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무엇인가? 이는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제기되어온 문제이지만 사실상 정답이 없는 질문이다. 시대에 따라 사랑의 의미와 실천 양식은 다양하게 변화해왔다. 따라서 '사랑이란 무엇이다'라고 거칠게 단정지어 말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또한 어떠한 학문으로 사랑이라는 개념에 접근하는지에 따라서도 사랑을 정의하는 방법은 크게 달라진다. 이렇듯 쉽사리 정의하기 어려운 복잡한 '사랑'의 개념을 융합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세 교수가 모였다. 주경철, 정재승, 박지현 교수가 그들이다. 서양사학, 뇌과학, 중어중문학을 전공하는 이들 교수 세 명이 모여 서로 다른 시선으로 사랑이라는 주제에 대해 접근한다. 이들의 치열하고도 유쾌한 논의를 엮어 정리한 책이 <사랑>이다.
이 책은 총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사랑의 역사'로, 서양사학과의 주경철 교수가 집필했다. 2장은 '사랑을 바라보는 과학의 시선'으로, 뇌과학과의 정재승 교수가 집필했다. 3장은 '문학 속 사랑의 담론'으로, 중어중문학과의 박지현 교수가 집필했다. 서로 다른 학문 분야에서 사랑이라는 주제에 대해 어떠한 이야기를 펼치고 서로 어긋나는 부분은 무엇인지 살펴보며 사랑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된다.
1장 '사랑의 역사'에서 주경철 교수는 유럽 역사에서 사랑이 어떻게 변화하고 발전해갔는지 추적한다. 중세에는 기독교의 거대한 영향력 아래 남녀 간의 사랑, 특히 육체적인 쾌락이 극도로 억압되었다. 그런데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기사도적 사랑'이라는 지극히 이상화된 사랑의 관념이 탄생하기도 했다. 근대 초기에는 억압적인 가부장제가 공동체의 질서를 엄격히 규제하여 개인의 사랑은 억눌려 있었다. 이 시기는 가부장적이었기 때문에 남녀 간의 관계가 불평등했으므로 사랑이 가정의 중심 개념이 될 수 없었다. 그런데 18세기에 접어들며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크게 바뀌었다. 남녀 간 또는 가족 사이의 관계에서 점차 완고한 성격이 완화되었다. 이와 같은 변화는 18~19세기에 정점에 이르러 19세기 초반에 드디어 사랑이 해방된다. 낭만적 사랑이 시작된 것이다. 사랑하는 이들이 만나 결혼하여 따뜻한 가정을 이룬다는 이상이 사람들에게 확고하게 정립된다. 그러나 사랑은 해방되자마자 곧 폭발하였고, 변질되기 시작했다. 사회의 거대한 변화와 맞물려 남녀 간의 관계도 점차 복잡한 형태를 띠면서 20세기로 진입한다.
2장 '사랑을 바라보는 과학의 시선'에서 정재승 교수는 수많은 실험과 통계를 소개하며 '사랑의 본질'을 탐구한다. 먼저 첫눈에 반한 사랑은 실재하는 것일까? 사랑학 연구자들은 '첫눈에 반하는 사랑'을 사랑이 아니라 생물학적 이끌림으로 해석한다. 누군가 왜 그 사람을 사랑하냐고 물었을 때 구체적인 답변을 대지 못하고 '특별히 어떤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 그냥 다 좋다'라는 답변을 한다면, 그 사랑은 원인을 알 수 없는 생물학적 이끌림 때문이라는 고백과 다름없다. 또한 헬렌 피셔의 연구에 의하면 시선 교환이 사랑의 감정을 증폭시키는데, 이는 인간의 원시적 본능 때문이다. 눈과 눈이 마주치면 인간은 접근과 후퇴 두 전략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되는데 현대에 와서도 그러한 인간의 동물적 습성이 남아 있는 것이다. 인간들은 서로 비슷하면 호감을 느끼고 유사한 성격의 사람과 함께 살 때 만족을 느낀다. 태도와 관심의 유사성은 사람이 서로에게 매력을 느끼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처음 만나는 상대를 사로잡고 싶다면 상대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에 관심을 갖고 이야기하며 상대와 유사한 말투를 쓰는 게 좋다.
3장 '문학 속 사랑의 담론'에서 박지현 교수는 중국 문학의 여러 텍스트를 통해 동양의 사랑은 서양 문명과는 다른 맥락에서 다른 가치를 지니며 변화해왔음을 이야기한다. 초창기 사랑에 관한 중국의 문학 담론에서 '거리'는 사랑을 구성하는 본질적 요소였다. 사랑의 정당성과 숭고성을 확보하기 위해 거리라는 문학적 장치가 사용되었고, 이를 통해 그리움이 사랑의 실체로 표현되었다. 이후 욕망이 문학 속에서 담론화되기 시작했다. 전국 시기 초 지역의 문학가들은 성을 신화적 환상성과 결합시켰다. 「고당부」 등의 작품에서 현실의 제왕들은 신녀를 만나 낭만적인 하룻밤의 사랑을 나눈다. 이와 같이 로맨스에 환상적 요소가 포함된 이유는 인간의 근원적 욕망을 미학의 경계로 끌어올리기 위함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욕망이 아닌 약속으로서의 사랑이 문학 담론에 등장한다. 「공작동남비」 등의 작품을 통해 약속으로서의 사랑이 모습을 나타냈다. 신의와 사랑이 결합하여 남녀 간의 사랑이 단순한 감정이나 욕망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의 동력으로 인지되기 시작했다. 또한 사랑을 유지시키는 힘으로 '정'이 대두된다. 사랑의 신의는 단순히 약속이라는 형식과 그 형식에 대한 이성적 추구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정이 사랑의 신의를 지켜주기도, 회복시키기도 하는 것이다. 정은 이성이 아닌 감성의 차원으로 존재하며, 욕망으로서의 열정과 별개로 마음의 교감, 진심, 진정성을 통해 사랑을 지탱한다.
책을 읽으며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로, 내가 당연히 여기던 사랑의 개념과 행동 양식이 사실 수많은 역사적 변화를 겪으며 정립된 것이라는 사실이다. 특히 18세기까지만 해도 가정에 있어서 사랑은 필수 요소가 아니었고, 가정은 아이의 출산과 경제 활동 두 가지의 의미에서 생산의 장소였을 뿐이라는 점이 놀라웠다. 또한 역사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자유연애를 꿈꾸고 원하는 상대와의 결혼을 그토록 바랐는데, 자유연애와 자유결혼, 심지어 비혼까지 모든 것이 가능해진 현대에 과연 사람들은 더 행복해졌을지 의문이 들었다. 인간의 역사를 살펴보면 언제나 지금 갖지 못한 어떤 것을 강렬히 열망하고 추구하지만, 정작 그것을 손에 넣게 되면 그로 인한 기쁨은 잠깐이고 이후에 발생하는 또 다른 문제를 맞닥뜨리며 그로 인해 괴로워한다. 그 문제가 해결된 유토피아를 또 꿈꾸고, 막상 그 문제가 해결되면 또 다른 문제에 부딪힌다. 이러한 인간의 특성이 지금과 같이 인간의 삶에 다양한 변화를 만들어내고 어떤 면에서는 발전을 이루어내는 원동력이 되었을 수도 있지만, 항상 가진 것에는 놀랍도록 빨리 적응하고 갖지 못한 것에 불행해하는 우리의 본성이 안타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둘째로, 과학의 발달로 인해 발생한 진화생물학과 철학의 대립이다. 다윈이 <종의 기원>을 발간하여 전 세계에 진화론이 등장한 이후로 진화생물학이라는 학문이 눈부신 속도로 발전했다. 진화생물학에서는 인간의 본성, 심리, 사유, 행동 등이 진화의 결과라고 보고 그에 대한 과학적인 설명을 제공한다. 진화생물학이 다루는 문제에는 사랑 등 철학, 문학 등에서 다루는 문제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기존에 인문학에서 인간의 마음이나 심리에 대해 설명하던 부분들을 진화생물학이라는 새로운 렌즈로 바라보면 전혀 다른 설명이 가능해진다. 이에 진화생물학적 입장과 인문학적 입장을 어떻게 균형 있게 받아들일 것인지가 중요해진다. 예를 들어 사랑이라는 개념을 인간의 성적 욕망이 복잡하고 미묘하게 발현된 것이라고 볼 것인지, 생물학적인 성적 끌림을 포함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정신적인 부분이 있다고 볼 것인지, 생물학적인 것과 별개로 영혼과 영혼 간의 진정한 소통, 진정성, 이타심 등이 핵심이라고 볼 것인지는 각자의 판단에 달려 있다. 나는 사랑이라는 심적 상태의 근원은 인간의 진화적 본성이라는 것에 동의하지만, 사랑 그 자체에는 좀 더 복잡하고 정신적인 측면이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성적 욕구가 사랑의 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서로의 내면을 공유하며 깊은 대화를 나눌 때 얻는 정신적 기쁨, 힘들 때 격려해주고 즐거울 때 행복을 나누는 우정, 서로를 믿는 신뢰감, 내가 희생해서라도 상대를 도와주고 싶은 강렬한 이타심 등은 단순한 섹슈얼리티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따라서 진화생물학과 인문학 양쪽을 모두 이해하여 균형 잡힌 시각으로 사랑이라는 문제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며 서로 다른 학문 분야에서 사랑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 수 있어 신선하고 유익했다. 보통 융합이라는 키워드를 내세우는 책들 중에는 내용의 깊이가 얕아 그닥 읽은 보람이 생기지 않는 책이 더러 있다. 그런데 이 책은 내용도 깊이 있으면서 서로 다른 학문을 융합적으로 잘 엮어낸 양서라고 생각한다. 사랑에 대해 다양한 관점에서 이해하고 싶은 사람에게 기쁜 마음으로 일독을 권한다.
[ 한 줄 긋기 ]
- 그런데 에로스와 아가페 모두 우리가 생각하는 남녀 간 사랑과는 분명 다르다. 단적으로 말해서 에로스나 아가페는 '개인적(personal)'이지 않다. ... 낭만적인 사랑은 두 영혼 간에 일어나는 유일무이한 관계이지 대체 가능한 관계가 아니다. 물론 청춘남녀 간의 사랑에는 대개 에로스적인 요소가 개입되기 마련이지만, 그렇다고 사랑에 빠진 남녀가 꼭 육체적인 끌림으로만 움직이지는 않는다. ... 남녀 간 불꽃 튀는 사랑에는 인간 보편을 향한 선한 태도(아가페)라든지 강렬한 육신의 욕망(에로스)이라는 두 요소와 일부 겹치는 부분도 있지만, 분명 그런 것과는 구분되는 특별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31~32p)
-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는 무엇일까? 누구는 강력한 국가기구의 발전이라 할 것이고, 누구는 산업혁명 이후 엄청난 속도로 진행된 경제성장이라고도 할 것이다. '거시적'인 요소를 중시한다면 그런 설명이 가능하겠지만, 우리가 주목하는 '미시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 간의 관계가 근본적으로 바뀌는 일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남녀 간의 만남, 공동체와 가족 간의 관계, 부모와 아이 간의 친밀감 같은 가장 기본적인 인간관계가 역사적으로 변화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다. (92~93p)
- 인류 역사 대부분의 기간 중 결혼 제도는 대게 경제적 혹은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한 가문의 결합을 목적으로 했다. 인적 관계를 확대하고 재산을 합치는 방식으로 삶의 틀을 확고하게 만드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므로, 청춘남녀 간 애틋한 감정이라는 불안정하기 짝이 없는 기반 위에 결혼을 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 사랑하는 연인끼리 만나 삶을 함께 한다는 이상, 곧 낭만적 사랑에 의한 결혼은 오랜 기간의 변화를 거쳐 비교적 최근 시대에 와서야 자리잡았다. (94p)
- 때로는 지상천국의 환희를 안겨줄 듯하다가도 때로는 청춘남녀들을 너무나 애처롭고 힘들게 몰아가는 사랑의 본질이 무엇일까?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자 존재이유일까, 젊은 날 한때의 가슴 아픈 성장통일까, 혹은 그 아무것도 아닌 허황된 신화에 불과할까? (95p)
- 우리를 평생 깨어 있게 하는 것, 남의 얘기는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으며, 내 얘기는 묻지 않아도 들려주고 싶은 것.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물어보지만, 사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제각기 다른 것. 그것이 바로 사랑이다. (99p)
- 미국의 시인 존 키츠의 표현대로, 사랑이란 '온갖 자극과 감정이 뒤섞인 소란'인 것이다. (132p)
- 한때 연인이었던 상대에 대한 매몰찬 분노는 고통스럽긴 하지만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수 있는 마음 상태를 준비해준다. ... 연인들이여, 실연의 분노를 받아들이라. (152p)
-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로 가장 좋은 것은 '가까운 친구와 나누는 속 깊은 수다'다. (157p)
- 이와가 생을 망가뜨린 사람이자 구원한 사람이란 설정은 의미심장하다. (영화 <아가씨> 생각난다!) (226p)
- 우리가 적어도 인생에 한번쯤은 경험하게 되는 사랑의 열병, 그 '진정성'의 실체는 무엇일까. 자기 복제를 위한 DNA의 욕망일까. 그 혹은 그녀와 섹스를 하고 싶다가 아니라 함께 있고 싶다로 느껴지는 그 감정의 실체, 때론 키스보다 감미로운 대화, 세상 다른 어떤 일도 생각할 수 없는 정신의 몰입, 나를 다 내어주고도 후회가 없는 강렬한 이타심, 그리고 집착, 이 모든 것이 생물학적 욕망의 고도로 발달된 자기기만과 포장의 결과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엄밀히 말하면 욕망은 변화의 주범이 아니다. 욕망은 예나 지금이나 내 안에 변함이 없다. 욕망의 메커니즘은 언제나 일정하고 균일하다. 오히려 변화의 주범은 이 욕망을 어떻게 발현할까를 결정하는 내 안의 '마음'이다. (260~261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