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이나 박물관을 가면 신기하거나 눈길을 끄는 작품이 아니고서는 대체로 휙 둘러보고는 했다.
뭘 봐야하는지도 어떻게 봐야하는지도 몰랐기에 미술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나름 효율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했던 거였다.
그러나 예술 작품의 시대적 배경과 작가들의 이야기를 접하게되면서 작품을 바라보는 시각에 변화가 생겼다.
작품 그대로를 오롯이 바라보며 작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작가의 의도대로 표현된 결과물을 가만히 바라볼 시각적 여유가 조금씩 늘어난 배경에는 역시 작가에 관한 책을 읽었을 때였다.
특정 작가에 관한 책을 읽고 해당 작품을 관람해도 되지만 때론 시대적 미술사조에 관한 넓은 시각을 보여줄 책이 필요할 때도 있다. 양정무 교수의 책 <벌거벗은 미술관>은 고대 미술에서부터 포스트 모더니즘까지 각 시대의 예술작품에 대한 역사적 의미와 그것이 이후에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대해 마치 토크 콘서트를 하는 듯한 느낌으로 풀어낸다.
고대 그리스미술에서 보이는 군국주의적 분위기, 다시 말해 그리스 남성 조각들이 보여주는 육체에 대한 맹목적인 찬양은 그리스미술에 드리워진 신비를 한꺼풀 걷어내면 드러나는 어두운 그림자입니다. 사실 그리스 사회에서 스포츠가 전사의 신체 단련과 관계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운동선수조차도 군국주의적 함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p 65
유럽 여행을 갔을 때 박물관에서 마주친 수많은 그리스 조각상의 정교함에 감탄을 했지만 그 이면에 남성적 육체에 대한 맹목적 찬양이 있었을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따지고 보면 이러한 정교한 육체적 미학에 대한 찬양이 훗날 파시즘과 나치의 이론적 토대로 발전하게 되었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밝은 면만 볼 것이 아니라 이러한 어두운 면도 함께 봐야 더 좋지 않을까.
Dulce est desipere in loco
'이따금 진지함을 버리면 즐겁다'는 뜻의 라틴어란다. 그림 속 술이 담긴 항아리에 새겨진 문구인데, 술의 신 바쿠스를 찬미하는 풍류를 지닌 이러한한량들에 의해서 상당한 양의 고대 유물들이 영국박물관에 흘러 들어갔다는 설명이 꽤 흥미롭다. 빼앗긴 자에겐 약탈의 순간이었겠지만, 한량들과 제국의 입장에선 새로운 유물을 발견한 기쁨에 대한 찬사가 아닐까.
언제 다시 루브르와 영국박물관에 갈지 알 수 없지만 그때가 오면 이 책을 다시 한번 봐야겠다.
※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으나, 저의 주관적 견해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