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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한가운데 서재
  • 인생은 소설이다
  • 기욤 뮈소
  • 13,500원 (10%750)
  • 2020-11-24
  • : 4,791

왜 소설을 읽는가?라는 물음에 신형철 평론가의 산문집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서 읽었던 구절이 그 궁금중에 대한 답이 되었던 적이 있다. 쇼스타코비치가 했던 말을 인용한 "나는 체호프를 게걸스럽게 읽는다. 그의 글을 읽으면 삶의 시작과 종말에 대해 무언가 중요한 생각을 곧 만나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저 좋아서 읽는 사람도 많겠지만, 굳이 뭔가를 찾아야 한다면 기욤뮈소의 생각이 "인생은 소설이다"라는 이 소설에 스며들었을 구절도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소설은 우리를 잠시나마 현실에서 도피할 수 있게 해주고, 다양한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사람들의 상처에 반창고를 붙여주는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P62


인생을 여러 번 살 수 있고, 다면적 인생의 면면들을 몇 번이고 자유자재로 건너다닐 수 있는 배우가 아니라면. 살고 싶은 인생을 지면 위에 얼마든지 끄집어 올려놓고 주인공이 되어 살아볼 수 있는 소설가도 아니라면... 대신 소설을 읽는 독자가 되어보는 것도 쉽게 끌리는 일이다. 여러 인생의 에센스들을, 궁금한 삶의 비밀과 양념들을 우연히 책의 한 귀퉁이에서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소설 같은 인생, 때론 소설보다 더한 믿기 힘든 삶을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할 때가 있다. 티브이 다큐에 소개되는 굴곡진 인생을 살아온 이들, 어느 한순간에 인생이 송두리째 바뀐 사람들의 이야기들.... 소설을 읽다 보면 픽션의 세계 안에 현실이 있고, 현실의 삶이 픽션같기만 한, 소설보다 더 소설 같다는 생각을 할때도 있다.


단조로운 나날을 살다 보면 소설이나 영화 같은 삶과 인생에 대한 동경이 일기도 하지만, 평범한 일상이 허락되고 그것만을 지속해나가는 평탄함만으로도 삶은 만만한 일이 아니며 매 순간 감사한 일이고 벅차기도 하다는 생각을 만나게 되는 순간이 온다. 소설이나 영화 같은 삶은 젊은 날 한때의 꿈같은 것이고 지금은 이 순간순간이 고요하기를 바란다. 이 소설의 첫 페이지를 펼치면서 그런 생각이 더 들었다.


기욤뮈소의 소설 "인생은 소설이다"는 픽션과 실재의 세계가 겹치고 넘나들며 읽는 동안 어지럽기도 했다. 소설안에 소설이 펼쳐져 있는 격자 소설의 구조로 되어 있어 어느 부분까지가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소설인지, 이 소설안의 또 다른 소설인지 지금도 혼돈스럽다. 전개는 미스테리적인 요소도 있어 지루할 틈 없이 책장을 넘겨갔다.


2010년 4월 화창한 오후, 스코틀랜드 출신 39세의 플로라 콘웨이라는 작가가 뉴욕의 브루클린 아파트 7층 자택 안에서 3살짜리 딸 캐리와 숨바꼭질을 하다가 딸이 증발하듯 사라지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캐리는 플로라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을 포기 할 수 없게 해주는 유일한 버팀목'인 딸이다.


그 해 출간된 소설 전체를 평가해 선정하는 최고 권위의 프란츠 카프카상을 수상하고, 언론에 노출을 하지 않고 살아가 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작가 플로라의 삶이 송두리째 뒤흔들리게 된다. 사라질 수 있는 공간이라는 찾을 수 없는 상황에서 캐리는 거짓말처럼 증발을 해버리고 경찰의 탐문조사가 계속된다.


플로라는 사건 발생 후 6개월이 지나도록 비극적인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살시도를 하는 등 극도로 힘든 시간을 보낸다.

"문득 보르헤스의 말이 떠오르면서 내가 지금 오감으로 느끼고 눈으로 마주하고 있는 이 모든 현상들이 과연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여전히 내 주변에서 강력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 P91


플로라는 자신의 고통보다는 출판사업에 대한 걱정만 하는 것 같은 친한 출판사 대표 팡틴을 의심하기도 한다. 팡틴은 팡틴 드 빌라트 출판사의 대표로, 상업성이 좋은 책을 고르는 능력이 탁월하며, 플로라의 <미로속의 소녀>라는 첫 작품이 20개국이 넘는 나라에서 출간되면서 그녀의 독립 출판사가 승승장구하기 시작한 출발점이 된 인연이다.

"난 네가 끔찍한 고통을 겪을수록 더욱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해. 소설을 쓰는 게 극복의 수단이 될 수 있어. 너도 알다시피 자식을 먼저 보내고 고통의 시간을 보낸 예술가들은 정말 많았어. 그들은 혹독한 시간을 창작에 대한 열정으로 승화시킨 덕분에 불후의 명작을 남길 수 있게 된거야." P53


딸 캐리가 실종된 마당에서 소설이 써질 수 있을까. 고통 속에서 글을 써서 예술로 승화시킨다는 말은 오랜 시간이 흐르고 흐른 다음에야 가능할 것이고, 고통을 잊기 위해 탈출할 수 있는 글쓰기와 예술이라는 미학도 잔인한 타자의 시선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사실 사고 발생 3일 후 발표된 사고 원인은 아파트 리모델링 공사의 안전점검이전에 플로라가 이사를 왔고, 청소업체가 빌딩 청소중 대형창문의 개폐장치를 열어둔 것 때문이었지만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플로라는 자신의 꼬인 삶이 어떤 강력한 힘, 타인이 가하는 영향력아래 있다고도 생각한다. 과연 이런 것이 가능할까. 소설속으로 빠져 들어가면서 나자신도 점점 더 혼돈스러워졌다. "나는 방금 어느 작가가 쓴 소설의 등장인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누군가가 나를 매단 줄을 잡고 제멋대고 조종하는 중이었다..... 계속 인형을 매단 줄을 제 멋대로 흐트러뜨려 놓고 있었다 P92"



소설 안에는 로맹 오조르스키라는, 40세 소설가도 등장한다. 로맹의 소설에는 실존인물인 플로라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그는 21살때 소설 "메신저"를 첫선을 보이고, 그 후 18편의 소설을 썼고 하나같이 베스트셀러였던 작가, 20년이 넘도록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현실세계를 벗어나 픽션세계로 탈출하는 일상을 반복한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의 삶, 영감이 떠오르지 않아도 컴퓨터를 켜는 일상, 뚝심으로 글을 써나가면 감흥이 저절로 따라오고 펜이 스스로 움직일수 있는 날이 오는 걸까.

"나는 매일 아침 영감이 떠오르길 기다리지 않고 무조건 글쓰기에 착수했다. 글을 쓰다 보면 영감이 떠오를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내 방식대로의 규율, 뚝심, 단단한 태도로 글쓰기에 임했다. 사실 이 세상에서 쉬운 일은 없다. 그 무엇도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글을 쓰다 보면 머리가 복잡하고 괴로울 때도 있었다. 글쓰기가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감을 잡을 수 없을 때도 많았다" P99


로맹은 아내 알민과 이혼소송중이고 아들 테오의 양육권을 가지고도 분쟁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로맹에게 글쓰기가 얼마나 삶과의 경계가 모호하고 절실한지 이 구절을 보면 알 수 있다.

"모든 의욕을 상실한 나는 기계적으로 컴퓨터앞에 앉아 화면을 켰다. 푸르스름한 빛에 눈이 시렸지만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언제나 화면에 몰입했다. 내가 확고하게 믿었던 통념과 기준들이 모호해지고 있었다. 부재와 해체로 가는 전주곡, 미지의 세계를 향해 열리는 문, 하나의 다른 세계, 또 다른 삶, 아니, 여러 개의 새로운 세계와 삶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불행하다고 느낄 때, 주변에 대화를 나눌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언제나 소설의 등장인물들이 내 가까이에 있어주었다. 그들 가운데 더러는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들도 있었다. 내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어떻게 보면 어느 누구보다도 나와 가까운 존재들이었다. " P180



소설의 후반에 플로라를 둘러싼 진실이라는 제목으로 로맹 오조르스키가 쓴 메일이 팡틴에게 발신된 메모가 나온다. 뒤통수를 얻어맞는듯한 느낌이었다. 유부남이었던 로맹이 팡틴과 결별하면서 그녀에 대한 죄스러움에 대한 선물로 "미로속의 소녀"를 선물로 보낸다.(존재감 없는 어느 프레드릭 앤더슨이라는 교사의 이름으로 숨겨서, 팡틴이 원고를 읽고 수소문할때 이 교사는 이미 숨지고 없다). 팡틴은 이 소설을 뉴욕출신의 플로라는 수수께끼같은 미스테리한 작가의 소설로 각인시켜 마케팅에 성공한다.


플로라가 쓴 소설도 아니고, 결국 로맹이 쓴 소설이었다니. 로맹이 소설을 숨겨서 보낸 것은 작가로서의 욕망을 시험해 보고 싶었던 또 다른 이유는 아니었을까.

"가령 텔레비젼 문학 프로그램에 나온 어느 비평가가 나의 최신작에 대해서는 신랄한 비판을 쏟아내다가 플로라 콘웨이의 작품에 대해서는 찬사로 일관하는 모습을 보고 실소를 금할 수 없었어"P292

"나는 그저 내 자신이기만 한 것에 지쳤다. 나는 남들이 언젠가 내 등짝에 붙여준 이후 30년동안 줄곧 나를 따라다니는 로맹가리라는 이미지에 지쳤다 - 로맹가리" P248

무엇보다도 이 책은 소설가를 위한 소설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면서 읽었다. 소설가였다면 이 소설의 많은 부분들이 대화를 걸어온다는 생각을 하며 읽어 나갈을지도 모른다. 배우들이 마치 그 사람인 것처럼 연기에 몰입해서 살다 보면 연기가 끝나도 배역에서 쉽사리 빠져나오기 쉽지 않듯이 소설가에게도 비슷한 일일 것이다.

"글쓰기를 할때 가장 흥분되고 짜릿한 순간이라면 아마도 작가인 내 의사와 무관하게 등장인물이 자신의 의지로 독자적인 행동에 나설 때입니다" P99,

"아무리 작가가 결정권자의 지위를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소설 속에서 오롯이 모든 결정을 내릴 수 없다는 걸 당신도 잘 알잖아요? 등장인물들에게도 고유의 권한이 주어지니까요. 작가는 등장인물들의 본성과 정체성, 은밀한 삶의 이력에 위배되지 않는 결정을 내려야만 하죠. 개연성 없는 소설은 가치를 잃을 수 밖에 없으니까요." P195


소설을 읽으면서 픽션과 현실의 세계, 소설 안에서도 경계가 혼돈스러워 읽는 도중 길을 자주 잃었다. 기욤뮈소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런 것이었을까.

"나는 평생토록 현실 세계와 픽션의 경계가 대단히 모호하다고 생각해 왔다. 픽션보다 더 진실에 가까운 건 없으니까. 인간이 현실 속에서만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픽션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마치 실존하는 것으로 간주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결과적으로 실존하는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P305


소설의 끝자락에서 플로라는 서서히 고통을 극복해가면서 루텐리 형사와 새 삶을 이어가고 그녀의 소설에는 이제 로맹이 거꾸로 등장한다.

"현실에서는 플로라가 내 소설의 등장인물이지만 그녀의 소설에서는 내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고, 내가 그녀의 꼭두가시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잠시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어안이 벙벙해졌다."


플로라가 했던 말은 소설을 쓰는 소설가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 나 같은 일상 블로거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내용이기도 하다. 글을 쓰면서 오롯이 자신을 응시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고, 소란한 일상에서 잠시 자신만의 세계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 의미 있는 한때를 돌아보고 사색하고 기록하는 시간일 테니까.

"나는 소설을 쓰면서 불행한 삶에서 벗어나 나 자신을 직시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만약 소설 쓰기를 통해 나의 세계를 찾아내지 못했다면 여전히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세계에서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다가 생을 마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P55


카카오의 <브런치>라는 소통의 공간이 많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작가라는 타이틀을 설레게 주고 있고, 사춘기 시절 한때 문학소년과 문학소녀를 꿈꾸었던 이들에게 희망과 열망을 준 것들, 이런 것들만 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표현하고 싶어 하는지 알 수 있는 세상이다. 우리 모두 소설 한편쯤 쓸 수 있는 사연들을 안고 살아가는, 때론 픽션보다 더 믿기 힘든 현재를 살아가고 사람들, 그들 머릿속에 소설한편쯤 있는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한편만으로도 벅찬 삶일거니, 딱 한편쯤만.

"정말 이해하기 힘든 일은 글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는 데 반해 수많은 사람들이 아직 작가가 되길 꿈꾸면서 원고를 보내온다는 것이었다.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어주는 직원부터 나이트클럽 여종업원까지 소설을 써서 보내왔다. 하긴 모두들 자기 머릿속에 소설 한편쯤은 가지고 있다고들 하니 그런 점에서는 이해가 되기도 했다" P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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