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사진기자 앨리슨 라이트는 라오스의 밀림 속 도로에서 끔찍한 교통사고를 당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너덜너덜해진 팔에선 피가 철철 흐르고 몸은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폐와 횡경막을 다쳐 숨을 쉴수도 없었다. 그 상태에서 상체의 힘으로
버스 밖으로 기어나와 누웠다. 웅성거리는 사람들은 그녀가 죽어가고 있다고 떠들었다.” 그녀는 오랜 시간 수련한 요가와 명상을 떠올리며 고통을 견뎠다.
“그녀가 치료를 비슷한 것을 받기까지는 14시간이
걸렸다. 그날 밤 헬기가 자신을 수송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접하자 이제 죽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순간 앨리슨은 모든 두려움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고통에 항복하자
모든 아픔이 사라지고 마음이 평온해졋다. 그녀는 ‘갈 준비’를 했다. 사선을 넘나드는 경험을 한 후 우주의 삼라만상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게다가 전에는 몰랐던 압도적인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그건 사랑이엇다. 이러한 감각이 그녀의 결의를 더 확고하게 해주었다. 한동안 호흡에만 정신을 집중했다. 놀랍게도 태국으로 가는 긴 여정이
끝났을 때까지 그녀는 살아있었다”
본격적인 치료가 시작되었을
때 그녀는 “등과 골반, 갈비뼈가 골절되었으며 내상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았다. 심장이 튀어나왔고 비장이 파열되었고 횡경막에는 구멍이 났고 폐는 액체로 가득했다. 마취도중 숨이 멎어 외과의사가 겨우 살렸다. 혹독한 시련을 겪으면서
그녀는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기 위해 자신을 통제했다. 그녀는 살아남았다. 생존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뇌는 고통을 차단했다. 그래서 죽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뭐든 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까지도 말이다. 이런 마음 자세로 상황에 맞춰 적응하고 여러 차례에
걸쳐 생존 전략과 태도를 수정할 수 있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살고자 하는 의지와 모든 것을 놓아버리겠다는 마음은 결코 흔들리지 않앗다.”
이런 사례를 들으면
보통 놀란다. 감탄한다. 그리고 평범하지 않은 슈퍼맨의 이야기라
치부하기 마련이다. 나와는 상관이 없는 딴 세상의 이야기란 말이다. 그러나
저자는 그런 일을 겪고 이겨낸 사람들은 당신과 별다를 것없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라 말한다. 단지 그들의
습관이 달랐을 뿐이다.
“이것은 살아남아야 할 때 살아남을 수 있도록 삼라만상과 관계를 맺는 생활방식에서 비롯되낟./ 앨리슨은 일찍이 경험했던 다양한 일이 위기에 당당히 맞설 수 있도록 자신을 준비시켰다고 술회했다. 다시 말해 일상의 습관적인 방식이 위기나 비상사태에 직면해 서바이버가 될 가능성과 밀접한 관련이 잇다는 얘기다.”
저자는 그 습관을 3가지로 정리한다.
1.
상황에 대한 정보를 재빨리 흡수한다.
2.
뭔가를 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3.
가능한 행동이나 반응 등 뭐든 고려한 준비가 되어 있다.
저자가 말하는 서바이버의
습관은 요즘 흔히 말하는 회복탄력성과 유사하다. 저자가 말하는 3가지를
보통 하는 말로 하자면 호기심, 자신감, 유연성이라 할 수
있다.
위기가 닥쳤을 때 재빨리
반응하는 사람은 위기에 움추려들지 않는다. 익숙하지도 않고 생각지도 못한 일이지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평소에 호기심을 갖고 주변을 살피면서 정보를
분석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정보와 경험이 많고 그런 습관 덕분에 갑작스런 상황이라도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황에 맞춰 자신을 바꿀줄 아는 유연함이 있다.
요즘 유행하는 회복탄력성과
내용은 좀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비슷한 자질을 말한다. 저자는 자신이 말하는 ‘서바이버 자질’을 ‘세렌디피티
자질’이라고도 말한다. 그러나 “세렌디피티는 그냥 행운이 아니다. 단순한 우연의 일치도 아니다. 예리한 통찰력을 발휘해 사건을 행운으로 바꾸는 능력이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그것이 불운이 될지 행운이 될지 아니면 꽝이 될지는 그 사람이 그 사건을 활용할 준비가 되어 있느냐에 달렸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보자.
“정부가 당신의 예금을 빼앗고 사업체를 몰수하고 당신과 가족을 집에서 강제로 내쫓고
트럭에 태워 멀리 데려간 후 이제부터 그곳에서 살라고 하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이 이야기는 1941년 일본계 미국인들에게 일어난 실화다.
나이토 가족은 유타
주의 솔트레이크시 근교로 강제 이송되었다. 가장인 히데 나이토는 실의에 빠졌다. 그는 모범적인 시민이었다. 오랫동안 도자기를 수입하는 사업해왔다. 가족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미국 정부가 그들 가족이 가진
것을 전부 빼앗을 수 있단 말인가? 당시 16세였던 빌 나이토는
가족이 처한 상황을 직시했다. 그는 아주 작은 자본으로 시작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빌은 형 샘과 닭을 키워 달걀을 팔기로 했다. 다행히 사업이 커져
온 가족이 달라붙었다. 4년동안 달걀을 팔아 생계를 꾸렸다. 닭통은
채소와 맞바꿨다. ‘닭이 갈수록 많아져 닭장을 큰 걸로 두 개나 지었습니다. 바닥은 콘크리트였어요! 바닥을 콘크리트로 깐 닭장을 생전 처음 본
이웃 농부들은 깜짝 놀랐죠!’
그로부터 70여년이 흐른 후 나이토 형제의 유산에는 다른 개발업자들은 건드리지도 못한 대형 재개발 프로젣트도 호함되었다. 열개가 넘는 사업체와 수많은 건물을 소유한 빌 나이토는 이렇게 말한다. ‘고생을
해야 꿈을 꿀 수 있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이
상상력을 자극했고 가능한 해답을 찾도록 해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