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포화가 등장인물들의 목숨을 위협할 때면 내심 안도했다. 세라 워터스의 소설 <나이트 워치>는 1947년부터 1941년까지 역순으로 진행되며, 첫 챕터 '1947'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들은 전쟁 속에서 살아남았다는 뜻이 되니까. 하지만 소설의 마지막 장까지 읽고나서, 이들이 단지 살아남았다는 것은 큰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라 워터스가 <나이트 워치>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끔찍한 난리통에서도 일상은 지속되며 어느 순간에는 반짝 빛나기도 한다는 것이 아닐까. 공습경보가 발령되고 이웃이 다치고 죽는 순간에도 차마 놓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고, 그게 결코 '사랑'이나 '우정', '욕망' 같은 단어 몇 글자로 설명될 수 없는 것이란 걸.
남겨진 사람들
어떻든, 생존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소설은 '1947', '1944', '1941' 세 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으며 첫 챕터 '1947'의 시간적 배경인 1947년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전쟁에서 '생존'한 사람들이니까.
여섯 명의 주요 등장인물은 각자의 방식으로 2차 세계대전을 경험하고 견디고 운이 좋게도 살아남았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이들을 '남겨진 사람들'이라 부를 법도 하다. 전쟁은 인물들을 할퀴고 지나갔고 모두가 현재의 삶에서 그 아물지 않은 상처를 감각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전시에는 야간 구급대원으로 일하며 부상자를 구하고 사망자를 옮겼던 케이는 종전 후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방황한다. 전쟁 때 피해 복구를 담당하는 시청 부서에서 일했던 헬렌은 결혼정보업체에서 일하고 있다. 자신이 점차 피해자들에 대해 무심해진다는 걸 느끼며 결혼정보업체로 이직했지만, 종종 전쟁에서 남겨진 사람들을 짝지어 준다는 것에 환멸을 느낀다. 헬렌의 연인 줄리아는 전시에는 아버지와 피해 주택을 조사하는 일을 했고 틈틈이 작품을 써 소설가가 됐다. 타이피스트 비브는 전쟁 중에 만난 유부남 애인에게 이별을 고할 시간이 다가옴을 느낀다. 비브의 동생 덩컨과 프레이저는 병역거부로 전쟁 중 수감 생활을 했으며 이로 인해 부채 의식을 지니고 있다.
이들은 각자만의 사연과 상처, 비밀을 지닌 채 1947년이라는 같은 시간을 산다. 남겨진 사람들의 1947년은 전쟁에 폐허가 된 배경처럼 쓸쓸하고 침체되어 있다. 행복감을 느끼다가도 사회불안이 지속되는 시기에 이래도 되는 것인지 금방 자책하고 만다.
하지만 이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실의에 잠겨 있거나 삶의 의지를 잃은 것은 아니다.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전쟁의 상처에서 벗어나기 위해, 희생된 사람들을 기리며 살아 남은 사람들을 조금 더 아껴주기 위해 노력한다. 이것이 남겨진 사람들의 미덕이라는 듯이. 그래서 더 먹먹하게 느껴지는 1947년이다.
함께함을 선택한 사람들
소설 속 시간이 1947년에서, 1944년, 1941년으로 거슬러내려가면서 등장인물들이 전쟁이라는 공포를 견디기 위해, 일말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함께함'을 선택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세라 워터스는 이 과정을 세심하고 아름답게 그려낸다.
때는 1944년. 티격태격하며 종종 서로를 미워하는 듯 보이는 덩컨과 프레이저는 한밤의 폭격이 진행되는 동안 같은 침대에서 시간을 견딘다. 1947년 덩컨과 함께 사는 것으로 그려진 '호러스 삼촌'이 실은 수감 생활을 하며 만난 먼디 교도관이었다는 게 밝혀진다. 교도소의 구조 상 수감자와 교도관은 대척점에 위치하며 서로를 경멸하기 마련이지만, 덩컨은 먼디에게서 아버지와 같은 따뜻함을 느꼈고 종전 후, 가족-특히 병역거부로 인해 수감됐음을 창피해 하던 아버지-을 두고 먼디와 함께 살기 시작했던 것이다. 누군가와 함께하고 마음을 주고받는 것만이 어떤 시간을 견딜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라는 걸 아는 것처럼.
<나이트 워치>를 읽으며 독자는 크게 케이, 헬렌, 비브, 덩컨에게 감정이입하게 된다. 주로 이들의 시각으로 시대와 사람들을 바라보며 이들의 감정의 결을 세세히 읽게 되기 때문이다. 각자 아픈 사연을 지닌 채 끔찍한 시간을 보냈지만 이들 중 헬렌이 특별히 가까이 와닿는 건, 헬렌이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마음의 나약함을 보여주기 때문이 아닐까. 개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폭력의 시간 속에서도 각자의 마음만큼은 통제할 수 없다는 걸, 마음만은 의지에 따라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님을, 헬렌은 보여준다.
1947년, 헬렌은 줄리아와 연인 사이로 지낸다. 사무실에서 일하는 도중에도 종종 줄리아에게 전화를 걸어 뭘 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줄리아를 의심하고 질투하기도 한다. 그리고 1944년, 헬렌의 연인은 줄리아가 아닌 케이다. 헬렌은 자신을 알뜰살뜰히 챙기는 케이를 가끔 버겁다고 느낀다. 그 와중에 줄리아가 헬렌에게 다가서고, 헬렌은 자신도 모르게 줄리아에게 끌린다. 케이가 야간구급대원으로 활동하기 때문에 등화관제 때나, 폭격이 이루어지는 동안 혼자 있을 때가 많았던 헬렌은 어느 밤, 줄리아의 집을 찾는다. 그러는 사이 헬렌과 케이가 함께 사는 집이 폭격을 맞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케이는 구급 업무 중 정신없이 집으로 달려간다. 헬렌을 잃은 줄 알고 망연자실했던 케이는 시간이 조금 흐른 후 안도한다. 헬렌이 줄리아와 함께 나타났던 것이다. 결국, 케이는 헬렌의 목숨을 잃지 않았지만, 자신의 곁에 있는 연인 헬렌을 잃고 만다.
"줄리아. 아, 줄리아! 하느님, 감사합니다! 나는 헬렌을 잃은 줄로만 알았어."
케이의 외침은 가슴속에 사무친다. 전쟁의 위협과 공포 속에서 어쩌면 더 솔직해질 수밖에 없는 사람의 마음이란 게 너무 아름답고 처절해서.
정체성을 고민하는 사람들
<나이트 워치>는 여려 겹으로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그간 줄곧 레즈비언 서사를 써온 세라워터스는 2006년 발표한 <나이트 워치>에서 달라진 세계를 보여준다. 19세기 레즈비언 스토리가 중심을 이뤘던 전작과 달리 시대적 배경을 20세기로 택했고 '런더너'들의 정체성을 고민한다고 할 수 있을 만큼 고민의 폭이 넓어졌다.
등장 인물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전쟁을 견디며, 사랑을 나누며, 자기 자신에 대해 알아가며, 끔찍한 현실 속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한다. 전쟁이라는 거대한 공포 속에서도 자아를 발견하고, 고민하고, 실현해 나가는 과정은 곧 인간의 실존에 대한 문제로 연결된다.
전시에 병역거부로 수감된 덩컨의 사연을 들여다보면, 덩컨과 그의 친구 알렉이 전쟁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알 수 있다. 입영 영장을 받은 알렉은 "이건 우리 전쟁도 아냐. 그런데도 그 고통을 우리가 고스란히 견뎌야 하지. 우리는 정부에서 시키는 대로 해야 해. 정부에선 심지어 진실을 말해주지도 않는데!"라며, 입영을 거부한다. 단순한 거부가 아니다. 알렉은 자유의지로 목숨을 끊기를 계획한다. 의연하고 당찬 태도다. 하나뿐인 친구 알렉을 잃을 수 없었던 덩컨은 함께 목숨을 끊기로 한다. 알렉이 "그럼 이따 보자, 덩컨." 하며 목을 긋는 순간, 덩컨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덩컨은 목숨을 끊지 못했고 교도소에 수감된다. 덩컨의 아버지는 교도소에 있는 아들을 수치스럽게 여긴다. 그 사실을 잘 아는 덩컨은 더 이상 주눅들지 않기로 한다. 전쟁이 끝난 후, 목숨을 걸고 싸운 이들이 쟁취한 세상에 편승하게 될 거라는 생각도 지우려 한다. 이유도 없이 누군가를 죽이고, 누군가가 죽는 고통을 감수하는 것자체가 하나의 모순이기 때문에.
비브와 유부남 애인 레지의 이야기는 어떤가. 비브는 전쟁 중 기차에서 군인 레지를 만난다. 1941년, 그들의 첫만남은 순수하고 인간적인 호의로 가득 차 있다. 시간이 지나며 연인 관계로 발전한 그들을 기다리는 건 묘한 삐걱거림이다. 비브는 임신을 하고, 레지에게 신경 쓰이게 하고 싶지 않아 혼자 끙끙 앓는다. 그러다 점점 배가 불러오고 레지와 함께 임신중절수술을 받는다. 당시 수술이 불법이었으며, 둘의 사이가 '불륜'이었기 때문에 비브는 그 과정에서 상처를 받는다. 수술 이후 출혈이 심해 구급차를 불러야 했을 때, 레지는 미안하다는 말만 남긴 채 사라진다. 이러한 일들을 겪은 후 비브는 레지와의 만남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그리고 1947년, 비브는 동생 덩컨과 함께 수감 생활을 한 프레이저와 데이트를 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한편, 헬렌은 동성연인 케이와의 나들이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며 괴로워한다. 케이의 적극적인 애정 표현을 남들이 볼까 봐 신경이 쓰였던 것이다. 자연스레 사랑을 주고 받는 이성연인들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부러움을 느끼기도 한다. 반면 케이는, 헬렌과 달리 좀 더 자유로운 태도로 자신의 사랑을 받아들인다. 이후 헬렌은 줄리아와 연인이 되었을 때도 남들의 눈을 의식해야 한다는 것에 괴로워한다. 그런 헬렌을 케이가 봤다면, 예전 헬렌과 케이가 연인이었을 때처럼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우리는 우리의 사랑에 집중하면 된다고 말이다.
"아, 좀 어때서? 빌어먹을 19세기도 아니고."
무엇보다, 현재를 사는 사람들
전쟁의 포화 속에서 등장인물들은 충실하게 현재를 산다. 내일이 주어지지 않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무엇이라도 하는 것을 선택한다.
케이는 야간 구급대원으로 일하며 헬렌은 시청에서 피해 복구를 담당하고, 줄리아는 피해 주택을 조사하는 일을 하며 소설을 쓴다. 전쟁으로 인해 소설을 완성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줄리아는 자신이 소설을 쓰는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다. 헬렌과 처음 밤 산책을 나설 때도 원고를 챙긴다. 그러면서 "귀찮지만, 그래도 폭탄에 날아갈까 겁나서요."라고 능청스레 말한다. "하지만 만약에 당신이 폭격을 맞으면요?" 헬렌의 질문에 줄리아는 답한다. "그땐 이러나저러나 신경쓸 것 없지 않겠어요?" 어떤 미래가 도래하든 현재에 소중한 것을 꼭 붙잡아야 한다는 태도다.
<나이트 서치>의 인물 대부분이 현재를 충실히 감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달려가듯 읽어내려 마지막 장면에 가닿았을 때 독자가 느끼는 감정은 격한 슬픔보다는 왠지 모르게 따뜻하고 뜨거운 울림일 것이다.
1941년, 헬렌은 폭발로 인해 건물 기둥에 깔렸고, 구급대원으로 찾아온 케이를 만난다. 두 사람의 첫만남이자 소설의 마지막 장면이다. 건물이 무너질지 몰라 헬렌은 한동안 기둥 아래에 있어야 했고, 케이에게 손을 잡아달라고 한다. 곧 케이는 다른 부상자를 이송해야 해 현장을 떠나야 했고, 구조반 남자들에게 예쁘게 보여야 한다며 헬렌의 얼굴을 닦아 준다.
케이는 좀더 먼지를 닦아낸 뒤 손으로 헬렌의 턱선을 쓰다듬으며 내려와 손바닥으로 턱을 받쳤다. 그녀 옆을 떠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들지 않았다. 케이는 어떤 경이로움을 느끼며 헬렌을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이런 끔찍한 아수라장에 이처럼 생생하고 이토록 티 없이 깨끗한 존재가 숨겨져 있었다니, 좀처럼 믿기지 않았다. -660쪽
독자들은 케이와 헬렌의 첫만남 이후 벌어질 사건들을 이미 알고 있다. 케이와 헬렌은 이별을 겪고 헬렌은 줄리아를 만나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참담한 전쟁을 겪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실이 마지막 장면의 아름다움을 조금도 퇴색시키지 않는다. 언제나 현재는 한순간이기 마련이며 그 자체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나이트 서치>가 감동을 주는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거슬러 거슬러 되돌아가며 마주하게 되는 '지금'이 있다는 것. 그 현재라는 시간 속에서 등장 인물들은 '나이트 서치'처럼 자신들의 행복을, 사랑을, 우정을, 존엄성을 찾고 있다는 것.
- 본 리뷰는 출판사 경품 이벤트 응모용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