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나선>
"유카와 마나부, 너의 죄를 사하노라."
<용의자 x의 헌신>을 재미있게 읽은 나에게 어느 순간 이 책이 발간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한창 가가 형사 시리즈를 열심히 읽고 있던 터라 평소라면 조금 나중에 읽자고 미뤘을 법도 한데 띠지에 적혀 있는 문구가 마음을 끌었다. 그의 과거를 더 깊이 있게 이해하려면 그의 현재를 알아둬야 했다. 당장 밀리의 서재를 켜서 갈릴레오 시리즈를 열심히 읽었다. 최고의 선택이었다.
갈릴레오 시리즈를 읽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유난히 탐정 포지션을 맡은 유카와 마나부의 캐릭터성이 부각된다. 물리학 교수이자 사회성이 부족한 괴짜이며 사건에 관여하지 않으려 하지만 결국 호기심이 생겨 사건의 트릭을 해결하는 주요한 단서를 주는 사람. 사람을 대하는 것이 서툰 사람의 성장 스토리는 언제나 즐겁다. 좋은 사람을 만나서 성장할 때도 있고, 아프고 슬픈 사건을 겪으며 성장할 때도 있다. 유카와 마나부는 시리즈 내내 그런 식으로 사건과 사람을 만나며 조금씩 성장한다.
다만 우리가 지금까지 만나본 건 시리즈 첫 번째 권인 <탐정 갈릴레오> 이후의 유카와 마나부이다. 그래서 이번 책이 유난히 궁금했다. 유카와가 말하는 죄는 대체 무엇이고 그의 과거에는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총상을 입은 채 바다에 떠오른 시신과 수사 과정에서 등장한 유카와 마나부의 이름. 사건에 도움을 달라며 찾아간 적은 있어도 수사 중의 그의 이름이 등장하는 건 낯선 일이다. 유카와는 첫 등장부터 이전 작품들과는 조금 다르게 등장한다. 연구실도, 현장도, 구사나기와의 술자리도 아닌 바로 그의 본가이다. 이번 편에서는 유카와의 사적인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작가의 의지가 보이는 듯 하다. 그에게도 당연히 가족이 있겠지만, 부모님 곁에 있는 유카와는 지금까지 봐왔던 것과는 달리 낯설게 느껴진다. 누구보다 추리력이 뛰어난 탐정은 사라지고, 한 남자만 남는다.
유카와의 과거가 주요하게 다뤄지고 있지만, 사건의 내용도 대충 넘어가지 않았다. 독자 스스로 다양한 상황을 생각하며 추측하고, 추리하다 보면 점점 사건의 진상이 보이고, 결말이 다가올 즈음에는 조금 아찔한 기분이 든다. 모든 사건이 끝나고 나면 그제야 유카와는 평생을 숨겨온 이야기를 담담하게 꺼낸다. 그런 것이 있다. 모든 것이 흐려져도 기억에 남을 것만 같은 어떤 날의 실수가. 몸은 다 컸어도 마음은 언제까지고 성장하기에 미숙한 과거의 실수가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다. 사과할 수 있다면 그것은 다행인 일이다. 시기를 놓치기 전에 두려움보다는 용기가 앞선 선택을 하면 좋겠다.
<특별 단편 - 겹치다>
과학적 트릭이 대부분이었던 갈릴레오 시리즈의 단편이지만 물리학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다 읽고 나면 이유 모를 감정이 남는다. 작가님이 언제부터 투병을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기 때문에 이 단편을 쓸 때 투병 중이었는지 아닌지는 모른다. 하지만 스쳐 지나가듯 등장하는 말기 암 환자에 대한 내용과 결말을 읽고 나면 어쩐지 투병 중에 이 단편이 집필되었을 것만 같다. 수많은 작품을 남겨주신 작가님께 감사와 존경을 바치고 싶다. 작가님의 글을 읽으며 독서에 흥미를 붙인 사람이 나뿐은 아닐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