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 시대에 우리는 과연 무엇을 어떻게 배워야 할까?
- 기술은 어디까지 우리를 도울 수 있으며, 또 어디부터는 스스로 묻고 사유해야 하는가?
본서는 근본적인 사유의 문을 두드리는 책이었다. 휘발성 높은 기술 정보나 AI 트렌드 소개서를 기대했다면 첫 장에서 다소 당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책장을 넘길수록 이 책은 기술서라기보다 시대와 인간, 언어에 관한 깊은 인문학적 대화라는 것을 알게 된다. 무엇보다도 세종대왕의 ‘훈민정음’을 오늘날 생성형 AI의 도입과 겹쳐 읽는 시도는 이 책만의 독특한 통찰이었다.
저자는 인공지능을 단순한 도구나 기술의 혁신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문자의 발명이 그러했듯, AI의 등장은 인간의 언어 체계와 사고 구조에 커다란 전환점을 만들어내는 ‘언어 혁명’으로 바라본다. 그 시선의 전환은 매우 중요하다. AI는 단순히 인간의 말을 흉내 내는 기계가 아니라, 우리 안에 잠재되어 있던 ‘질문하는 능력’을 다시 끄집어낸다. 저자들은 이를 위해 비트겐슈타인, 조지 오웰, 단테, 벤야민, 니체 등 사상가들의 개념과 문장을 곳곳에 불러온다. 이들은 AI 시대의 언어, 자유, 사유, 감각, 존재에 대해 다시 질문하게 하는 ‘철학적 동행자’로 기능한다.
AI와 인간의 관계를 설명하는 데 있어 이 책은 고전적 은유에 그치지 않는다. ‘패턴’, ‘유추’, ‘창발성’, ‘감각 인터페이스’와 같은 개념은 AI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게 하면서도, 그 기술이 인간의 삶에 미칠 문화적 충격을 함께 성찰하게 만든다. 특히 AI가 단지 정확한 답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감각과 질문을 다시 구성하게 만드는 존재로 묘사되는 부분이 인상 깊었다.
책을 읽으며 인상깊었던 점은 AI 시대를 살아가는 '태도'를 살펴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나 역시 AI를 일상에서 사용하는 사람으로서, 정보를 빨리 얻거나, 텍스트를 자동화하는 데 만족해온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기계적 효율에 익숙해진 감각을 흔들어 놓는다. 질문을 더 잘 던지기 위해 어떤 사유가 필요한지, 나의 언어는 어떤 사고 구조에서 비롯되었는지를 되묻게 만든다.
책에서는 AI를 인간 지능의 거울처럼 바라본다. 그것이 생성하는 문장, 그림, 음악은 사실상 인간이 남긴 사고의 흔적을 패턴화하고 재조합한 것이다. ‘창조가 된 미메시스’라는 개념처럼, AI는 인간적 의미를 기계의 방식으로 되비추며, 우리에게 더 깊은 자기 성찰의 기회를 준다.
정리하자면, 본서는 빠른 기능 숙지보다는, ‘지금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배워야 할까’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품은 이들에게 어울리는 책이다. 특히 AI 시대의 교육, 언어, 창작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올 것이다. 기술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그것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고민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하나의 방향을 제시해줄 수 있다.
나아가 AI와 함께 일하는 실무자들, 혹은 ‘AI 리터러시’를 고민하는 교육자들, 그리고 생성형 AI를 ‘창작의 동반자’로 여기는 예술가나 기획자라면 이 책을 꼭 한번 펼쳐보길 바란다. 기술 너머를 보고자 하는 사람에게, 『AI 훈민정음』은 그 질문의 언어를 선물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