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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yblue1님의 서재

도 없는 것처럼 조용하기만 하다. 아니다. 누군가가 하모니카를 불고 있다. 이리미아시는 납덩이처럼 무거운 구두에서진흙을 떼어내고 헛기침을 한 뒤, 조심스럽게 문을 연다. 갑자기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하는데, 동쪽 하늘은 뒤늦게 제 소임을 떠올린 양 이제야 막 훤해지는 중이다. 어둑한 지평선이 불그스레하게 물든다. 그리고 이른 아침에 거지가 교회 계단을오르는 것처럼 가슴 아픈 모양으로 태양이 떠올라, 흡사 빛으로 세상에 그림자를 드리우겠다고 다짐하는 듯이, 간밤의 하나같이 차갑고 강고하던 어둠 속 거미줄에 걸린 파리처럼 속박돼 있던 나무와 땅과 하늘 그리고 짐승들과 인간들을 마침내 분리하여 풀어준다. 그러고는 패망하여 절망한 군대처럼아직도 도주 중인 밤과 밤의 끔찍한 요소들이 하늘의 경계 너머로, 서쪽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광경을 태양은 가만히 응시한다.-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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