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쉽게 읽히는 소설이 아니다. 문장은 길고, 사건은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며, 한 장면을 설명하는 데만 몇 페이지가 이어지기도 한다. 그런데도 책장을 덮고 나면 그 느린 문장들이 오래 남는다. 프루스트가 붙잡으려 한 것은 단순한 줄거리나 인물의 운명이 아니라, 우리가 잊었다고 생각한 시간의 감각이기 때문이다.
'스완네 집 쪽으로 1'은 콩브레의 기억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주인공은 어린 시절 밤마다 어머니의 입맞춤을 기다리던 순간, 낯선 방에서 깨어나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더듬던 감각, 가족과 이웃, 산책길과 성당, 냄새와 소리와 빛의 인상을 되살려낸다. 얼핏 보면 대수롭지 않은 기억들이다. 그러나 프루스트의 문장 속에서 그 기억들은 삶 전체를 떠받치는 거대한 구조물이 된다.
가장 유명한 마들렌 장면이 바로 '스완네 집 쪽으로 1'에 등장한다. 침울했던 어느 겨울날, 주인공이 어머니가 내준 프티트 마들렌 과자를 홍차에 적셔 한입 베어무는 순간, 미각과 후각을 매개로 까맣게 잊고 있던 과거의 기억이 폭발적으로 되살아난다.
콩브레 주변의 두 갈래 산책로인 스완네 집 쪽과 게르망트 쪽을 거닐며 마주하는 풍경은 그야말로 한 폭의 명화처럼 펼쳐진다. 특히 산사나무꽃에 대한 찬미는 읽는 내내 눈앞에 선명한 색채가 번지고, 코끝에는 짙은 꽃향기가 스치는 듯한 공감각적 체험을 하게 한다.
빗소리, 성당의 채색 유리, 시골 방의 냄새, 산사나무꽃의 향기, 종탑의 빛깔 같은 장면들이 놀라울 만큼 세밀하게 펼쳐진다. 어떤 문장은 너무 길어 숨이 차고, 어떤 문장은 의미가 한 번에 잡히지 않는다. 그러나 그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머릿속에 선명한 풍경이 떠오른다. 프루스트는 풍경을 단순히 보여주지 않는다. 그 풍경이 한 사람의 의식 안에서 어떻게 흔들리고 변형되며, 마침내 기억으로 저장되는지를 보여준다.
이 책은 수려한 자연 묘사뿐만 아니라 프루스트의 놀랍도록 예리한 인간 관찰도 담고 있다. 인물 묘사는 사진 속 한 장면처럼 생동감 넘치고 유머러스하다. 하녀 프랑수아즈의 에피소드가 대표적이다. 그녀는 상냥하고 헌신적인 인물처럼 보이지만, 사실 자기 눈 밖에 난 부엌 하녀를 내쫓기 위해 천식 발작을 일으키는 아스파라거스 껍질을 매일 벗기게 만드는 교묘하고 가혹한 인물이다. 더 흥미로운 점은 그 사실을 짐작하면서도, 프랑수아즈가 끓여주는 완벽한 커피와 닭고기 요리를 포기할 수 없어 모른 척 눈감아버리는 레오니 아주머니의 비겁함이다(!!)
우리 인간은 마치 회계 장부나 유언장처럼 가서 보기만 하면 알 수 있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물질로 구성된 전체가 아니다. 우리의 사회적 인격은 타인의 생각이 만들어 낸 창조물이다. "아는 사람을 보러 간다."라고 말하는 것 같은 아주 단순한 행위라 할지라도, 부분적으로는 이미 지적인 행위다. 눈앞에 보이는 존재의 외양에다 그 사람에 대한 우리 모든 관념들을 채워 넣어 하나의 전체적인 모습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p.43
그러나 아주 오랜 과거로부터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 때에도, 존재의 죽음과 사물의 파괴 후에도, 연약하지만 보다 생생하고, 비물질적이지만 보다 집요하고 보다 충실한 냄새와 맛은, 오랫동안 영혼처럼 살아남아 다른 모든 것의 폐허 위에서 회상하고 기다리고 희망하며, 거의 만질 수 없는 미세한 물방울 위에서 추억의 거대한 건축물을 꿋꿋이 떠받치고 있다.
p.90
심부름 하러 가던 거리며, 날씨가 좋은 날이면 지나가곤 하던 오솔길들이 떠올랐다. 일본사람들의 놀이에서처럼 물을 가득 담은 도자기 그릇에 작은 종잇조각들을 적시면, 그때까지 형체가 없던 종이들이 물속에 잠기자마자 곧 펴지고 뒤틀리고 채색되고 구별되면서 꽃이 되고, 집이 되고, 단단하고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처럼, 이제 우리 집 정원의 모든 꽃들과 스완 씨 정원의 꽃들이, 비본 냇가의 수련과 선량한 마을사람들이, 그들의 작은 집들과 성당이, 온 콩브레와 근방이, 마을과 정원이, 이 모든 것이 형태와 견고함을 갖추며 내 찻잔에서 솟아 나왔다.
p.91
읽는 동안 자주 멈춰섰다. 우리의 사회적 인격은 타인의 생각이 만들어낸 창조물이라는 대목, 존재가 사라지고 사물이 파괴된 뒤에도 냄새와 맛만은 영혼처럼 살아남아 추억의 거대한 건축물을 떠받친다는 대목에서 오래 머물렀다. 프루스트는 정밀하게 인간의 마음을 해부하지만, 그 시선은 차갑기보다 오히려 아름답다. 습관, 기다림이 배고픔처럼 고통으로 변하는 순간, 속물근성에 대해 그가 남긴 문장들은 백 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놀라울 만큼 현재적이다. 특히 은둔자인 척하면서도 실은 누구보다 귀족 사교계를 갈망하는 르그랑댕의 초상은 자기 욕망을 스스로도 알지 못한 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처럼 읽혔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뚜렷한 기승전결이나 긴박한 사건 전개가 있는 소설이 아니다.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처럼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며 인물의 사유와 감각을 오롯이 체험하게 하는, 거대한 직물 같은 텍스트다.
처음에는 이 방대한 직물의 실타래를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막막하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조금만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프루스트가 쳐놓은 눈부신 언어의 그물에 기꺼이 갇힌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사소하고 덧없는 일상의 조각들이 문학의 힘을 빌려 어떻게 불멸의 예술품으로 재탄생하는지 목격하고 싶다면, 주저 없이 이 책을 펼치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