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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110님의 서재
  • 오월의 정치사회학
  • 곽송연
  • 15,300원 (10%850)
  • 2023-05-10
  • : 717
올해 5월에도 광주를 기억하는 책이 나왔다. 올해는 5.18 43주년이다. 4.3사건 75주년이기도 하다. 학살 가해자 전두환의 손자 전우원씨의 사과로 이번 5.18 추념식이 주목받기도 했다.

이 책의 시작도 바로 그 학살 가해자를 분석하면서 출발한다. <오월의 정치사회학>은 그동안의 5.18 연구에서 조명받지 못했거나 미진한 부분을 보충해나가는 책이다. 특히 가해자의 행동 동기를 분석하고 대중의 침묵을 조명한 점이 이전에 보지 못했던 부분이다. 더하여 국가의 학살 은폐와 학살의 발생 원인을 사회학적 요인으로 분석하여 다룬다.

가해자는 고위 간부+지도자/정규군/준군사조직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집단에 따라 가해자들의 행동 동기는 달라진다. 고위 간부는 이데올로기, 정규군은 동료압력과 이데올로기 주입 효과, 명령복종 등에 따라 행동한다. 저자는 각 집단 행동 동기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가해자와 명령에 따라 수동적으로 임무를 수행한 일반 군인들의 분리를 제안한다. 일반 군인들은 가해자이지만, 동시에 국가의 부름에 의해 의도치 않은 명령을 수행한 국가폭력의 희생자이며 사건의 목격자이다. 이런 지점에서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

대중의 외면에는 철저한 언론통제가 큰 영향을 미쳤다. 애초 공인방송에서는 검열된 정보가 흘러나오고, 모두가 적(간첩)으로 가리키는 사람들에게서 전해지는 정보만이 진실인 상황이었다. 더불어 도덕적 우위를 가진 사회엘리트들의 침묵(물론 발설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 자체가 암묵적 동조와 지지를 뜻하게 되었다.
대중들의 침묵 속에서 국가는 계엄령을 내리며 전면적 부인, 해석적 부인, 함축적 부인의 전략으로 5.18을 혼란, 사태로 규정한다. 당시 국가의 논리를 바탕으로 공론장에서 아직도 5.18을 부정하는 상황을 두고 저자는 적극적 제지를 촉구한다.

학살 이후 한국의 권위주의 정부는 전체주의의 원리, 민주주의의 적대화-민주주의로의 이행이 경제발전을 저해한다는- 논리를 바탕으로 학살을 가렸다. 5.18의 원인으로는 (존재하지도 않던) 지역주의를 지목하고 5.18 대신 10.26 이후의 혼란이라는 모호한 이름으로 가려버린다. 망각의 홍수 속에서 저자는 국가가 만든 공적 기억에 대항하는 저항 기억을 가지고 있는 이들을 주목하자고 한다.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정치적 학살 이론 모델을 사용해서 여러 변수를 구조적 조건과 주체적 조건으로 분류하고, 변인에 따른 양태를 분석해 학살의 발생 원인을 탐구한다. 사회학 배경 지식을 갖춘다면 이해가 더욱 쉬울 것이다.

학살에 대한 반성과 재발방지는 곧 민주주의의 내면화이다. 이 때문에 5.18이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현재에도 유의미하다. 지금 우리 사회는 반성과 함께 과거 정권의 논리를 답습하고 부인하는 이들이 공존하고 있다. 성숙한 민주주의를 위해, 그리고 또 거대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우리 사회는 반드시 반성으로 나아가야 한다.

제노사이드의 가해자들은 일반적으로 범죄를 ‘반복‘하는 경향이 있다. 그 이유는 ‘국가안보에 대한 도전 상황에서 지배 엘리트와 군대가 집단학살을 그 전략적 대응으로 선택하는 것에 이미 익숙할 것이며, 이들에 의해 지목된 집단은 대부분 완전히 파괴되지 않기 때문‘이다.- P27
한국군은 해방 정국에서 한국전쟁에 이르는 근대국가 건설기와 베트남전 당시 해외 파병에서 이미 두 차례나 집단학살을 학습했다.- P27
따라서 ‘객관적인 적‘으로 지목된 대상은 이른바 ‘정당방위‘로 죽임을 당해도 된다는 논법이 형성된다.- P30
마지막으로 부인은 "가장 직접적이고, 그러나 많은 점에서 가장 교활한 기억 조작의 형태"로 ‘합리적 의문의 외양‘을 띠는 방식을 취해 "근거가 확실한 정보로 상세한 설명을 제시"함으로써 반박되거나 폭로되기 어렵다는 난점이 있다.- P127
심지어 지역감정이 폭발적 위력을 발휘한 정초 선거로 평가되는 1987년 대선과 1988년 총선 이후 진행된 조사 결과 역시 ‘호남인들은 영남인들에 비해 강한 상대 집단 거부감을 가지 않는 것‘(대구 42.6% : 광주 34.9%)으로 나타났다.- P132
국민과 비국민을 결정짓는 잣대로 다시 한번 반공이데올로기가 이용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른바 빨갱이에 대한 학살이 정당화되었듯이 폭도라 명명된 시민들에 대한 학살 역시 정당화되었다.- P177
"빨갱이여서 죽은 것이 아니라 죽고 나서 빨갱이가 되었으며, 누구에게 죽었는가가 이후 이들의 정체성을 결정하였다."는 한국전쟁 시기 학살 피해자의 증언처럼 "폭도라서 죽임을 당한 게 아니라 죽고 나서 폭도로 명명"되는 상황이 재현된 것이다.- P177
정치에 대한 이분법적 접근이 합의와 타협의 공간을 위축시키고 정책 입안을 마비시켰으며, 정치적 경쟁자를 끌어내리는 데에만 몰두한 나머지 극단적 대결의 정치문화가 정치적 제약에서 자유로운 강력한 지도자에 대한 지지를 강화하고 있다.-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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