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내가 어떠한 시중도 원하지 않았고, 또 그에게 어떠한 요구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쇠고랑을 차고 있는 상황에서도 나리처럼 하인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내가, 그리고 나의 태도가 역겨운 것이다. 사실 나는 언제나 내 스스로 모든 것을 하려 했고, 더욱이 일도 하지 않는 손을 가진 유약한 귀족의 인상에서 벗어나려고 애쓰고 있었다. 만일 한마디해야 한다면, 이러한 이유의 일부에는 어느 정도의 자존심이 작용하기도 했다는 점이다. 어떻게 항상 그런 일이 벌어지게 되는지 이해할 수는없지만, 나는 내게 친절을 베풀며 시중을 들려는 여러 사람들을 거절할 수 없었고, 그들은 언제나 자진해서 내게 접근했으며, 결국에는 완전하게 나를 소유하고야 마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내 상전이며 오히려 나는 그들의 하인인 꼴- P274
이 되었지만, 외면상으로 보이는 나의 모습은 어찌 된 셈인지하인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귀족 나리가 되어 갔다. 이것은 물론 나에게도 매우 화가 치미는 일이었다. 그러나 우스찌쩨프는 폐병 환자이며 다혈질적인 사람이었다. 나머지환자들은 대부분 모종의 우월감까지 느껴지는 무관심한 표정을 보이고 있었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지만, 모두들 어떤특수한 상황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것은 죄수들이 주고받는말을 통해 알게 된 것인데, 바로 그 순간 태형을 받고 있는 미결수 한 사람이 그날 저녁에 끌려온다는 것이었다. 죄수들은호기심을 가지고 이 신입 죄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체형은가벼운 것이라며 기껏해야 5백 대 정도라고 말했다.- P275
속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폐병은 그럴 수 있는 병이 아니며, 첫눈에 진단이 가능한 병이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만, 단지 탈주를 방지하기 위해서 족쇄를 채우는 것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족쇄란 하나의 수치심이며 굴욕이고 육체적, 정신적 부담인 것이다. 최소한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실상 탈주하려고 마음먹으면, 족쇄는 아무런 방해 요소가 되지 않는다. 매우 서툴고 재주 없는 죄수라 할지라도 큰 어려움 없이 족쇄를 풀기도 하고 돌로나사를 빼낼 수도 있다. 족쇄는 결코 아무런 예방책이 될 수없다. 만약 족쇄가 기결수를 벌하기 위한 수단이라면, 다시한번 묻지 않을 수 없다. <죽어 가는 자에게도 과연 형벌이 필요한 것인가? 하고 말이다.- P284
죄수들도 역시 벌써부터 그를 괴물로 여기고 있었다. 옛날에, 물론 그다지 먼 옛날은 아니어서 기억은 생생하지만, 믿기는 어려운 시절에는 자신의 일에 애착을 가지고 충실하게 수행하려는 사람들이 그사람 말고도 많이 있었다. - P299
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는 원기 왕성하고 정열적인 천성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자기 의도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지만 만족해 하는 모습으로 보아매우 흥분한 상태에 있었다. 처음 체형을 받기 전에 그는 꼭죽을 것만 같다고 생각했다. 체형의 수를 언도받기 전에 이미무성한 소문을 들었으며 그때 이미 죽을 각오까지 하고 있을정도였다. 그러나 반을 치르고 난 후 용기를 갖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내가 지금껏 그렇게 심한 상처를 본 적이 없을 만큼반죽음이 된 상태로 병원에 실려 왔다. 그러나 그는 기쁜 마음으로 소문은 거짓이었으며, 그 정도의 몽둥이 세례는 이겨 낼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오랜 미결감 생활 후엔 끝없는 길,
탈출, 자유, 들판과 숲 등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희망을 꿈꾸기까지 하였다....... 퇴원을 하고 난지 이틀 후, 그는 나머지절반의 매를 견디지 못하고 처음 들어와 누웠던 침대에서 죽고 말았다. 이것에 대해서 나는 이미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체형을 기다리며 고통스러운 낮과 밤을 보냈던 죄수들이라도 막상 맞을 때는 가장 겁이 많다고 생각되던 자들도 예외 없이 의연하게 받아들이곤 했다. 나는 그들이 병원에온 첫날, 죽을 지경으로 맞았다 할지라도 신음소리를 내는 것을 거의 들어 본 적이 없다. 일반적으로 민중은 고통에 강한법이다. 나는 고통의 정도에 대해 여러 번 물어본 적이 있다.
고통이 얼마나 심한 것이며 무엇과 비교될 수 있는지 명쾌하게 알고 싶었던 것이다. 사실 무엇 때문에 이것을 알고 싶어했는지는 모르겠다. 단지 쓸데없는 호기심만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되풀이하지만, 나는 그들을 볼 때마다 거세지는 심장 고동을 느끼며 놀라움을 금하지 못했다. - P309
세상에는 피에 굶주린 호랑이처럼 냉혹한 사람도 있긴 하다.
채찍으로 때리는 권세에 한번 맛들인 사람, 하느님에 의해 자신과 같이 인간으로 창조된 형제들의 육체와 피, 영혼을 지배하고, 더할 수 없는 모욕으로 그들을 멸시할 수 있는 권력을경험해 본 사람은 그 자체에 도취하게 된다. 포악함은 습관이된다. 이것은 차차 발전하여 마침내는 병이 된다. 나는 아무리 훌륭한 인간이라 해도 이러한 타성 때문에 짐승처럼 우매해지고 광포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름지기 피와 권세는인간을 눈멀게 하는 법이다. 거만과 방종이 심해지고 급기야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비정상적인 현상도 달콤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폭군 앞에서 인권과 시민권은 박탈되고, 인간으로서의 가치 회복과 소생의 가능성은 거의 사라지고 만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전횡의 가능성은 사회 전체에 영향을끼치게 된다. 권력이란 마약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현상에 대해 무관심한 사회는 이미 그 기초가 위협받고 있는것이나 마찬가지다. 한마디로 말해서, 타인을 때릴 수 있는권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사회적 비리의 하나이며, 사회에내재하는 모든 문명적인 싹과 모든 시도들을 제거하는 가장강력한 수단이며, 사회 붕괴의 필연적이며 돌이킬 수 없는 완전한 근거인 것이다.- P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