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동네 놀이터에서 주운 유성 조각처럼, 정체불명이고 매혹적인 소설이다.
한 (매우 매우 건강한!) 흑인 소녀의 절박한 성장기이자, 인종‧민족 간 갈등에 대한 선명한 우화이자, 땅에서 기원한 인간의 오랜 역사와 우주를 향한 인간의 간절한 꿈의 콜라주다. 정말로 이 모든 것이 한 데 뒤엉켜 있어 풀어보게 만드는 회로 같은 서사다.
주인공 빈티가 머리카락과 피부에 늘 두텁게 바르고 다니는 ‘오치제’는 고향의 흙이자 전통이다. 혹은 그냥 ‘고향’ 그 자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빈티는 비록, 자신의 민족 중 최초로 은하계 최고의 대학교에 가기 위해 그곳을 떠나왔지만, 고향이 자신에게 준 것들을 이해하고, 그 안에 깃든 것을 인식하고, 귀중히 지닐 줄 안다. 그 때문에 그는 흐르는 영과 소통하는 능력을 갖게 되는데, 그 능력이 곧 질서를 다루는 수학적 능력이고, 나아가 분쟁을 조율하는 능력으로까지 이어진다.
“그 아이들은 내가 ‘나무되기treeing' 한다는 말을 하면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았다. 우리는 내 방에 앉아서 바깥의 별들을 내다보면서 최고로 복잡한 방정식을 떠올리고, 그걸 반반 나누고 그런 다음엔 다시 반으로, 또 반으로 나누어보라고 서로 도전했다. 수학 프랙탈을 한참 하다 보면 절로 나무되기에 빠지게 마련이고, 수학의 바다 여울목에 넋을 잃고 휩쓸려 들어가고 만다. 우리 중 누구라도 나무되기를 못하는 애였다면 대학에 합격하지 못했을 테지만, 나무되기 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우리는 최고였고 ’신‘의 경지에 가까워지도록 서로를 밀어 올렸다.”
위와 같은 대목은 인간의 지성사가 어떻게 축적되어 왔는지를 함축해서 보여준다. 인간의 모든 지식은, 기술은, 학문은, 그리고 철학은 그토록 ‘인간적’인 동기와 과정을 통해 진행되었을 것이다. 탐구자들에게 사유와 계산은 나뉘지 않았을 것이고, 명상과 수식이 마주보았으며, 미지의 세계 앞에서 겸손하나 씩씩하게 서로를 밀어 올리는 것이 그들의 덕목이었을 어떤 시절을 통과해 왔을 것이다.
저 영리하고, 풍성한 의미를 지닌 소녀가 우주의 분쟁을 조정하고 다시 균형을 잡아나가는 모험의 끝에서, 이상하게도 이 시대의 인류가 이룬 것보다 잃은 것을 더 많이 떠올리게 된다. 책 속에서 몇 번이나 아련하게 묘사되는 오치제의 냄새, 그 축축한 땅 냄새를 언젠가 맡아본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하는데, 그 마음은 불현듯 향수의 감정과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