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에서 일하던 때 주로 느낀 것은 정말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다는 점이었다(일해보지 않으면 매력적인 노신사들이 송아지 가죽으로 장정한 고서들을 마냥 열독하고 있는 천국 같은 곳으로 상상하기 쉽다). 우리 서점은 예외적으로 흥미로운 책들을 많이 소장하고 있었으나, 손님들 중에 10분의 1이나마 그 진가를 알았을까 싶다. 초판 밝히는 속물들이 문학 애호가들보다 훨씬 흔했고, 싼 교과서 값을 더 깎으려는 동양 학생들이 그보다 더 흔했으며, 막연히 조카 생일 선물이라도
구하러 들르는 여성들이 제일 흔했다.
그런데 그들 말고도 어느 헌책방에나 자주 출몰하는, 성가시기로 유명한
유형이 둘 있다. 하나는 묵은 식빵 껍질 냄새가 나는 쇠약한 사람이 매일같이, 어떤 때는 하루에 몇 번씩 찾아와 무가치한 책들을 팔려고 하는 경우다. 또 하나는 살 의향이 조금도 없으면서 책을 대량으로 주문하는 경우다.
문고지기에게 책을 하나 골라달라고 하는 유형의
사람들은, 우리 문고의 한 독일인 고객이 그러는 것처럼 거의 항상 "단편소설은 원치 않고요" 혹은 "짧은 이야기는 바라지 않아요"라는 말부터 시작한다. 왜냐고 물으면 단편은 이야기마다 인물들이 바뀌기 때문에 적응하는 게 고역이라고 설명하곤 한다. 때문에 첫 장章 이후론 더 이상의 생각을 요구하지 않는 장편에 ‘빠져드는’ 게 좋다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독자들보다는 작가들이 더 문제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영국과 미국의 단편소설은 대부분 철저히 무기력하고 무가치한 것이, 대부분의
장편보다 그 정도가 훨씬 더하다. 하지만 정말 이야기가 ‘되는’ 단편소설은 인기가 있으니, 장편만큼 단편도 인기가 좋은 D. H. 로렌스의 경우를 보라.
게다가 근무환경이 건강에 별로 좋지 않다.
서점은 겨울이면 대개 지독히도 추운데, 너무 따뜻하면 창에 김이 서리게 되고 서적상은 창이 깨끗해야 먹고살기 때문이다. 그리고 책은 지금까지 만들어진 그 어떤 물건보다도 더 많고 고약한 먼지를 뿜어내며, 책머리만큼 왕파리가 죽을 장소로 선호하는 곳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