴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은 점은 언어였다. 걸리버는 섬에 표류하자마자 언어의 불통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그래서 그는 언어의 장벽을 허물기 위해서 그들이 쓰는 언어를 배우려고 노력한다. 그 언어를 전부 알 수는 없지만 의사소통이 가능한 정도로 그는 언어를 습득하고 언어의 의미를 해석하고 이해한다.
그러나 걸리버가 겪은 모험을 설명하기에는 후이늠국의 언어는 한계가 있었다. 그 나라의 언어는 그 나라의 생성과정과 함께 발전해 나간다. 경험의 비례만큼 언어의 사용 깊이도 비례하는 것이다.
이것은 달리보면 각 개인이 가진 경험의 크기가 그 사람의 언어 영역을 만들고 그 사람이 살아갈 나침반의 역할을 하지 않을까 한다. 나침반의 크기가 아닌 그 나침반이 가진 무게만큼 우리가 살아갈 방향은 달라질 것이다.
당신은 어떤 나라에서 살고 싶은가. 당신은 어떤 섬을 만들며 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