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은 진보하면서 관찰을 위해 더욱더 작은 단위를 취급하고 이방법으로 진리에 접근하려 한다. 그러나 역사가 아무리 작은 단위를다루더라도, 다른 것에서 분리된 단위를 인정하는 것, 어떤 현상의 시작을 인정하는 것, 모든 인간의 자의가 한 역사적 인물의 활동 속에 나타난다고 인정하는 것 자체가 오류라는 것을 우리는 느낀다.
역사의 결론이 어떻든 비평가가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더라도 먼지처럼 흔적도 없이 소멸해버리는 것도, 그 관찰이 크든 작든 단편적 단위를 추출해서 한 것이기 때문이고, 취급된 역사상의 단위가 언제나임의적인 것이라면 비판도 언제나 그럴 권리를 갖는다.
관찰을 위해 무한소의 단위-역사의 미분, 즉 인간들의 동질의 욕구를 인정하고, 적분(이 무한소들의 합)의 방법을 터득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역사의 법칙을 이해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되는 것이다.- P405
이 거울이나 유리를 깨뜨릴 때의 감정이며, 인간이 (통속적 의미의) 분별없는 짓을 하면서 인간적 조건을 초월한 인생에 대한 최고의 심판이존재한다고 언명하고 자신의 개인적 권력과 힘을 시험해보려 할 때의감정이다.
슬로보드스키 궁전에서 그런 감정을 처음 경험한 그날부터 그는 줄곧 그 영향을 받아오다가 이제야 비로소 그것에 대한 충분한 만족을발견했던 것이다. 게다가 지금까지 이 방향으로 해오던 일들은 그게획을 지탱하고, 그것을 단념할 가능성을 없애버렸다. 만약 지금 그가다른 사람들처럼 모스크바를 떠난다면 집을 나온 것도, 카프탄도, 권총도, 모스크바에 남겠다고 로스토프가 사람들에게 공언한 것도 다 무의미해질뿐더러, 그가 한 모든 행동이 멸시를 받고 웃음거리가 되고말 것이었다(피예르는 이런 것에 민감했다).
피예르의 육체적인 상태는 언제나처럼 정신적인 상태와 일치했다.
익숙지 않은 변변찮은 음식, 요 며칠 마셔댄 보드카, 와인과 시가의 결핍, 갈아입지 않아 더러워진 옷, 짧은 소파에서 침구도 없이 보내며 절반은 잠을 이루지 못한 이틀 밤, 이 모든 것이 피예르를 광기에 가까운흥분상태에 빠뜨렸던 것이다.- P540
늦은 밤이나 와인에 취했을 때 흔히 그렇듯 피에르는 대위의 이야기를 듣고 온전히 이해하면서도 왠지 모르지만 갑자기 떠오른 자신의 추억들을 더듬고 있었다. 연애 이야기를 듣는 동안 그는 불현듯 나타샤에 대한 자신의 사랑이 떠올랐고, 그 사랑의 여러 장면을 공상하면서내심 그것을 랑발의 이야기와 비교하고 있었다. 피에르는 얼마 전 수하레프 탑 옆에서 사랑하는 대상을 만났던 일을 아주 자세하게 떠올려보았다. 당시 그 만남은 그에게 별 영향을 주지 않았고, 그뒤로 생각한적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만남이 아주 의미심장하고 시적인 것처럼 느껴졌다.- P559
사랑을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고 운을 뗐다. 그는 지금까지 살아오며오직 한 여자만을 사랑해왔고 지금도 사랑하지만, 그 여자는 절대 자기 것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저런!" 대위는 말했다.
피에르는 아주 젊었을 때부터 그녀를 사랑했지만, 그녀가 너무 어린데다가 자기는 이름도 없는 사생아였기 때문에 감히 생각지도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후 부와 이름을 얻었을 때는, 그녀를 너무나 사랑하고이 세상에서 가장 그 자신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있는 존재로 그녀를 생각했기 때문에 역시 생각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이야기가 여기까지 이르렀을 때 피예르는 대위를 바라보며, 이런 기분이 이해가 됩니까? 하고 물었다.
대위는 비록 이해되지는 않지만 어쨌든 이야기를 계속해달라는 몸짓을 했다.
"플라토닉러브, 구름 같군......" 그는 중얼거렸다. 와인 때문인지,
털어놓고 싶은 욕구 때문인지, 아니면 상대방이 자기가 이야기하는 인물을 모르고 또 알 리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인지, 혹은 이 모든 것이합쳐진 때문인지 어쨌든 피에르는 말문이 트였다. 그는 촉촉해진 눈으로 먼 곳을 바라보며 잘 돌아가지 않는 혀를 놀려 자신의 결혼, 자신과가장 가까운 벗에 대한 나타샤의 사랑, 그녀의 변심, 그녀와 자신의 덤덤한 관계 등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랑발의 물음에 이끌려 그는 처음에 숨기던 신분과 이름까지 말했다.
피예르의 이야기에서 무엇보다도 대위를 놀라게 한 것은 그가 모스크바에 대저택을 두 채나 가진 대단한 부자라는 것과 그가 모든 것을- P560
그는 파리가 얼굴에 닿을 때마다 타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그러면서동시에 얼굴 위로 뻗어가는 건물에 파리가 정면으로 부딪는데도 건물이 부서지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그러나 그 밖에 또하나 중요한 것이있었다. 그것은 문가의 하얀 것이었고, 스핑크스 같은 그것 역시 그를압박했다.
‘그러나 저것은 탁자 위에 있는 내 루바시카인지도 모른다.‘ 안드레이 공작은 생각했다. ‘이것은 내 다리, 저것은 문인데, 왜 마구 높이 뻗어가는 거지? 이 피치피치피치 이치치..... 아아, 이제 그만,
그만둬. 제발 그만둬.‘ 안드레이 공작은 누군가를 향해 괴로운 듯이 애원했다. 그러자 느닷없이 다시 상념과 이미지가 이상하리만큼 선명하고 강렬하게 떠올랐다.
‘그렇다. 사랑이다(그는 다시금 아주 맑아진 머리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무엇을 얻기 위해서도 아니고, 무슨 목적이나 이유가 있는것도 아닌, 내가 빈사의 순간에 원수를 만나 사랑하게 됐을 때 경험한사랑이다. 나는 영혼의 본질이자, 대상을 필요로 하지 않는 참된 사랑의 감정을 경험한 것이다. 나는 지금도 그 행복한 감정을 맛보고 있다.
이웃을 사랑하고, 적을 사랑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사랑하는 것은 모든 것에 나타난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친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인간의 사랑으로 할 수 있지만, 적을 사랑하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으로만 가능하다. 그래서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고 느꼈을 때그런 기쁨을 맛보았던 것이다. 그는 어떻게 됐을까? 살아 있을까?.....
인간의 사랑은 미움으로 옮아갈 수도 있지만 하느님의 사랑은 변하지않는다. 어떠한 것도, 죽음도 그것을 파괴할 수 없다. 그것은 영혼의- P575
본질이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며 얼마나 많은 사람을 미워했던가.
그리고 모든 사람 중에서 그녀만큼 내가 사랑하고 또 미워하던 사람은없었다. 그리고 그는 나타샤를 생생하게 떠올렸는데, 이전처럼 자기에게 즐거움을 주는 매력을 지닌 존재로서가 아니라 처음으로 그녀의영혼 그 자체로 그려보았다. 그는 그녀의 감정, 고통, 수치, 후회를 이해했다. 그는 이제야 비로소 그녀에 대한 거절의 잔인함을 절연의 냉혹함을 깨달았다. ‘한 번만 더 그녀를 만날 수 있다면, 한 번만 더, 그눈을 들여다보고, 말할 수.......
이 피치피치피치 이치치 이-피치피치-쾅, 파리가 부딪혔다. 그리고 그의 주의는 갑자기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고 있던꿈과 현실의 다른 세계로 옮아갔다. 이 세계에서는 여전히 그 건물이무너지지 않고 지어지고, 여전히 무언가가 뻗어가고, 여전히 빨간 동그라미에 싸여 초가 타고, 여전히 루바시카-스핑크스가 문가에 있었는데, 다른 무언가가 삐걱하더니 신선한 바람이 불어들고, 하얀 스핑크스가 문 앞에 새로이 나타났다. 이 스핑크스의 머리에는 그가 방금생각했던 나타샤의 창백한 얼굴과 반짝이는 눈이 있었다.
‘오오, 이런 끝도 없는 환각은 싫다!‘ 안드레이 공작은 뇌리에서 그얼굴을 몰아내려 애쓰며 생각했다. 그러나 그 얼굴은 현실의 힘을 가지고 앞에 서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점점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안드레이 공작은 그때까지 떠올리던 순수한 상념의 세계로 되돌아가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고, 환각은 그를 자기의 영역으로 더욱 깊이 끌어들였다. 작게 속삭이는 목소리가 규칙적으로 계속 들려오고, 정체불명의무언가가 여전히 압박하면서 뻗어가고, 이상한 얼굴이 그의 눈앞에 서- P5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