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도의 풍속화 <벼타작>의 장면 속엔 열심히 일하는 농군들 뒷전에서 담뱃대를 꼬나물고 이 모습을 바라보는 선비 한 명이 있다. (김홍도 풍속화 <벼타작>)
나는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를 읽으면서 이 장면이 계속 연상되었다.
과학에 대한 문외한인 저자가, 과학의 실상에 대한 진정한 이해는 도외시한 채, 자신의 문과적 감흥만을 나열하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었다.
2019년이었을까,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윌리엄 케일린(William G. Kaelin Jr.) 하버드대 의대 교수가 내한 강연에서 했던 말이 생각난다. "과학에 대한 맹목적인 찬양이나 감상적인 흠모는 과학을 핍박했던 중세의 신앙 만큼이나 위험한 것이다"
이 책에서 드러난 유시민의 과학에 대한 치기어린 문학적 감상을 지적하는 데 딱 알맞은 말이다
과학은 과학적 사고방식으로 평가할 때 의미있는 것이다.
실험실과 방정식과 각종 현장에서 기름밥을 먹어가며 과학을 몸으로 버텨내며 익혀온 이과생들의 인생 애환과 현실 속 고충이나 장벽에 대한 이해는 결여한 채, 멀찍이 떨어진 문과생의 한가한 눈으로 과학을 수박 겉 핥기 식으로 논하고 있으니, 이과출신 공돌이들 입장에선 김홍도 풍속도의 한가한 선비로 비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때, 과학은 물론이요, 세상 모든 학문을 인문학으로 재조명하려는 "인문학 지상주의"가 인기를 끌었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인간의 주관적 감성과 휴머니티라는 서사만으로 세상 모든 지식을 통섭하려는 시도는 "택도 없는" 어불성설이었음이 드러나 그 같은 시류도 한때의 유행으로 지나갔음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평소 과학에 대하여 다소의 경외감이나 두려움을 가져왔던 문과생들에게는 이 책이 작은 '위로문' 정도는 될 수 있을지언정, 이 책 한 권 읽고서 어디 가서 '나는 이과적 소양이 있소이다' 할 정도의 착각은 갖지 않기를 바란다. (같은 문과생들끼리라면 장님 코끼리 논쟁하듯 서로의 지적허영을 자화자찬할 수는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