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엘리아의 제야』는 『제망매』의 속편으로 읽어도 무리가 없다. 마찬가지로,『엘리아의 제야』는 그의 산문들을 소설적으로 해설한 것으로 읽어도 무리가 없다. 하지만 이런 소설도 있어도 좋지 않을까. 이런 소설이 너무 없는 건 아닐까. 소설을 소설 이외의 것을 통해 짐작해보는 것도 꽤 재미있는 일이다.
요컨대,
고종석의 소설에서 '누이'의 자리에 놓일 수 있는 것들은 대개 불구다. 따라서 누이는 안쓰럽고 애틋하다. 따라서 사랑스럽다. 소설에서 이 '사랑'은 거의 에로스적인 것, 근친상간에 가까운 것으로까지 묘사되는데, 여기에 고종석의 핵심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애틋한 것과 사랑스러운 것이 어떻게 같으냐, 또는 불구인 누이를 어떻게 죄의식 없이 사랑할 수 있느냐, 하는 것. 고종석의 윤리에 의하면 그것이 옳다. 그가 누이를 사랑하는 것, 그가 전라도를 사랑하는 것, 그가 모국어를 사랑하는 것, 그가 모국을 사랑하는 것이 그에게는 당연한 윤리적 요청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누이에게 집착하지 않는다. 전라도에 대해서도, 모국어에 대해서도, 국적에 대해서도 그렇다. 그가 합리적인 자유주의자인 만큼 그렇다. 고종석이 아닌 사람들이 피할 수 없는 태생 때문에 누이와 전라도와 모국어와 모국에 대해 집착하는 것을, 그는 가볍게 뛰어넘고 있다. '나'는 누이가 아니기 때문에? '나'는 전라도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가 오랫동안 모국에 등을 돌리고 프랑스에서 프랑스어를 쓰고 살면서도 국적과 모국어를 포기하지 않은 까닭이 거기 있지는 않을까. 태생이 아니라 사랑, 내가 누이에게 입맞춤한 것이 태생이 아니라 사랑 때문이어서?
말하자면, 일견 편안한 듯한 그의 소설에서 강한 긴장감이 느껴지는것은 그런 의문 탓이다. 그가 체득하고 있는 문장과 윤리의 보편타당함이 이땅의 보통의 인간들과 끊임없이 긴장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