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을 바쳤을 뿐 아니라 이성(理性)으로도 사랑했던 여성을 놓쳐버린 데 대한 자책이자 참담함이었다.
버트럼 집안과 그랜트 집안에 상처를 입히고 서로 소원해지게 만든 이 사건 이후에도 두 집안이 바로 이웃으로 지내야했다면 대단히 곤혹스러웠겠지만, 그랜트 부부가 일부러 여행을 몇 달 연장해 집을 비운 끝에 천만다행으로 영영 목사관을 떠날 필요 내지는 기회가 생겼다. 그랜트 박사는 이제 거의희망을 놓았던 연줄을 통해 웨스트민스터 성당에 봉직하게되었고, 덕분에 맨스필드를 떠날 구실과 런던에 거처를 마련할 핑계가 생기고 이주 비용을 충당할 만큼 수입도 늘어났으니, 떠나는 쪽에나 남는 쪽에나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랜트 부인은 워낙 사랑을 베풀고 받을 줄 아는 성품인지라 정든 정경들과 사람들을 떠나자니 좀 섭섭하기는 했겠지만, 바로 이런 행복한 성품 덕분에 어디에서 누구와 어울리든즐길거리는 충분히 확보될 것이고, 거기다 메리를 불러들일집까지 다시 생긴 것이다. 메리도 지난 반년 사이에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사귀어 봤고 허영과 야망과 사랑과 실연도 충분히 맛봤기 때문에, 언니의 진심 어린 보살핌과 언니의 이성적이고 평온한 생활이 절실히 필요했다. 자매는 함께 살았고, 그랜트 박사가 한 주 사이에 거창한 부임 만찬을 세 차례나 치른끝에 뇌졸중으로 사망한 후에도 계속 함께 살았다. 메리는 맏아들이 아니면 다시는 마음을 주지 않으리라 단단히 마음먹었지만, 그녀의 미모와 2만 파운드의 지참금에 끌린 위세 당당한 상속자들이나 나태한 법정 추정 상속인들 가운데서는- P6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