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책의 성격을 한마디로
하자면 미국정치사이다. 이책의 내용은 미국정치사의 흐름을 바꾼 대통령의 결정을 13가지 골라 그 결정이 이루어진 시대적 배경과 그 배경에서 왜 그런 결정을 하게 되었고 어떻게 그 결정을 현실로
만들 수 있었는가를 케이스 스터디로 파고 든다.
실질적으로 미국이란
국가의 정체성을 만든 링컨의 노예해방령이라든가 고립주의 국가 미국을 제국주의 국가로 진로를 바꾸게 한 파나마운하 건설, 2차대전 참전, 원폭투하, 아폴로
계획, 인권법, 닉슨의 중국방문, 레이건의 악의 축 등등이 이책이 다루는 주제들이다. 모두 미국이란
국가의 방향을 바꾼 결정들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저자가 후기에서
말하듯이 그런 결정적 순간들이 13가지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령
베트남 전쟁이라든가 닉슨의 경우 브레튼우즈 체제의 포기 같은 것들이 개인적으로 떠오르는 예이다, 그러나
이 얇은 책에서 미국사를 다 다룰 수는 없고 별 의미도 없다.
이책의 초점은 최고위
의사결정자로서 대통령이 정세를 어떻게 이해했었고 그 정세에서 자신이 원하는 결정을 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썼는가와 같이 짧은 지면에 재미있게 상황을
잘 간추려 요약하고 있다는 점 그러면서도 그 대통령의 성격과 그의 치적등, 그 시대를 잘 요약하는 솜씨가
대단하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잘 간추려진 정보량으로도 상당하다.
여기서는 13가지 중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는 린든 존슨의 사례를 소개한다.
미국정치사에서 마키아벨리스트를
꼽으라면 아마도 린든 존슨이 가장 좋은 예이다. 최연소 하원의원으로 정치인생을 시작한 존슨은 의회정치의
진수를 배울 시간과 기회가 많앗다. “ 샘 레이번 하원의장이나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 같은 유명한
사람들을 멘토로 삼고 교훈을 얻어 정부의 각종 스위치들을 어떻게 하면 자신에게 유리하게 누르고 당길 수 있는지에 대해 맛본 다음 존슨은 다듬어지지
않은 정치운영능력이 서서히 권력을 향한 강한 열망으로 변해가는 과정에 매료되었다.
정치가로서 그의 자산은
나이만이 아니었다. “나는 정치에 대해 하루 18시간 이상을
생각해본 적은 절대 없다. 잠은 자야 하니까.” 그의 말은
사실이엇다. “그는 그 누구보다 오직 한가지에만 몰두하던 사람이엇다.”
정치는 그의 모든 것이었다.
시간과 집중력은 그의
명성을 높여갔다. “존슨은 워싱턴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그보다 먼저 이곳에 20년 동안 있었던 사람들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 존슨의 의원시절
초기를 설명하는 말이다.”
상원에 들어갔을 때
그는 원내대표가 되었고 “미국 역사상 가장 젊은 나이에 지도자급에 오른 사람이 되었다. 이제 그는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 중 한 명이 된 것이다. 그
어떤 입법이나 합의도 존슨의 승인 없이는 이뤄질 수 없었다. 심지어 아이젠하워 대통령조차도 국내문제에
관한 일을 처리하하기 위해서는 이 텍사스주 상원의원의 환심을 사야 했다.
존슨이 빠른 속도로
리더의 자리에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나 운이 아니었다. 그는 상원에서의 힘은 단 한가지에
기초한다는 것을 빠르게 파악했다. 바로 인적관계였다. 존슨은
동료의원들의 이해관계, 욕망, 필요를 이해하는데 자신의 온힘을
쏟았다. 또한 그들의 상황과 관련된 모든 것에 통달함과 4동시에
자신을 그들의 구미에 맞게 조절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카멜레온처럼 자신을 각양각색으로 바꾸는
변신과 모방의 달인이 되었다. 북부출신의원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는 남부출신 특유의 느릿한 말투가 딱
부러지고 사무적인 억양으로 바꿔었다. 이와 달리 서부출신 의원들과 대화할 때는 소탈하고 경쾌한 스타일로
말했다. 그러나 남부출신 동료의원들 앞에서 존슨은 그들과 다름없는 듬직한 동요의원이었다. 그는 그들 앞에서 ‘깜둥이’라는
말을 서슴없이 사용했고 서빙하던 흑인종업원을 종종 비하했다. 이런 일은 존슨이 이에 반감을 가진 다른
사람 앞에서는 하지 않는 행동이었다.”
그에게 남은 자리는
이제 하나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닿을 듯하면서 닿을 수 없는 자리엿다. 그가 남부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린든 존슨의 정치경력은 두 가지 상충하는 요소가 만들어냈다. 하나는 남부출신이라는 태생적 요소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자신의 정치력을 끝없이 넓히려는 욕망이다.
존슨이 대통령에 당선된 1964년 선거가 있기 전까지 20세기 대부분의 시간 동안 남부 야심가들에게
대통령직은 닿을 수는 없었으나 포기하기에는 너무나 가까운 자리였다. 이유는 강력한 인종차별이었다. 대부분의 북부와 서부 사람들에게 남부의 인종차별과 야만적 폭력은 그것이 가진 폭력성만큼이나 충격적인 발상이었다. 남부출신들은 국가지도자 혹은 적어도 비중있는 인사가 될 자격이 없다는 선입견이 온 나라에 팽배했다.”
존슨 자신은 인종주의자는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그는 연민어린 눈으로 흑인과 히스패닉들을
너그럽게 대했다. 이것은 당시에 온전히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행동이었고 누군가의 눈에는 파격으로 비치기까지
햇다. 존슨이 소수자와 불우한 사람들에 대해 가졌던 진심어린 관심을 보여주는 일화는 많다. 주민 대다수가 히스패닉인 지역에서 젊은 교사로 일하던 시절 그는 자신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른 교사들과 다르게
행동했다. 그 약속은 바로 멕시코계 미국인 아이들도 앵글로색슨계 백인 아이들과 동등한 교육을 받게 하는
것이엇다. ‘나는 그들 안에 있는 무엇인가를 일깨우고자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영혼을 앞날에 대한 열망, 관심, 신념으로
가득 채워주려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나 남부인이란 꼬리표는
위력적이엇다. 1956년 전당대회에서 “존슨은 야심차게 대통령후보로
지명받고자 햇다. 그러나 북부대표들이 그에게 ‘남부 후보’란 꼬리표를 붙이자마자 그의 시도는 실패했다.” 그리고 그는 교훈을
얻었다. “존슨은 이제 오직 자신의 이미지를 자유주의자들의 눈에 맞게 바꾸는 방법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바로 그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엿던 민권법을 지지하는 일이엇다.”
야망의 첫걸음으로 그는
케네디의 러닝메이트로 나섰다. 8년 후에 대선후보로 나설 생각이었다.
그러나 기회는 더 빨리 왔다. 케네디가 암살당한 것이다.
케네디 임기 중이었던
“1963년 초 남부 흑인들의 권리에 무엇인가 조치를 취해야한다는 압력은 절정에 달해있었다. 온 나라가 폭동, 소방호스, 경찰의
전투견, 곤봉, 휘두르는 모습들이 담긴 영상들로 몸살을 앓았다.”
뭔가 해야했고 케네디는
하기는 했다. 그러나 미지근한 조치만 취했다. “그는 민권법의
실패가 자신의 모든 입법의제들을 위태롭게 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남부의 반발때문에) 재선에도 치명적이라는 사시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남부인이기에
존슨은 달라야 햇다. 대통령에 취임한 존슨에게 “민권법 입법은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의제”였다. “이 시점부터 그는 완전히
민권법 이슈에 전념했다.” 다가올 1964년 선거에서 이기려면
그래야 했다.
존슨에겐 선거만이 아니라
“자신이 후대에 어떻게 평가될지에 대한 생각 역시 큰 역할을 했다. ‘나는
링컨이 시작한 일을 마무리 짓는 대통령이 될거야!”
“’누군가는 전 세계에 과시할권력을 원하며 대통령 찬가를 듣습니다. 또 다른 이는 특권을 얻기 위해 권력을 잡으려 합니다. 그러나 나는
모든 권리를 모든 사람에게 특히 가난한 사람과 흑인에게 주기 위해 권력을 잡았습니다.’ 이것은 역사적
가식일까? 아니면 허심탄회하게 드러낸 진심일까? 아마 둘
모두 조금씩 들어있을 것이다., 존슨은 흑인차별이 존재하던 남부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받아야 했던
끔찍한 차별에 항상 가슴 아파했다. 분명 대통령이 되려는 야망이 존슨에게 동기를 부여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그가 왜 타협이 가능했음에도 당대 가장 해곃하기 어려운 문제에 ‘모든 것을 걸었는지’를 설명할 수는 없다. 한 가지 가능한 설명은 마키아벨리적인 책략이 진정한 관심과 열정으로 주도권을 잡고 나라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는
직관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대가는
컸다. “그는 앞으로 수십년 동안 민주당이 남부 선거에서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존슨의 생각은 적중했다. 수년 동안 남부의 주들은
민주당의 보루에서 공화당의 요새로 변해버렸고 이는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공화당의 신보수주의가
미국을 지배하도록 문을 열어주었다. 위대한 사회란 구호로 존슨이 대표했던 민주당의
뉴딜 연합은 “남부와 노조, 도시의 정치집단, 그리고 좌파지식인의
조합”(폴 크루그먼)이었다.
그러나 이 연합에서 남부가 이탈해 공화당의 거수기가 되면서 뉴딜연합은 무너졌고 공화당 지배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