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는 40년 가까이 '히가시노'라는 장르를 만들어온 작가다. 긴장의 끈을 끝까지 놓지 못하게 만드는 치밀한 전개, 사람의 내면을 흔드는 묘사, 그리고 언제나 예상 너머에 있는 반전. 하지만 『가공범』을 펼쳤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번 작품은 다르다.’
도도 야스유키 부부의 자택이 불에 타고, 그 안에서 두 구의 시체가 발견된다. 모두가 불에 의한 사고사라 추측하지만, 사건은 곧 타살로 밝혀지고, ‘가공의 범인’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면서 이야기의 방향은 완전히 뒤틀린다. 사건의 실체를 파고드는 주인공 고다이 쓰토무는 히가시노의 이전 작품 속 탐정들과는 결이 다르다. 똑똑하거나 특출난 능력이 아니라, 묵묵히 발로 뛰며 사람을 만나고, 천천히 진실에 가까워지는 평범한 형사다. 그러나 바로 그 ‘평범함’이, 이번 작품의 가장 큰 설득력이기도 하다.
고다이의 여정은 일본 전역을 넘나드는 장거리 수사로 이어진다. 여기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현실에 발붙인 사람들이다. 화려한 반전보다 더 인상 깊은 건, 그들이 품은 사소하고도 깊은 감정이다. 이 책의 반전은 대단한 트릭이나 전율이 아니다. 오히려 ‘그래서 이 사람이 이렇게 행동했구나’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감정의 납득이다.
처음에는 히가시노 특유의 긴박한 전개를 기대했다. 그런데 말이다. 책을 덮었을 때 내게 남은 것은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와, ‘나는 얼마나 누군가의 진심을 곡해하고 있었을까’ 하는 질문이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가공범』을 통해 독자들에게 아주 은밀하게 말을 건다. "진실이란 언제나 누군가의 시선 속에 왜곡되어 있다"고. 그렇기에 우리는 더 자주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들어야 하고, 감정의 이면을 헤아려야 한다.
이 책은 속도감 있는 전개보다는 깊이 있는 감정선과 진실 탐색에 무게를 둔다. 그래서 히가시노의 기존 추리물 팬보다는, 사람의 심리와 사회적 맥락에 관심 있는 독자, 혹은 미스터리를 넘어서 삶의 진실에 다가가고 싶은 이들에게 더 잘 어울리는 책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하고 싶은 것’ 앞에서 주저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 조용한 용기를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