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삶을 무척 사랑하는사람이었다. 다만 극심한 고통 앞에 무력해지는 순간이 오면, 죽음을 상상해서라도 거기서 벗어나야 했을 것이다.- P43
오늘날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인간이 겪는 고통이 과연 신의 의지냐고, 자연스럽게 죽음에 이를 사람을 소생시키는 건 인간이 아니냐고.- P49
고통에 몸부림치는 모습에 나까지 몸부림쳤다. 그때 나는 엄마의 고통을 끝내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있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어릴 때 내가 아프면 대신 아프고싶다며 내 입술에 입을 대고 호로록, 나쁜 기운을 빨아들였다. 하지만 나는 같이 죽으라면 죽었지, 엄마 대신 아플 용기는 없었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 언젠가 엄마가 했던 말.- P83
기자가 물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속담이 있듯, 죽음을선택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어떻게 결정하게되셨어요?"
"매에는 장사 없다는 속담도 있죠. 누구도 죽고 싶은 사람은 없어요. 다만 두드려 패는 듯한, 온몸을 난도질하는듯한 통증을 끝낼 방법이 죽음밖에 없으니까."
매에는 장사 없다. 경험에서 나온 현답이었다.- P95
엄마가 갔다. 내 곁에 없다. 엄마가 더는 아프지 않아도된다는 사실만이 나를 지탱할 수 있게 해주었다. 엄마가 나를 보면 장하다고 하려나. 어쩌면 덜 슬퍼하는 딸을 보며섭섭해할지도.- P170
"엄마가 마지막 소원을 이루고 편안하게 떠나셔서 마음이 좋아요."
"글쎄, 난 영 마음이 안 좋네."
못마땅한 심기를 드러내는 어조였다. 뭐라 답하지 못하고 전화를 끊었다. 아마도 그분이 생각하는 죽음의 방식과는 달라 불편한 속내를 드러낸 것이겠지. 각자의 가치관이다르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상처받았다. 모두가 축복하는마음으로 엄마를 위해 기도해주길 바라는 내 욕심에서 비롯된 상처였다.- P1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