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할 이야기는『이렇게 일만 하다가는』이라는 신간도서의 저자, 하루키 장성민과 그의 책에 대한 것이다.
토마스가 다니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의 여러 아빠 중 한 명인 하루키는 나와 좀 특별한 인연이다. 이건 전적으로 내 생각이지만 말이다.
우린 토마스가 어린이집에 본격적으로 등원하기 직전인 2015년 2월 발리에 가족 여행을 가 있었다. 그런데 우연히 어린이집 학부모 중 하나가, "우리 어린이집 엄마들 몇이도 애들 데리고 지금 발리에 있는데요, 소개해드릴게요. 만나보세요." 하고 연락을 주어, 약간은 궁금하면서도 조금은 귀찮은 마음을 안고 남편과 함께 우연히도 머나먼 발리에서 곧 앞으로 몇 년간 안면을 트고 지내게 될 사람들을 만났다.
처음에는 어린이집 엄마들 몇 명이서 애들만 데리고 발리에 왔나 보다 짐작했다. 그런데 그날 밤, 약속 장소로 갔을 때 두 쌍의 부부가 각각 딸아이 하나씩을 데리고 여행을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아빠도 긴 여행을 함께 한 게 흥미로웠지만 더 놀라웠던 사실은 두 여자들 다 임신 중이었다는 거다. 잘은 모르겠지만 두 쌍의 부부가 어지간히도 친하지 않으면, 임신 중 여행은 고생스러울 수도 있는데도 불구하고, 오지는 않았겠거니 했다.
아무튼 그중 한 명이 바로 이번에 『이렇게 일만 하다가는』이라는 책을 쓴 장성민이다. 그때 발리에서 가진 잠깐의 만남 덕에 지금까지도 은연중에 우리의 인연은 보통이 아니게 될 것 같다고 예감하고 있었고 실로 금세 가깝게 지내게 되었다. 하루키와 함께 발리에 온 순대라는 남자는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이미 2주간 하루키와 함께 했던 여행의 감흥에 흠뻑 젖어, 발리에서의 2주가 얼마나 즐거웠는지 자세히 폴에게 설명했고, 그날 밤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돌아가는 밤 비행기를 타야 하는 신세를 무척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었다.
들어보니 하루키는 직업은 약사이나 소위 허구한 날 여행을 하는 그런 사람인 듯했다. 그의 여행은 럭셔리한 편보다는 모험적인 쪽인 듯했다. 그는 우리 부부가 몇 주 후면 어린이집의 한 식구가 될 터였기 때문에, 앞으로 여름이 되면 아빠들만 아이들을 데리고 무인도 여행을 갈 거라는 계획에 대해서도 들려주었다. 이미 아이 입학을 위해 반딧불이 면접을 볼 때 "우리 어린이집 아빠 중에는 아이들만 데리고 무인도로 여행을 가는 사람들도 있어요."라는 자부심 가득한 소개를 들은 기억이 나서 속으로 '아 그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구나 싶었다.'
그리고 어느덧 시간이 1년 반이 지나 지난주에 드디어 하루키 장성민의 책, 『이렇게 일만 하다가는』 이 출판되었다. 어제 오후에 이 책을 구해서 방금 전에 다 읽었다. 표지에는 하루키와 전혀 닮지 않은 약사복을 입은 남자가 턱을 괴고 책상 앞에 앉아 몽상에 빠져 있다. 대한민국의 성인 인구 중 취업 중인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도 제목인 '이렇게 일만 하다가는'과 표지의 인물이 어우러지는 이 분위기에 울컥하는 기분이 들 것이다.
나는 이 책을 한 번에 다 읽어내려가며 (재미있지 않다면 불가능할 일이다), 마흔을 갓 넘은 지금의 하루키가 아닌, 내가 모르던 10대 시절의 경험 적고, 순진하고 어쩌면 여자들의 입장에서 볼품없게 보일 수도 있었던 20대 시절의 귀여운 하루키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40대 애 아빠로서 현실적인 감각으로 좀 더 무장된, 홀로 떠난 그의 여행도 엿보았다.
이 책에서 그의 모험 가득했던 여행 이야기는 흥미진진했다. 애초에 목차를 보고 단번에 여행기로 이해하고 첫 페이지를 펼쳤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 이 책은 여행지와 여행지에서의 감흥과, 그곳의 경치와 지형과 이국적인 문화와 물가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결국 인간에 대한 것임을 깨달았다. 그가 마주쳤고, 여행의 일부이자 삶의 일부가 되었던 사람들, 실습용 마사지를 해주고 돈을 받아 갔던, 결국은 헤어짐의 아쉬움에 눈물을 터뜨리던 순진한 소년, 붉게 상기된 얼어붙은 볼을 한 알래스카의 여인, 하늘거리는 크림색 원피스의 이국 여자, 진지하게 두부 사업에 대한 세부 계획까지 세우던 프랑스인, 그 모든 등장인물들과 그때 저자의 감정은 책 전반에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인다. 그의 기억 여행 속의 모험과 호기심, 술과 연애 사이사이에는 언제나 인간성이 깊이 베어 있다.
우린 어쩌면 인도 어딘가에서, 배낭여행객들이 가는 저렴하고 냄새나는 숙소에서 그냥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20대의 하루키는 내 시야에 포착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깨까지 오는 노란 머리의 찢어진 청바지를 입은 하루키를 내 어린 시절 여행지에서 만났더라면, 만약 그랬다면 나도 그의 책의 한 페이지를 차지할 만한 인상을 남길 수 있었을까 궁금해졌다.
『이렇게 일만 하다가는』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대체로 회사와 집을 오가는 지겨운 삶을 사는, 개중에는 40대의 위기를 맞은 보통의 아빠와 엄마들 사이에서 그가 삶에 대한 호기심과 모험이라는 긍정적인 힘을 주는 근원은 바로 그의 마음 속의 피터팬임을 이해하게 되었고 내 주변에 여러 보석 중에서도 그가 있음이 감사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내일 인도행 비행기를 타고 하루키와 함께 먼 이국 땅을 밟을 아빠들이 부럽고, 이번 여행이 끝나면 어떤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을지 몹시 궁금해진다.
언젠가 장성민이 책을 쓰고 있다고 했을 때, 그가 선택한 하루키라는 별명처럼 될 것이라 했는데, 아무튼 내가 하루 반나절 만에 멈춤 없일 읽어내려간 이 책, 『이렇게 일만 하다가는』을 보면서 앞으로 그가 들려줄 많은 재미난 이야기에 기대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