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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브범님의 서재

하루는 테라스 바닥에 벌 한 마리가 꼼짝 않고 누워 있었다. 벌은 이미 죽은 것 같아 보였다. 그런데 치우려다가 다시 자세히 보니 벌은 아주 미세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머리 몸통 다리 날개는 모두 멀쩡해 보였다.nn 어디선가 설탕물을 한 방울 먹이면 탈진한 벌이 다시 살아난다는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났다. 빨리 움직여야 했다. 급하게 티스푼에 설탕을 담고 물을 적셔서 벌의 얼굴 앞에 두었다.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벌은 마치 냄새를 맡는다는 듯 더듬이를 까딱까딱 움직이고는 설탕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러고 한참을 쉬었다가 날아갔다. 벌이 살아나서, 벌을 살려서 정말 기뻤다. 그날 오후의 짧은 해프닝은 그해 내게 일어난 제일 큰 기쁨 중 하나가 되었다. - <아무튼, 식물> 중에서
초보 시절엔 흙을 돈 주고 사려니 어색했다. 지천에 널린 게 흙인데 산이나 들에서 한 삽 퍼 와서 쓰면 안 되는 걸까 궁금했다. 알고 보니 땅에서 퍼 올린 흙 속에는 수많은 벌레와 세균이 존재하기 때문에 집 안에 두기엔 곤란하단다. 영양분도 부족하고 배수도 불량하다. 산에 사는 식물들에게는 괜찮을지 몰라도 집 안에서 사는 식물들에게는 해로운 흙이다. 친구가 던졌던 명언이 생각난다. ‘원래 사람이 안 키우는 식물이 제일 잘 커.’
새로운 식물을 하나 데려오는 것보다 더 근사한 일은 새로운 식물을 여럿 데려오는 것뿐. - <아무튼, 식물> 중에서
그런 곳에서 형편없이 전시되고 있는 식물들을 보면 애처롭다. 화원에서 열심히 자라났을 텐데, 비좁은 화분과 공간을 버티며 성체가 되었는데, 팔려 온 곳에서는 서서히 죽게 내버려두고 있구나. 커피가 아무리 맛있는 곳이라도 다시는 찾지 않는다. 다행히 그런 공간들은 보통 커피도 맛이 없다. 반대로 식물을 건강하게 잘 키워내는 공간들은 커피를 아주 잘한다. 돌보는 마음과 커피를 내리는 마음이 같은 것일까. 식물의 변화를 눈치채는 섬세함을 지닌 바리스타라면 핸드드립도 더 섬세하게 만드는 걸까? 그냥 단순히 이파리가 더 건강하고 통통한 식물을 키우는 카페의 커피가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다. 편안한 마음으로 마시는 커피가 제일 맛있는 법이니까. - <아무튼, 식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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