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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뇌르의 서재
  • 당신과 내가 대화할 수 있을까
  • 정희진
  • 18,000원 (10%1,000)
  • 2026-08-20
  • : 31,660

"대화로 풀어라." "소통이 부족하다." 일상에서 흔히 듣고 내뱉는 말이다.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 앞에서 진이 빠져본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우리는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충분히 설명하면 언젠가는 상대가 내 마음을 알아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대화에 실패하면 먼저 자신의 말하는 방식을 되돌아본다. 내가 표현을 잘못했나, 조금 더 친절하게 설명했어야 했나, 상대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나 되짚어본다.



<당신과 내가 대화할 수 있을까>는 이 지긋지긋한 자책의 굴레를 끊어낸다. 저자가 내놓은 답은 명쾌하다. "우리는 애초에 대화할 수 없다."





책은 소통의 불가능성이 개인의 무능이나 성격에서 비롯된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필연이라고 진단한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82억 개의 고유한 몸은 타인의 고통을 온전히 느낄 수 없다. 게다가 젠더, 계급, 나이 등에 따라 각자가 놓인 사회적 위치가 다르고, 그 관계에는 필연적으로 권력의 위계가 작동한다. 서로 다른 세계에 서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이 완벽하게 공감하기란 애초에 불가능에 가깝다.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다고 믿어왔던 것이다.



"누가 더 간절히 소통을 원하는가." 누구나 이해받기를 원하지만, 자신의 존재와 고통을 끊임없이 설명해야 하는 쪽은 대개 약자다. 가부장제 사회의 기득권 남성이나 인종차별 사회의 백인은 소통을 위해 굳이 애쓸 필요가 없다. 이미 사회의 규칙과 주류 언어가 그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약자는 권력자의 언어로 자신의 삶을 번역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하고 상대를 설득해야 한다. 이처럼 소통의 부담이 한쪽에 치우친 상황에서 "무조건적인 소통은 선(善)"이라고 강요하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말이 통하지 않는 이 팍팍한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책이 제안하는 것은 더 뛰어난 대화 기술이 아니다. 침묵하거나 대답하지 않을 권리, 완벽한 합의 대신 가능한 중간 지점을 찾는 태도, 상대를 끝까지 설득하지 않을 선택, 필요하다면 대화를 끝낼 권리다. 모두와 반드시 소통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누구와 얼마나 이야기할 것인지 스스로 결정하자는 것이다.


대화를 나눴다고 해서 반드시 같은 생각에 도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상대와 대화하는 과정에서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방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이해하고 표현하게 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 책은 이처럼 완벽한 이해와 공감이 가능하다는 현대 사회의 오랜 환상을 과감하게 깨뜨린다. 소통이 본질적으로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오히려 마음은 한결 편안해진다.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를 설득하느라 자신을 소진하는 대신, 자신과 자신의 언어를 돌보는 데 시간과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평화란 갈등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서로의 다름에서 비롯되는 긴장을 견디는 일이다. 대화의 목적 역시 상대를 굴복시키거나 무조건적인 합의를 끌어내는 데 있지 않다. 서로 엇갈리는 대화 속에서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벼려 "나만의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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