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인의 구두를 벗어 던지는 순간
< 타인의 구두 >를 읽고 / 조조 모예스 장편소설 / 이나경 옮김 / 다산책방 (도서협찬)
SOMEONE ELSE’S SHOES
번역 소설을 읽을 때 가끔 문장이 발목을 잡는다. 이 책도 초반에는 그랬다. 문장이 매끄럽게 흐르지 않아 몇 번이나 속도가 끊겼다. 마치 발에 맞지 않는 구두를 신고 걷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이야기는 묘하게 사람을 붙든다. 조금 불편한 걸음을 참고 걷다 보니 어느새 끝까지 와 있었다.
이 소설은 화려한 삶의 허상을 꽤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샤넬 재킷과 하이힐, 부유한 남편과 완벽해 보이는 생활. 그러나 그것은 단단한 기반이 아니라 조명 아래 세워 둔 무대 장치에 가까웠다. 남편의 한마디로 모든 것이 무너지는 순간, 주인공은 가운 하나와 슬리퍼 차림으로 거리로 밀려난다. 체면도 지위도 그렇게 간단히 사라진다. 사람의 삶이 얼마나 얇은 껍질 위에 놓여 있는지 새삼 실감하게 된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구두가 있다. 사치의 상징이자, 권력의 표시이며, 동시에 사람을 움직이게 만드는 장치다. 그 화려한 구두를 둘러싸고 서로 다른 삶을 살던 여성들이 엮인다. 처음에는 우연처럼 시작된 일이지만, 점점 서로를 지탱하는 힘이 된다. 누구나 신는 신발이라는 사소한 물건이 결국 사람들을 묶고, 연대하게 만든다는 설정이 꽤 영리하다.
마지막 장면은 특히 통쾌하다. 니샤는 다이아몬드에 눈을 돌리지 않는다. 탐낼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삶을 다시 선택한다. 그리고 칼에게는 법적 싸움보다 더 뼈아픈 방식으로 벌을 돌려준다. 과장된 복수극이 아니라, 지혜롭고 단단한 방식의 응징이다.
결국 이 소설은 구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자기 발로 다시 서는 이야기다. 화려한 구두가 아니라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누구의 것도 아닌, 자기 삶의 길을 스스로 걸어가는 일이라는 사실을 조용히 보여준다.
“그들은 구두를 보고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다시 니샤를 봤다. ’저건 칼의 장난이에요. 날 이리 뛰고, 저리 뛰게 만들 방법 그 사람이 정말 미워요. 저게 우리 결혼 생활을 완벽하게 요약한 거죠. 온통 보여주기뿐. 나는 쇼에 나가는 조랑말처럼 차려입고 광대처럼 뛰어다니며 그 사람 뒤치다꺼리를 했어요. 그 사람이 날 조련했죠.” P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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