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공자들이 대체로 그렇듯, 나도 ‘과학’이라는 단어에 막연히 서먹함을 느낀다. 어릴 적에는 ‘과학 소년’이라는 빳빳한 코팅지에 올컬러로 인쇄된 고가의 잡지도 즐겨 읽었고 알코올램프와 플라스크, 시험관을 다루는 과학시간을 손꼽아 기다렸었는데. 잉크도 마르지 않은 민증을 받을 즈음에 수식과 화학식에 진절머리를 내며 이과가 아닌 문과를 선택하면서부터였을까? 성인이 되고부터는 전공 외 교양서를 읽을 때도 공학과 함께 과학 분야는 슬쩍 빼 놓게 됐다.
물론 SF소설이 과학 교양서와는 궤를 달리한다는 건 알고 있다. 역사소설과 역사 교양서에서 느끼는 재미가 다른 것처럼. 아무튼 내게 SF란 ‘얼굴정도만 기억나는 어색한 초등학교 동창의 친구’정도의, 썩 호감이 가지 않는 카테고리였다. 소설 원작 영화를 보면 꼭 원작소설을 찾아보는 내가 ‘마션’만은 건너뛰었을 정도니까.
딱 거기까지였다면 서평이벤트에 응모하지 않았을 텐데, 마침 완충작용을 해주는 중간다리가 있었다. 알라딘에서 SF작가들이 의기투합해 원고를 모은 단편집을 펀딩한 것이다. 워낙 한정판, 초판을 좋아하는지라 흥미가 없는 장면임에도 기계적으로 펀딩을 했고, 잊을 때 쯤 책이 도착했다. 책은 재미있었다. 내친김에 마음에 드는 작가의 단편집도 찾아 읽었다.
조금 더 호흡이 긴 장편소설로 넘어가볼까, 하고 고민하던 차에 ‘오늘의 SF’가 눈에 띄었다. 인터뷰, 에세이, 단편, 리뷰. 구성을 보아하니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소싯적에는 ‘독서평설’을 참 재미있게 읽었지. 가벼운 마음으로 신청 덧글을 달았고, 또 잊을 때쯤 책이 도착했다.
첫인상은 강렬했다. 엔드롤 같은 표지야 이미 알고 있었지만 종이 냄새인지 잉크 냄새인지, 후각적 자극이 실로 대단했다. 신이 나서 책을 펼쳤다가 도로 덮을 정도로. 작품, 작가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공상 과학, 기술의 발전과 미래 세계에 대한 글을 싣는 SF잡지에서 이렇게까지 책 냄새가 진동하는 것도 이미 계산된 부분인 걸까? 역설적이긴 하지만 읽기 괴로우니 창간호만 책장에 고이 모셔두고 다음 호 부터는 E-BOOK으로 모으기로 마음먹었다. (매호 전자책 발간을 해주시겠지요?)
이미 재미있게 읽었던 작품의 작가님들 글을 실었으니 소설들이야 당연히 좋았지만(하지만 초단편은 정말 상상이상으로 짧았다) 칼럼이나 인터뷰, 특히 에세이가 좋았다. 흥미가 살살 가는 분야에 대해 박식한 사람과의 이야기가 언제나 즐거운 것처럼. 언급되는 작품, 작가, 배경이 되는 지역에 대해 궁금해지고 찾아보고 싶게 만드는 게 이런 잡지의 존재 이유 아니겠나. 워낙 분량이 작아 내용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기로 하고, 직접 읽어보시기를 추천한다.
한 권의 책으로서도 충분히 재미있지만, 더 읽어보고 싶은 책들이 생긴다는 점에서 이미 SF를 좋아하는 독자에게는 카탈로그 역할을, 누구처럼 SF를 서먹해하는 독자에게는 든든한 안내서 겸 소개서가 되어줄 것이다.
(카페에서 이벤트 도서 증정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