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5~6년 쯤 전인가 의식에 관심이 있는 과 사람들이 진행하는 연구 모임에 몇 번 참여한 적이 있다.
이 때 이 책에서 언급하는 퀄리아라든가 의식통합이론이라든가 파이 등을 처음 접했는데
퀄리아라는 것부터가 직관적이지 않다보니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는 것은 그 난해함보다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는 내 방어심리가 더 크지 않았나 싶긴했지만.
이 책은 '나'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보다는
의식이나 자아를 과학적 방법론으로 어떻게든 규명해내는 데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더 어울릴 책이다.
데이비드 차머스나 대니얼 대닛, 토머스 나이젤 같은 철학자의 이론이나
줄리오 토노니, 스테니슬라스 드앤, 다마지오나 라마찬드란과 같은 신경과학자들을 들어봤다든가 하는..
아닐 세스는 TED에서 유명해지면서
우리가 받아들이는 감각 정보가 사실은 각자의 뇌에서 필터링되는 환각이라는 사실을 알리는데 공헌?을 했다.
여타 뇌과학 주제와는 달리
의식과 관련한 주제가 그렇게 이슈가 되기 어려운 것은 저자도 말하지만 '실험이 어렵다'는 데 있다.
위에서 말한 여러 이론들도 실험으로 입증된 것도 아닌 자신들의 이론을
자의적으로 '공리'라고 선언하는 것에서 더욱 지지를 약하게 만들기도 하고.
이는 경험이 주관적일 수 밖에 없다는 것과는 다른 얘기다.
각자의 주관적인 경험 그 내용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경험이 어떻게 양적으로 저장되고
활용되는 물리성을 가지게 되는지에 대한 이론이기 때문이다.
물론 통합정보이론이나 파이가 말하는 뇌에 자극을 주고 그 자극이 만들어내는 복잡성을 정량화하여
의식의 수준이나 정도를 파악한다는 얘기는 수긍이 간다.
하지만 현대 의학에서 마취 정도나 의식 정도를 파악하는 방법론과 정교성에서 얼마나 차이가 나는 지는 잘 모르겠다.
정량화가 어렵다거나 실험으로 입증하기 어렵다는 건 유사과학이 되기 쉽다는 말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건
유사과학이 되기 쉽다는 것,
그에 반발하여 곧죽어도 정량화를 이루어내고 말겠다는 것...
이래저래 이러한 기초과학영역이 (한국에서는) 지원을 받기가 어렵다는 사실이다.
의식이 있다 없다
기계에도 의식이 있을 수 있다 없다
이런 논란은 계통분류학 만큼이나 그 경계에 대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로보트 태권브이의 머리 부분 조종석에서 주인공들은 태권도를 한다.
그 행동 그대로 로봇이 따라하며 외부 상대와 싸운다.
로봇이 다치면 주인공들도 아파한다 (심지어 피도 흘렸던 듯)
이것은 '나'가 로봇으로 확장된 것이다.
지각도 공유하고 경험도 공유한다.
나라는 자아의 확장성은 자동차를 운전할 때도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반대로 자아가 없다고 생각하는 로봇조차도 때리거나 학대하면
많은 인간들이 이입하여 나쁘다고 항의한다.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로봇을 막대기로 때리는 오른쪽 장면에는 '로봇 학대를 멈추라'는 댓글이 많다.
이는 상대를 인지하는 인간 의식의 확장성을 보여준다.
이러한 경계는 어떻게 정해지는 것인가.
내가 싼 똥이 하수도를 타고 바다로 흘러가는 도중에 분해되는 분자는 나인가 아닌가
이런 생각놀음 말놀음에 불과해 보여 철학이라는 것이 지겹긴 하지만
그 나름대로 가치와 필요가 있긴 하겠지.
은근히 나는 기능주의자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