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공간에 머문다.
집, 학교, 사무실, 공연장, 카페 등등의 공간은 목적에 따라 그 장소가 가진 의미가 달라진다. 헤어진 연인과 자주 오던 카페는 그리움과 안타까움으로, 전직장은 이루지 못한 꿈으로, 학창시절의 학교는 공부에 대한 압박 등등 그 공간이 주는 느낌은 다양하다.
유현준의 『어디서 살 것인가』에는 다양한 공간이 나온다. 학교부터 다리까지.
이 공간은 그저 하나의 건축물이 아니라 삶의 한 부분으로 자리하고 있다. 도시의 공간이 차지하는 비중과 그 공간 활용이 곧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세밀하게 건축물을 그려내고 있다.
가장 인상 깊게 본 부분은 학교다. 태어나서 가장 오랫동안 한 공간에 머문 곳이 학교가 아닐까 한다. 8시 등교, 오후 5시 하교를 하는 동안 우리는 학교 안에서 정말로 닭장에 갇힌 닭처럼 공부에 매진한다. 시간표대로 수업을 듣고 시간표대로 몸을 움직이고 시간표대로 온몸의 감각을 한 곳에 집중한다. 저자가 말한 교도소와 학교의 공통된 구조물이란 말에 갑자기 아이들의 생활이 가여워진다.
나 역시 그런 교도소 같은 학교를 나와 다시 교도소 같은(겉은 멋진 건물이지만.. 칸칸이 사무실인 건물이) 직장에서 생활하고 있다. 반복적인 일상에 반복적인 동선과 반복적인 패턴에 젖어들었다.
그러나 초등학교 앞에 있던 현충원은 아카시아 향기가 솔솔 나던 자리가, 고등학교 뒤편으로는 벚꽃이 흩날리던 그 공간의 추억은 아직까지 그 시절의 친구들과 함께 옛 기억에 머물러 있다.
창의적인 인재를 외치면서 실제로는 창의적이지 못하게끔 학교는 아이들의 생각과 몸을 가둬 놓는다. 마치 죄수들이 더 이상 범죄를 저지르지 못하도록 같은 공간에 수용하듯이 말이다.
자연을 벗 삼아 옛 선인들의 삶을 읊던 옛날 옛적은 아니지만 정말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나를 잊고 그저 돈의 순리대로 살아가고 있다. 생각의 울타리보다는 시멘트와 온갖 인공의 울타리에 나를 가두고 나의 삶을 한정해 놓는다. 즐거움과 행복의 의미를 삶의 가치가 아닌 돈의 가치로 매겨버린다.
다리 밑이 주는 여백의 미, 후드티의 내 공간, 도시 속 공원, 생각의 건축물, 소통의 공간, 사람과의 연결 다리 등등 도시가 품은 공간은 다양하게 우리의 삶에 스며든다. 그 아름다운 공간의 자리에 서로가 스며들어 마음을 나누고 생각을 나누고 서로의 삶이 풍요롭기를 바라본다.
지금 당신이 머무는 공간에는 어떤 도시가 자리하고 있는가.
지금 내가 머무는 공간에는 사람 나무가 서로 울타리로 연결되어 생각의 나무로 호흡하고 여유로운 도시이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