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독후감입니다.]

인류는 수천 년간 눈부신 문명을 일구었으나, 정작 그 문명을 움직이는 동력인 '인간 본성'은 수렵 채집 시절의 구식 하드웨어에 머물러 있다.
인류학자 하비 화이트하우스는 이를 '진화적 불일치'라 명명하며, 현대 사회가 겪는 총체적 위기가 사실은 우리 본성의 역습에서 비롯되었다고 진단한다.
하지만 그는 절망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를 멸망으로 이끄는 그 '본성' 속에 인류를 구원할 열쇠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에서 저자가 제시한 세 가지 본성—순응주의, 종교성, 부족주의—이 어떻게 현대의 병폐를 치료하는 약이 될 수 있는지 들여다보자.
순응주의와 이에 따른 기후위기에 대한 해법으로 '군중 심리'를 '생존 전략'으로 하자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순응주의가 초래한 무분별한 과소비와 자원 고갈이 기후 위기의 주범임을 지적한다.
우리는 남들이 사는 것을 사고, 남들이 누리는 방식을 따르려는 본능 때문에 지구를 파괴해 왔다.
그러나 저자는 이 '사회적 학습'과 '모방'의 본능을 역이용하자고 제안한다.
단순히 "환경을 보호하자"는 도덕적 구호는 본성을 이기지 못한다.
대신, 저탄소 생활 방식이 사회적으로 '쿨(Cool)'하거나 '지배적인 관습'이 되도록 설계를 바꿔야 한다고 말이다.
즉, 친환경적 행동이 집단 내에서 인정받는 새로운 '순응의 기준'이 될 때, 인류는 유례없는 속도로 기후 위기에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본성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본성이 향하는 방향을 틀어버리는 전략이다.
변질된 종교성과 자본주의를 '의례'의 힘을 통해 가치를 회복하자고 말한다.
현대 자본주의는 인간의 종교적 본성을 교묘하게 파고들어 브랜드를 숭배하게 만들고 소비를 통해 구원을 얻는 것이라고 믿게 한다.
저자는 돈벌이로 전락한 이 기괴한 종교성에 대항하기 위해, '강력한 사회적 결속을 만드는 의례(Ritual)'의 본질에 주목한다.
과거 인류는 함께 고통을 나누는 강렬한 의례를 통해 '심리적 융합'을 경험했다.
자본주의가 개인을 고립시키고 소비자로만 대할 때, 우리는 공동체적 가치를 공유하는 새로운 형태의 '세속적 의례'를 복원해야 한다.
이는 이익만을 쫓는 시장 논리에 매몰되지 않고, 인간 존엄성과 상호 부조를 우선시하는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심리적 토대가 된다.
부족주의의 두 얼굴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의 범위를 확장하자고 말한다.
부족주의는 이 책에서 가장 위험하면서도 강력한 에너지로 묘사된다.
'우리'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숭고함과 '그들'을 향한 잔인한 공격성은 동전의 양면이다.
저자는 이 파괴적인 부족주의를 극복하는 길로 'Identity Fusion'의 확장을 제시한다.
전쟁과 갈등의 원인이 되는 협소한 부족주의를 넘어, '인류 전체' 혹은 '지구 시민'이라는 거대한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을 고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공상적인 세계 시민주의가 아니다.
스포츠, 대규모 문화 행사, 혹은 인류 공통의 위협(전염병, 기후 재앙)에 맞서는 공동의 경험을 통해 '우리'라는 경계선을 국가와 인종 너머로 넓히는 구체적인 사회 공학적 접근이다.
저자의 이러한 제안은 매우 현실적이며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특히 본성을 부정하지 않고 이를 도구로 활용하겠다는 '인류학적 실용주의'는 기존의 공허한 윤리 담론보다 훨씬 힘이 있다는 기분이다.
하지만 여기서 의문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누가 본성의 방향을 설계하는가?"라는 점이다.
만약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해 대중의 순응주의를 조작하거나, 부족주의를 특정 정치적 목적을 위해 확장하려 한다면 이는 또 다른 형태의 전체주의나 통제로 이어질 위험이 있는 것은 아닐까?
저자가 제시한 해법이 빛을 발하려면, 이러한 설계 과정이 소수 엘리트의 전유물이 아닌 투명하고 민주적인 합의를 거쳐야 한다는 전제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인다.
<인간 본성의 역습>을 읽으며 느낀 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운영체제'를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저자는 인간 본성을 결코 바꿀 수 없는 저주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세상을 파괴할 수도, 구원할 수도 있는 강력한 엔진으로 묘사한다.
이제 우리는 선택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무의식적인 본성에 이끌려 멸망의 벼랑 끝으로 걸어갈 것인지, 아니면 우리 안의 순응주의와 부족주의를 지혜롭게 길들여 더 큰 공동체의 안녕을 위해 사용할 것인지를 말이다.
이 책은 현대 문명이 직면한 위기의 근본 원인을 명확히 짚어주는 동시에, 그 위기를 돌파할 '인류학적 매뉴얼'을 제공해 주는 듯 싶다.
우리가 가진 본성의 역습을 멈추고 이를 구원의 에너지로 전환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시대가 요구하는 가장 거대한 진화이지 않을까 싶어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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