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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로화의 종말
  • 요한 판 오페르트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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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2-22
  • : 47

보통 경제공동체로 인식되는 EU의 동기는 경제가 아닌 정치였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그로 인해 급격히 축소된 지위는 유럽에 심오한 심리적 영향을 끼쳤다. 독일은 자기혐오의 시기에 들어섰다. 나머지 유럽 국가들은 잃어버린 식민지에 대한 향수 그리고 제국과 통치권이라ㅏㄴ 짐을 벗어던진 안도감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했다. 유럽의 고갈과 함께 찾아온 것은 바로 유럽의 쇠퇴였다.” (조지 프리드먼)

 

EU는 쇠퇴에 대한 대답이엇다. “격하된 지위에 반응하는 독일의 모습은 유럽이 보이는 반응의 축소판이었다. 독일은 자신의 근본적인 문제를 잠재적으로 적대적인 두 강대국 사이에 낀 독립적 행위자의 문제로 인식햇다. 소련의 위협은 고정적이엇다. 르러나 독일은 프랑스와의 관계를 재정립함으로써 유럽 전체와의 관계를 재정힙할 수 있다면 이렇게 중간에 낀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보앗다. 독일이 생각해낸 해결책은 유럽 전체 특히 프랑스와 통합되는 것인었다. 그러나 유럽 전체를 놓고 봤을 때 통합은 필연적 결과였다. 한쪽에는 소련의 위협이 다른 쪽에는 미국의 압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유럽의 경제가 통합되길 원했다. 이것은 유럽을 위해서뿐 아니라 분열되기 쉬운 동맹국들을 연합시키기 위해서였다. 유럽 역시 경제 연합은 전쟁에서 회복되는 길일 뿐 아니라 자신들을 한낱 지역세력으로 격하시킨 세계에서 입3지를 회복할 수단이라 판단했다. 되찾을 권ㄹ펵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그것은 일종의 연합체에서 찾아야만 했다. 이런 연합은 독일을 유럽에 통합하여 독일 문제를 해결하고 탁월한 독일 경제를 유럽체제의 일부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이엇다.” (조지 프리드먼)

 

그러나 냉전의 종식은 상황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유럽이 뭉치게 만든 두 이유 중, 소련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유럽이 잃었던 주권을 회복한 것은 바로 이 시점이다. 물론 그 주권을 정의하기 위해 여전히 애쓰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조지 프리드먼) EU는 그 노력의 하나였으며 유로는 그 노력의 절정이었다.

 

유로를 낳은 것은 경제가 아니라 정치였다. 그리고 그것이 문제였다. 그 문제를 소로스는 ‘Two-speed Europe’이라 정리한다. 경제의 속도가 다른 두 지역을 억지로 묶었기 때문에 유로화 위기가 일어났다는 말이다.

 

“화폐통합이 경제적으로 이득이라고 볼 수 있으려면 그것이 성장과 대외충격에 대한 강건성 면에서 만약 회원국들이 국제개방시스템을 유지했더라면 달성할 수 있었을 성과보다 더 높은 성과를 가져다줄때만 그렇다.” (미셸 아글리에타. 로랑 베레비) 문제는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먼델은 최적통화이론을 제시하면서 “영구 고정환율로 통합된 나라들이 거시경제적 측면에서 효율성을 누릴 수있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을 거론했다. 그는 환율이 고정됨으로써 환율을 매개로 한 거시경제적 조정은 사라지겠지만 경쟁적 평가절하와 동일한 파괴적인 경쟁을 초해할 수 있는 국내 물가의 변동은 소멸되지 않기 때문에 화폐통합을 형성하는 지역 내부에서는 노동의 이동성이 아주 높거나 강력한 소득 이전 메커니즘이 작동해야 한다고 주장햇다. 유로화 지역이 이 두가지 조건 중 어던 것도 충족하지 못하는 것은 분명하다.” (미셸 아글리에타. 로랑 베레비)

 

예를 들어 이런 문제가 일어난다. “실제로 2001년의 주가 폭락 때 그랬던 것처럼 불황을 초래하는 충격이 발생하면 유로화 지역의 회원국들은 이들의 구조적 이질성 때문에 비대칭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이때 충격을 가장 크게 받는 나라는 독일 및 독일과 가장 직접적인 연계를 맺고 있는 소국들이다. 그런데 공동 통화정책은 유로화 지역의 평균적 상황에 기반을 둔다. 따라서 이러한 통화정책 아래서는 경기침체 충격을 가장 크게 받는 나라의 이자율이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라가는 것은 불가피하다. 왜냐하면 이 나라의 인플레이션률이 더 낮아지기 때문이다. 유로화 지역 전체로 보면 명목 이자율이 아주 낮은 수준으로 보이지만 그 실질 이자율은 경기 침체에 빠진 나라들에게는 지나친 수준이 될 수 있다. 이런 통화정책이 비효율적임에도 외형상으로는 적당하다고 평가될 수있다. 진정한 화폐통합이라면 이러한 상황에서 일어나야 할 일은 회원국들간의 재정정책의 협조가 이루어지4거나 혹은 연방예산을 매개로 한 재정이전 메커니즘이 시행되는 것이다.” (미셸 아글리에타. 로랑 베레비)

 

다시 말해 정치통합이 있어야 화폐통합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유로는 정치통합을 위한 도구라는 것이 문제였다. 화폐통합을 유지하려다 보면 정치통합으로 이어질 것이란 논리엿다. 그러나 이번 유로화 위기는 바로 그 경제통합 때문에 유럽통합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유럽중앙은행의 정책은 주로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 경제에 맞춰져 있었다.” 유로존에서 이들 국가의 비중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이 3대국가가 낮은 인플레이션 그리고 실업률이 높아지면 유럽중앙읂팽은 정책금리를 낮췄다. 물론 이런 저금리는 인플레이션이 높고 경제성장이 빠른 회원국에도 동일하게 적용됐다.” 여기에 유로화는 마르크화의 변신이라는 점이 그 금리를 더 낮췄다. 유로화를 쓰는 것으로 독일의 금리를 적용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10년 만기 국채의 실질금리는 1999년 5%에서 2005년 0%로 떨어졋다.”

 

“유럽통화연맹 가입은 아일랜드, 포르투갈, 스테인에게도 기적을 선물했다. 실질금리의 하락으로 인한 총수요의 확대는 더 큰 경제성장으로 이어졌다. 높은 경제성장은 물가상승을 부추겼다. 그러자 실질 이자비용은 더욱 줄어들어 마이너스로 떨어지기까지 했다. 금리는 매우 낮았고 국내소비는 국내총생산보다 더 확대되 이들 국가들의 경상수지 적자가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적자는 외국은행이나 다른 금융기관에서 대출받은 자금으로 쉽게 메울 수 있었다.” 그리고 경기과열은 “부동산 과열로 이어졌다. 이런 현상은 아일랜드돠 스페인에서 가장 극명하게 나타낫지만 그리스 역시 유로존 평군보다 높은 부동산 가격 상승률을 보여주었다. 부동산 거품의 가장 큰 피해는 지중해 클럽 국가들이 국제 가격경쟁력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수요폭증으로 부동산 분야의 임금이 상승하면서 국영기업들의 임금도 상승했”고 연쇄적으로 임금이 올랐다.” 결국 거품은 터질 수 밖에 없었고 지중해변은 쑥대밭이 되었다.

 

소로스는 이 과정을 Two-speed Europe 이란 말로 정리한다. 독일을 중심으로 한 북유럽의 속도에 남유럽이 맞춰졌기 때문에 위기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위기가 위기가 된 것은 위기 자체보다 대응 때문이었고 유럽통합의 한계 때문이었다.

 

“1993년 출범 이래 2008년까지 유럽연합은 전례 없는 번영을 누렸다. 그리고 그러한 번영은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을 한동안 덮어주었다. 정치체제의 자질은 역경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달려있다. 그러나 2008년의 위기와 함게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모두 떠올랐으며 감추고 싶었던 국가주의도 모습을 다시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것은 상당한 정치적 힘을 발휘했다. 대부분의 독일인은 그리스에 대한 원조를 반대햇다. 그리고 대다수 그리스인들은 독일이 정한 것이나 다름없는 유럽연합의 조건을 따르느니 파산을 택햇다. 금유위기가 완화되면서 긴장상태도 가라앉았지만 2010년 우리는 잔잔한 유럽의 표면 아래에서 들끊는 힘들을 잠시나마 엿볼 수 있었다.” (조지 프리드먼)

 

이책의 상당부분은 그리스에서 시작된 위기가 어떻게 스페인까지 번져나갔는가를 타임라인을 따라 서술하는데 바쳐져 잇다. 그 주 내용은 유럽연합 내의 좌충우돌이다. 어떤 리더십도 없었다. 회원국들은 독일을 중심으로 한 북유럽 부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한 남유럽의, 소로스의 말로 하자면 two-speed로 갈라졌다. 두 진영으로 나누어진 회원국들은 서로 타협하려 하지 않았다. 타협을 하더라도 미지근한 것으로 사태를 진화하기에는 한발 늦게 그것도 불충분하게 이루어질 뿐이었다. 이책은 그 분열이 일으킨 우왕좌왕과 혼란, 내홍을 그려간다.

 

“독일은 2008~2010년 금융위기 당시 자신들이 부담해야 했던 역할을 불편하게 느끼고 있다. 독일이 유럽연합의 주변국들에 대한 이해관계를 재고할 때 주변국들 역시 독일과의 통합에 따른 경제적 이익을 따져보게 된다., 이들은 은행 같은 광범위한 경제분야에서 통제력을 상실하거나 위기가 닥쳤을 때 스스로의 힘으로 견뎌내야 한다는 문제 때문에 더욱 분개하고 있다. 주변국들의 경제가 핵심국가들을 위해 설계된 금융정책을 통해 유지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양측 모두에게 압력을 가한다.” (조지 프리드먼)

 

유럽은 변했다. “독일의 전후 정책은 나치정권의 범죄와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 저지른 일에 대한 죄책감을 토대로 만들어졋다. 그러나 메르켈과 그들 세대의 정치인들은 제2차 세계대전을 간접적으로만 전해 들었다. 베를린 장벽이 무어지면서 전후 독일의 분단은 사라지고 문제가 있는 과거는 더 이상 큰 쟁점이 되지 않앗다. 오늘날 독일의 정치인들은 대부분 1950-1960년대 사이에 태어났다. 이드은 유럽통합에 무관심하고 일부는 회의적이며 사적으로 적개심을 표출하기도 한다. 오늘날 정치인들에게 유럽연합은 여러 정책 선택지들 중의 하나일분이며ㅑ 더 이상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독일이 전쟁에 대한 죄책감으로 유럽통합을 위해 큰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이제 불가능해졋다는 것이다.”

 

유럽통합의 축은 독일과 프랑스의 단결이엇다. 그러나 독일은 무관심해진 반면 프랑스는 갈수록 약해지면서 파트너로서 가치를 잃어간다. “예전에는 프랑스가 정치적 운전사였고 독일은 경제적 운전사였다. 그러나 이제는 메르켈이 결정권을 쥐고 있고 사르코지는 기자회견을 열어 그녀의 결정을 설명할 수 있을 뿐이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미국과 중국만이 선두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 뒤를 인도, 일본 브라질 러시아와 독일이 뒤를 따르고 있다. 프랑스는 인도네시아, 터키, 멕시코,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한국 그리고 영국과 같은 세번째 등급이다. 이런 국가들은 국제적인 논의의 장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리고 독일의 파트너로서 자격도 유지할 수 없다.”

 

“우리는 이미 유럽통합의 정점을 목격했다. 향후 10년 동안 밀물이 빠지면서 드러나게 될 것은 무엇보다도 독일의 힘이 될 것이다.” (조지 프리드먼)

 

“콜 총리의 세대에게 유럽은 전쟁과 평화를 좌우하는 존재였지만 메르켈 총리 세대에게 유럽은 비용과 편익의 문제 불과할 뿐이다.” 이제 독일인에게 그리고 다른 유럽인들에게도 “근본적으로 유럽연합은 경제연합이다. 국방과 달리 경제는 번영을 극대화하는 수단이다. 이런 한계 때문에 보다 고귀한 목적ㄹ을 위해 안전을 희생하는 것은 모순이 된다. 유럽연합은 유럽의 안전과 복지를 도덕적 목적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유럽연합의 이상을 지켜내기 위해 싸우거나 죽음을 종용하는 고무적인 수사법에는 아무런 기반이 없다.” (조지 프리드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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