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홉 단편이 끌리기는 했지만 사실 제목이 재미있어서 고른 책이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이라니, 그런 여자에게 과연 무슨 일이 생길 수 있을까? 할 일도 많고 많은 직장인이 된 뒤 호흡이 긴 장편을 읽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기에 '맛도 좋고 건강에도 좋은' 음식을 고르는 기분으로 '재미도 있고 낡아빠진 정신세계에 자극을 줄 수 있는' 책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 책은 분명 그 이상을 내게 선물했다. 체홉의 단편을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인생이라는 덩어리를 예리한 칼로 조각조각 잘라내어, 그 단면을 한꺼번에 늘어놓고 보여주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짤막짤막한 단편들 하나 하나에서 각기 다른 삶의 선명한 현실들이 맨얼굴 그대로 불쑥 불쑥 도드라져 올라올 때, 뭉클한 감동보다는 '아, 그랬지'라는 느낌.. 역시 인생을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정말 섬뜩하기 짝이 없는 현실이건만 피식 웃으며 우울하게 받아들여지는 느낌이었다.
체홉이 아니라면 그런 작업은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구구절절한 설명도 없이,단편 하나마다 색색이 빛나는 얼음같은 현실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