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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뇌르의 서재
  • 찌니주의보
  • 정지아
  • 15,120원 (10%840)
  • 2026-08-17
  • : 103,085

<찌니주의보>는 평균 연령이 일흔여덟 살인 산골 수평마을에 서울에서 온 성진과 혜진이 정착하면서 시작된다. 두 사람은 이름 끝의 "진"을 따서 마을 사람들에게 "찌니들"이라고 불린다. 처음에는 그저 도시에서 온 젊은 여성들이었지만, 두 사람이 연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마을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호기심 어린 시선은 경계와 수군거림으로 바뀌고, 어느 순간 두 사람은 성진과 혜진이라는 개인이 아니라 "레즈비언 커플"이라는 정체성으로 먼저 인식된다.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과 다른 삶을 살아가는 찌니들을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무례한 질문을 던지고 자기들만의 기준으로 판단하며, 급기야 마을에서 내쫓으려 한다. 세상의 날 선 시선을 피해 이곳까지 흘러온 두 사람은 결국 문을 굳게 걸어 잠근다. 그들의 등장은 보수적인 농촌 공동체에 하나의 경보처럼 울려 퍼지고, 그렇게 평온하던 마을에 "찌니주의보"가 내려진다.



소설은 갈등을 단순한 대립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마을 사람들은 찌니들을 쫓아내야 한다며 핏대를 세우고 수군거리면서도, 정작 두 사람의 대문 문고리에는 시래깃국과 가지나물을 슬며시 걸어둔다. 낯 뜨거운 질문으로 사람을 질리게 하다가도 돌아서서는 갓 부친 호박전을 손에 쥐여주는 할매들의 모습은 모순적이면서도 정겹다. 



여기에 베트남에서 시집와 20년 동안 이방인으로 살아온 이주 여성 "쑤언"의 존재가 이야기에 깊이를 더한다. "갸들이 사램을 죽였어, 도둑질을 혔어?"라며 거침없이 찌니들의 편에 서는 쑤언은 누구보다 낯선 존재로 살아가는 감각을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그래서 촌로들의 편견을 정면으로 받아치는 그녀의 말은 더욱 통쾌하게 다가온다.  


사람들은 어느 날 갑자기 생각을 바꾸거나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게 되지 않는다. 대신 함께 밥을 먹고, 일을 돕고, 다투고, 다시 얼굴을 마주한다. 그렇게 일상을 거듭하는 동안 "낯선 사람"은 "아는 사람"이 되고, 어느새 "우리 동네 사람"이 된다. 



우리는 흔히 상대를 이해하는 것이 관계의 출발점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현실의 관계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 부모와 자식도, 이웃과 동료도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수평마을 사람들 역시 찌니들의 성적 지향을 온전히 이해해서가 아니라 "이웃"이기에 위기의 순간 손을 내미는 것이다.



처음에 "찌니"라는 이름은 두 사람을 낯선 존재로 구분하고 밀어내는 말이었지만 밥을 나누고 부대끼는 시간이 쌓이면서 그 이름은 점차 "우리 마을 사람"이라는 관계의 이름으로 변해간다.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생각이 달라도, 밥 한 끼를 나누고 위기의 순간 손을 내밀 수 있다. 그것이 작가가 그려낸 공동체의 모습이자 인간에 대한 믿음이다.



소설에는 완벽한 선인도, 완벽한 악인도 없다. 모두 조금씩 이상하고 이기적이며, 저마다의 사정과 이유를 품고 살아간다. 그렇게 싸우고 흉보고 밥을 나눠 먹는 동안 어느새 서로의 삶에 스며든다.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밥 한 끼를 건네고, 곤경에 빠졌을 때 손을 내밀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함께 살아갈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 <찌니주의보>는 결국 이해보다 먼저 다가오는 마음과, 그렇게 조금씩 서로의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을 따뜻하게 보여주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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