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누구에게나 온다. 그래서 세계 어디를 가든 장례 문화는 보편적으로 나타난다. 형태는 다를지언정 사람들은 죽은 사람을 애도하고, 추모하며 남은 인생을 살아간다. 그러나 어떤 죽음은 애도받지 못한 채, 송두리째 세상에서 잘려나간다.
제노사이드를 다룬 여러 책들을 읽다 보면, 가위가 색종이를 자르듯이 너무 쉽게 뭉텅이로 잘려나간 사람들이 보인다. 몇십만명이라는 숫자는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아 정말 끔찍하구나. 심각하구나. 라는 파편적인 감상에서 멈추게 된다.
다른 책들이 제노사이드가 일어났던 발단전개과정, 학술적 정보 측면에서 더 뛰어날 수 있겠으나 이 책은 실제 학살이 일어났던 장소에서 오는 무게감을 정말 묵직하게 전달해 준다. 죽은 사람들을 숫자로 마주하는 게 아니라 공간으로 마주하게 한다. 그리고 그 현장에서 삶을 이어나가는 사람들의 면면을 전달해 준다. 학술적인 책뿐만 아니라 이런 책도 필요하다고 느끼는 이유다. 그 모습을 간접적으로 마주하며 21세기를 사는 우리가 제노사이드의 후유증에서 자유롭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혹자는 말한다. 과거는 과거의 일일 뿐 아니냐고. 나는 이 말을 아주 싫어한다. 시간이 과거/현재/미래인 줄 아나? 과거의 모습이 쌓여서 지금의 모습이 되고 현재가 된다. 세계 인권 헌장이 무슨 연유로 만들어졌는가? 대규모 학살 사건에 정부가 책임을 지고 사퇴하는 일이 자연스러운가? 사상의 자유는 언제부터 누릴 수 있는 것이었나? 이런 질문들을 떠올리다 보면 손에 쥐고 있는 권리가 얼마나 얄팍한 것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기억하겠다는 말은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책임진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21세기를 사는 사람들이 20세기의 제노사이드를 기억한다는 것은 그런 의미다. 누군가는 여행기 읽고 너무 비장한 것 아니냐고 할 수 있겠다. 글쎄 누군가의 죽음에 대한 감상평 치고는 오히려 얄팍하고 너무나도 타인의 시선인 게 아닐까.
누가 지금 아르메니아인 제노사이드를 기억하는가?- P22
한국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리는 평화의 소녀상을 세계 곳곳에 세우듯이, 아르메니아는 민족이 당한 학살의 고통을 널리 알리고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하치카르를 세계 곳곳에 세우고 있다.- P33
물론 튀르키예가 과거의 제노사이드를 계속 부인하는 한 이러한 화해는 한시적이고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굳건해 보였던 장벽을 훌쩍 넘어 재난에 처한 이들을 가엾게 여기고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며 그들에게 기꺼이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의 보통 마음, ‘인지상정‘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는 있을 것이다.- P43
내가 본 여행가방 중에는 ‘프라하에서 온 마리 카프카‘, ‘빈에서 온 클라라와 사라 포히트만‘의 것도 있었다.- P66
수용소에서 침탈된 존엄은 삶의 존엄이 아니라 죽음의 존엄이라는 것은 이미 여러 차례 주장된 바 있다. (중략) 아우슈비츠에서 사람들은 죽지 않았다. 보다 정확히 말히니 시체들이 생산됐던 것이다. 죽음을 갖지 못한 시체들, 죽음이 연쇄 생산의 재료로 전락해 버린 비인간들 말이다.- P72
반유대주의나 시민들의 태도는 사실상 중요하지 않았고 국가의 부재가 유대인 집단학살에 압도적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P82
국가가 기능하는 곳에서 국가가 파괴된 곳으로 희생자들을 끌어낸 것이다.- P83
이거 놔, 난 여기 앙코르와트 보러 온 거야! 놀러 온 거라고! 게다가 현지인들한테 돈을 쓰고 있잖아!- P104
어떤 미치광이 과학자가 한 나라를 대상으로 이런 실험을 설계했다고 가정해 보자. ‘만약 한 나라의 지식인층을 전부 죽이면 그 나라는 어떻게 될까?‘- P112
그들의 사진을 가능한 오래 응시함으로써, 적어도 추상적인 ‘숫자‘로만 알던 존재들이 한때 각기 다른 얼굴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즉물적으로 깨닫는 것만으로도 일말의 가치가 있다. 숫자의 고통보다는 사람의 고통을 가깝게 느끼가가 더 수월한 법이다.- P129
국립도서관 폭격은 이 ‘내전‘의 실체가 한 집단을 물리적 정신적으로 완전히 파괴하려는 제노사이드임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히틀러가 아르메니아 학살에서 영감을 얻었듯이,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은 나치 시대에 대규모로 자행된 분서에서 영감을 얻었을 것이다.- P168
나로 인해 생전 이름조차 들어 본 적 없는 나라의 역사 강의를, 그것도 어설픈 내 통역을 통해 띄엄띄엄 듣게 된 엄마가 "나는 무슨 내용인지도 잘 모르겠고 지루하다"고 한 말이 나를 포함해 그곳에 ‘비장하게‘모인 사람들의 어떤 반응보다 가장 진실에 가까웠을 것이다.- P175
보스니아에 그토록 깊은 상처를 남긴 전쟁은 불과 10년 남짓한 시간에 ‘상품‘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 또한 살아남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법이며, 그들을 탓할 순 없을 것이다.- P184
누가 마리오의 턱뼈를 찾았다고 하면 필요 없다고 할 거예요. 온전히 끌고 갔으니 전부를 내놓으라고.- P216
정부를 상대로 한 저항으로서의 ‘오월 광장의 어머니들‘ 행진은, 독재 정권의 치부를 덮기 위해 상정된 ‘화해법‘이 대법원에서 위헌 판결을 받으면서 2006년 공식적으로 종료됐다. 그러나 여전히 아르헨티나와 남미를 비롯해 전 세계에는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이 너무나 많았다.- P223
그러나 제주는, 4.3 사건은 그 어떤 핑계로도 벗어날 구멍이 없었다. 그것은 발단부터 전개 과정, 결말, 이후의 취급까지 너무나 한국적인 학살이었고, 언제든 미친바람을 타고 다시 돌아올 것 같은 참극이었다.- P249
곧, 만에 하나 학살된 민간인 모두가 ‘빨갱이‘였다고 해도 그들 역시 같은 나라의 국민이자 무엇보다 같은 인간이었으며, 어떤 적법한 절차 없이 무참하게 살해당해서는 안 됐다는 당연하고도 자명한 진실 말이다.- P261
살아남은 사람들은 소개령 해세 이후에도 수많은 이웃과 가족이 학살되고 완전히 파괴된 마을로 돌아갈 엄두를 내지 못한 채 타지에서 생을 이어 갈 수밖에 없었다.- P267
그제야 내가 지금까지 해 온 다크투어는 기실 잊힌 이름들을 부르고 잊힌 얼굴들을 마주 보기 위한 여정이었음을, 익명과 숫자와 망각에 맞서 그 뒤로 사라져 가는 수많은 개인들을 기억하기 위한 일이었음을 나는 깨달았다.- P2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