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그녀 앞에서 이제 와 구애를 거둬드릴 수도 없었다. 사랑 때문이라고 변명할 여지도 전혀 없고 그녀의 사촌 동생을향한 마음에 추호의 흔들림도 없으면서, 허영심에 발목을 잡히고 만 것이다. 패니와 버트럼 집안에서 이 일을 알지 못하게막는 것이 무엇보다 급선무였다. 러시워스 부인의 평판도 배려하기는 했겠지만, 그보다는 스스로의 평판을 위해서 비밀을 엄수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리치먼드에서 돌아왔을 때는 더 이상 러시워스 부인을 만나지 않아도 돼 다행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이후 전개된 사태는 모두 그녀의 부주의 탓에 벌어졌고, 그는 결국 어쩔 수 없이 그녀와 함께 도망을 쳤는데,
이때도 패니 생각에 안타까웠지만, 불륜 소동이 막을 내렸을때는 더욱 안타까웠다. 몇 달 동안의 대조적인 경험으로 패니의 상냥한 성품과 순수한 마음, 훌륭한 원칙의 가치를 더욱 깨닫게 된 것이다.
그가 저지른 죄의 몫에 합당한 크기의 벌, 공공연한 치욕의벌이 따라야 맞겠지만, 알다시피 이것은 사회가 미덕을 위해마련한 보호벽에 포함되지 않는다. 현세에서는 우리의 기대에 부응할 만큼 공평한 벌이 주어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꼭 내세의 더 정의로운 처벌을 고대하노라 할 필요는 없으니, 헨리크로퍼드 같은 분별력 있는 남자라면 적지 않은 울분과 회환의 벌을 스스로 가하고 있을 거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겠는가.
울분이 자책에, 회한이 참담함에 이르기도 했으니, 자신에게보여 준 환대에 그런 식으로 보답하고, 한 가족의 화평을 깨뜨려, 가장 소중하고 경복할 만한 최고의 교분을 박탈당하고, 열- P6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