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밭 옥수수를 나보다 많이 먹는
[푸른하루 1] 너구리
시골에는 대문이 없는 집이 많습니다. 담벼락이 없는 집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요즘은 밭에 울타리를 칩니다. 비탈진 숲이 둘러싸인 밭에서 그물 울타리를 곧잘 봅니다. 우리 집과 밭은 산으로 둘러쌉니다. 멧자락 쪽 밭둑을 따라 죽죽 그물을 쳤습니다. 지난해 우리 밭을 부치던 과일밭 아저씨가 가르쳐 주었습니다.
봄에 옥수수를 심었습니다. 고구마를 심을 자리에는 비닐을 씌웠습니다. 모퉁이 자리가 남습니다. 비닐을 씌운 이랑에 옥수수를 심어도 되는데, 맨땅에 심는다고 잔소리를 들었습니다. 마실 갔다가 비탈진 둑길에 고구마를 심은 모습을 보았습니다. 참 작았습니다. 빈터만 남아도 한 줄이라도 심는 손길이 살뜰히 보입니다.
둑길 작은밭이 무척 예쁩니다. 어린날 소꿉놀이를 다시 하는 셈일까요. 그만 한 너비라면 저도 해볼 수 있습니다. 비닐을 씌우지도 않고, 그대로 두면 풀만 자랄 듯하지만, 따로 심을 땅도 있지만, 나도 따라서 둑길에 심고 물을 주느라 땀을 뺐습니다.
올여름은 무덥습니다. 가뭄이 깁니다. 옥수수는 잎을 넓게 내어 스스로 그늘을 펴면서 땡볕을 견딥니다. 쉰세 포기를 심었는데 가장자리 옥수수는 잘 자라지 않습니다. 햇볕에 나가면 얼굴이 따갑습니다. 물도 제때 못 주니 말라버릴 듯합니다. 그러나 하늘은 죽을 만큼 견디게 하고는 딱 맞게 비를 뿌려요. 비는 좀 세차게 내립니다. 흙이 파여 옥수수가 비스듬히 넘어집니다. 비를 같이 맞으면서 고랑을 밟아 줍니다.
어느 날 마당에서 옥수수밭을 보니 쑥쑥 자랍니다. 쓰러진 옥수수도 일어납니다. 가까이 가니 옥수수가 여물었어요. 알도 크고요.
며칠 뒤에 옥수수를 꺾으러 갔더니 누가 먼저 꺾어 먹었어요. 누구일까요. 그물을 치지 않은 대문 쪽으로 너구리가 들어와서 옥수수를 따먹었더군요. 한 포기에 둘씩 열리는데 쉰세 포기면 백여섯 자루는 먹을 수 있는데, 우리는 스물다섯 자루만 겨우 땁니다. 너구리가 엄청나게 먹었습니다.
골짜기 끝에는 두엄칸이 있습니다. 거름을 모아 두는 곳입니다. 병아리가 나가고 나면 왕겨와 섞인 똥을 걷어서 쌓습니다. 죽은 병아리도 두엄칸에 둡니다. 두엄칸에 거름을 낼 때에는 안동시에 살펴보아야 밭에 거름으로 쓸 수 있어요. 그런데 너구리는 두엄칸에 둔 병아리를 밤에 먹는 듯합니다. 여기저기 파낸 자국이 있습니다.
오소리는 땅을 파고 다닙니다. 병아리 맛을 보았다면, 우리가 키우는 병아리집에도 파들어와서 잡아먹을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나마 병아리가 자라는 동안 우리 밭 옥수수를 따먹어서 조금 마음을 놓았습니다.
너구리하고 딱 마주친 날이 있습니다. 밤마다 개가 밭 쪽으로 갑자기 뛰어가며 짖을 때가 있어요. 너구리가 옥수수를 먹으러 이 밭에 자주 올 테니, 개가 짖고 달려가면 그물을 친 산밑에서 멈춰요. 아마 가까이에 너구리가 있거나 숨을 수 있습니다. 그물 밑으로 흙을 파고서 밭으로 얼마든지 들어올 수 있는데, 바로 마당 앞이라 너구리도 쉽지는 않겠지요. 이랑에 심은 땅콩도 문득 걱정스럽습니다. 너구리는 땅콩을 잘 파먹습니다.
뱀이 봉숭아를 싫어한대서 앞뜰 뒤뜰에 봉숭아를 꽤 심었습니다. 봉숭아는 작은씨앗이었지만 몰라보게 커서 봉숭아 줄기와 밑동이 어른 팔목만큼 굵어요. 너구리는 땅을 파다가 봉숭아 줄기와 밑동이 굵은 나머지 더 파지 못 한 듯합니다. 나비도 봉숭아를 먹고서 날아가고, 개미도 기어와서 먹고, 진딧물도 벌도 알을 낳고 가는 봉숭아입니다. 너구리는 배고파서 밭으로 올 수밖에 없겠지요. 목숨을 걸며 밥을 찾아야 합니다.
이곳 와룡산은 나지막하게 구불구불 손가락처럼 숲줄기가 뻗습니다. 골골마다 마을이 있거나 사람이 삽니다. 우리는 병아리를 키운다고 이 골짜기를 통째로 씁니다. 옆 골짜기에서는 소를 키운다고 통째로 씁니다. 저쪽 골짜기에서도 병아리 키운다고 통째로 씁니다. 멧자락이 골골이 막힙니다. 멧줄기를 타고서 이 골 저 골 밤마다 짐승들이 오갈 테지요. 숲짐승도 우리처럼 이곳을 삶터로 삼습니다. 이제 옥수수를 다 땄는데, 너구리와 오소리는 또 무엇을 찾으러 밭으로 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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