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내 몸을 편하게 느끼기 시작한 어떤 전환점, 어떤 뚜렷한 순간은 없었다. 다만 나는 시스젠더 남성이 아닌 사람과이트하면서부터 퀴어의 몸들을 즐기게 되었고, 우리가 이처럼무한히 창의적인 방식으로 자신을 빚어낸다는 사실을 즐기게되었다. 그런 몸들과 그 속에 담긴 사람들을 욕망하면서부터내 몸도 그렇게 욕망될 수 있다는 것, 남들로부터만이 아니라나 자신으로부터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로부터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 나는 퀴어성의 뒤틀린 반전을 겪는데,
내 가슴과 엉덩이가 작아졌으면 좋겠다고 바라기 시작하자 오래된 혐오가 다시 예전과는 다른 각도로 보글보글 솟아오르는것이 아닌가. 이번에는 이 희망이 내게도 볼썽사납게 느껴진다.
왜냐하면 나는 중성적인 몸이 다양한 사이즈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좁은 엉덩이가 보편적 목표는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도 유치한 부러움이 새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아마도 나는 언제나 내 몸과, 내 몸이 바라는 바와, 내가 내몸에게 바라는 바와 타협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P52
독립된 도덕적 중추를 갖추고 스스로 그에 부끄럽지 않게 행동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복잡한 뇌를 가진 생물로서 물려받은 숙제다. 복잡한 뇌에는 사랑이나 섹스나 차에서 더듬는 것같은 불가해한 즐거움이 따르지만 또한 감정이입의 의무, 누가비틀거리는 것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는 의무도 따른다.- P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