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노래를 다르게 듣게 만든 책
이층에서 본 거리를 읽고 / 이두헌 지음 (다섯손가락 노래글)
이은북 출판 (도서협찬)
나도 좋아했고 많이 들었던 익숙한 다섯손가락의 노래들은 늘 서정적이고 따뜻한 감성으로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그래서 이 책 역시 단순히 추억과 음악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일 거라고 생각했고 나도 여행자의 시선으로 주변 환경을 여유롭게 평화로운 감성으로 바라볼까? 하면서 책을 읽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층에서 본 거리?는 예상보다 훨씬 아프고 무거운 이야기였다. 특히 p77~79 부분은 책 전체에서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장면이었다.
저자는 민주화를 외치던 시대 한복판에서 음악을 만들었지만, 동시에 검열과 자기검열 속에서 살아야 했다. “구두를 닦고는 외면을 하고로, 모순 속에 깊어만 가고는 평화롭게 갈 길을 가고로 바뀌었다”는 문장을 읽으며 당시 예술가들이 어떤 시대를 견뎌야 했는지 절실하게 느껴졌다. 노래 한 줄조차 마음대로 부를 수 없었던 시대, 음악은 단순한 유행가가 아니라 시대와 양심 사이에서 흔들리는 고백이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남영동 대공분실 근처 카페 2층에서 친구가 구두를 닦는 모습을 바라보던 장면이었다. 대학생이 된 자신과 노동자가 된 친구 사이의 거리, 그리고 그 시대의 폭력적인 현실을 바라보며 느끼는 죄책감과 무력감이 너무 생생하게 전해졌다. 예전에는 그저 감미롭다고만 생각했던 노래들이 사실은 그런 시대의 불안과 고통 속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특히 광주 YWCA 공연 장면에서는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한 시대를 살아낸 사람의 참회처럼 느껴졌다. “기타 줄이 끊어진 것은 과연 우연이었을까?”라는 문장은 오래 마음에 남는다. 말하지 못했던 진실과 시대의 상처가 그 끊어진 기타 줄에 담겨 있는 듯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익숙하게 듣던 노래들이 전혀 다르게 들린다. 누군가에게는 아름다운 사랑 노래였겠지만, 그 노래를 만든 사람에게는 시대의 상처와 흔들리던 청춘의 기록이었음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단순한 음악 에세이가 아니라, 한 시대를 통과한 사람의 고백처럼 읽힌 책이었다.
“내 고백이 담긴 사랑 노래 하나가 세간에 알려지며 나는 그저 그런 통속적인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대학생 오빠가 되어버렸지만, 가슴 한쪽에 쌓인 울분과 아픔은 언제든 터져 나올 것 같은 마른기침과 같았다. 노래가 유명해질수록 창작의 자유는 좁아졌다. 곡을 완성하면 악보와 가사를 공연윤리위원회에 보내야 했고, 돌아오는 악보에는 빨간 줄이 그어지거나 반려, 수정이라는 어려운 낙인이 찍혀 있었다. 어느덧 나는 그 빨간 줄을 피하는 법을 피하는 법을 터득했다. 심의를 통과할 가능성이 높은 주제와 단어를 골라 버무리는 능숙한 생산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규제를 만드는 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사람이 되버린 나 자신을 보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다.
다섯손가락 2집의 <풍선>과 <사랑할 순 없는지>가 온 세상에 울려 퍼지던 1986년. 민주화를 부르짖던 젊은이들이 상상할 수 없는 무자비한 고문에 시달리던 남영동 대공분실, 그곳에서 불과100m도 떨어지지 않은 한 카페에 나는 앉아 있었다. 그 2층 창가 자리에 앉아 우울하게 바라본 거리에서,.....“ p77
“비겁했던 나의 노래는 검열로 난도질당한 채 세상에 나왔다. 구두를 닦고는 외면을 하고로 모순 속에 깊어만 가고는 평화롭게 갈 길을 가고로 바뀌었다. 야만의 시대에 노래는 위로를 전하는 것만으로도 불온한 것이 되었다. ~ 1985년, 광주 YWCA 무대에 올라 연주하면 나는 연신 미안하다고 했다. 총알 자국이 선명한 벽을 바라보며, 광주가 모든 것이 차단된 채 짓밟혔던 그 순간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를 참회했다. ~ 기타 솔로를 연주하다가 기타 줄이 끊어진 것은 과연 우연이었을까? 그 끊어진 줄이 마치 1986년 남영동의 안개 속에서 차마 잇지 못했던 진실의 비명처럼 느껴져, 나는 잠시 숨을 멈추었다. 이제야 비로소, 이층에서 본 거리가 다시는 더 이상 어둡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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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했던 연인이 돌이킬 수 없는 이별에 직면하게 되면, 역설적으로 그간의 치열했던 싸움을 멈춘다. 참혹한 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남은 것은 폐허나 피바다보다 더 끔찍한, 미동조차 없는 무거운 침묵뿐이다. 미움보다 무서운 것은 밉다라고 토해내지 않는 고요이며, 증오보다 잔인한 것은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는 듯 닫혀버린 마음의 빗장이다. 폐기된 사랑이 사실은 공포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절연의 순간에야 비로소 깨닫는다.” p2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