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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or7942님의 서재
  • 막상스 페르민
  • 12,600원 (10%700)
  • 2019-01-31
  • : 534

눈이 내리던 날, 막상스페르민의 '눈'을 읽었다. 비교적 짧은 문장의 얇은 책이라 쉽사리 읽었지만  여운이 제법 길어서 한동안 내리던 눈을 멍하니 쳐다만 보고 있었다. 눈의 결정이 맨눈으로도 보이는 싸락눈이었는데 휘몰아치는 바람에 사방으로 나부껴서 마치 지상에서 천상으로 내리는 것만 같았다. 말이 안돼는 광경이겠지만 방금 읽은 책의 여파인지 '그럴수도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흰눈을 동경한 젊은 시인이 사랑의 색으로 자신의 개성을 찾아낸 이야기. 소설은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다. 그리고 그 과정은 아름답고 몽환적이며 비현실적이지만 강렬했다. 마치 오늘 내린 눈처럼 말이다.


프랑스 작가가 왜 일본을 배경으로 하였는가의 질문으로 부터 시작한 읽기였다. 일본의 하이쿠라는 시문학을 소재로 가져온 것도 의야했다. 왜 프랑스 배경의, 프랑스 문학이 아니면 안됐는가. 그들에게도 알프스가 있고 위대한 시인들이 있는데. 젊을 때 일본에 살았다던지, 여행을 했다던지. 소위 오타구라던지. 굳이 작가의 내력을 찾아보고 억지로 이해하고 싶진 않았다. 서양인의 동양문화에 대한 동경으로 보기엔 너무 단순한 합리화겠지만 이 가정만이 어느 정도 납득이 되지 않나 싶다. 한국인으로써 받아들이기엔 상당히 거슬릴 수도 있는 부분이기에 '일본'문화에 대한 동경보다는 '동양'문화에 대한 동경으로 이해하는 것이 편하다 본다. 사실 우리 문화도 그렇지 않은가. 작가가 한국에 대한 이해가 있었다면, 눈이 아니라 화선지를 소재로 삼았을지도 모른다. 흰 화선지 위의 여백의 미. 그리고 시조 한편. 일본인 유타가 아닌 한국인 김개똥이 위대한 사랑을 발견하고 그 힘으로 자신만의 화풍으로 먹칠을 해놓는 것. 그렇게 치환하면 될 것이다. 



자네의 작품은 놀랍도록 아름답네...(중략)...눈처럼 희네. 그런데 색이 없네. 회화가 없다는 뜻이지.(~p.38)


붓을 들고 직접 그림을 그리라는 뜻이 아니다.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그려보라는 것. 볼수 없는 것을 볼수 있었던 스승 소세키처럼 시간의 흐름으로 세상을 인식하는 것이 아닌 내 마음의 참된 울림으로 세상을 봐야한다는 것이다. 지난겨울에 있었던 눈을 지금 당장 볼 수 있는 그 마음의 눈을 말이다.



사랑이란 가장 어려운 예술이기 때문이지. 글을 쓰는 것, 춤을 추는 것, 작곡을 하는 것, 그림을 그리는 것은 모두 사랑하는 것이네. 그것들은 줄타기와 같네. 가장 어려운 건 떨어지지 않고 걷는 것일세...(중략) ... 예술이 그럴 절망과 죽음에서 구해냈네. (~p.61) 

 

사랑은 혼자하는 것이 아니므로. 가장 어려운 예술이다. 외줄타기처럼 한번의 실수로 영원히 그 사랑을 잃고 나락에 빠질 수도 있지만 해낸다면 누구보다 환희에 가득찬 충만함을 느낄 수 있는 성취감을 주는 행위. 작가는 그런 줄타기를 직업으로 가진 여성으로 소세키의 아내인 프랑스인을 등장시킨다. 그녀는 소세키의 뮤즈였다. 그런 뮤즈를 잃는 고통에서 그를 건져낸 건 예술이었다. 마음의 눈을 가진 경지에 이르르면 그는 언제나 아내인 네에주(눈)와 함께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시인은 줄타기 곡예사의 예술을 지니고 있네. 시를 쓴다는 건 아름다움의 줄을 한 단어 한 단어 걸어가는 것일세. (~p.100) 


위대한 줄타기 곡예사는 매번 같은 줄을 타지 않는다. 위대한 시인도 눈이라는 흰 백지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좀 더 과감하고 위험하게 도전하고 성취해내야 '위대함'이라는 칭호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올 겨울은 얼마나 더 눈이 올지 모르겠다. 온통 하얗게 된 세상에서 내 색을 과연 무엇인가 생각해본다. 내 삶의 줄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으며 살아내야 할 것인가. 나는 그 하얀 줄을, 어떻게 칠해왔고 앞으로 어떻게 채워나갈 것인가. 불혹(不惑)을 지났음에도 나는 바른 판단력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가 반문해본다. 눈이, 더 왔으면 좋겠다. 아니 오지 않아도 상관이 없다 눈을 감고 눈이 오는 날을 상상해본다. 그러면 앙상한 가지의 나무를 단풍색으로 칠하고, 분수대는 무지개빛으로 칠해야지.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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