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놓고 한참 두었다가 이제서야 읽었네.
소설집인 관계로 여러 단편이 담겨 있지만,
가볍고 행복하게 진행되는 이야기는 하나도 없는 단편.
글 안의 사람들은 무언가를 잃었거나 잃어가고 있다.
언젠가 내가 겪었거나 들었던 이야기인양,
이 안의 이야기들은 주변의 어떤 이야기들을 닮아 있다.
어느샌가 놓쳐 버리거나 놓아 버린 사랑과 우정들.
사람의 삶이란 평화롭고 행복하기만하면 안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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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밤이 있었다. 사람에게 기대고 싶은 밤. 나를 오해하고 조롱하고 비난하고 이용할지도 모를, 그리하여 나를 낙담하게 하고 상처입힐 수 있는 사람이라는 피조물에게 나의 마음을 열어 보여주고 싶은 밤이 있었다. 사람에게 이야기해서만 구할 수 있는 마음이 존재하는 지도 모른다고 나의 신에게 조용히 털어놓았던 밤이 있었다.
우리는 남은 차를 마저 마시고 가방을 든다. 구원이니 벌이니 천국이니 지옥이니, 하물며 사랑이니 하는 이야기는 더는 입에 올리지 않은 채로. 우리는 밖으로 나간다. 각자의 우산을 쓰고 작별 인사를 나누고 뒤돌아 걸어간다. 그렇게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