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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고차이 책장
  • 말 한 마리가 술집에 들어왔다
  • 다비드 그로스만
  • 12,420원 (10%690)
  • 2018-04-30
  • : 1,122

 

‘나’가 한동안 잊고 있던 한 세계가 스탠드업 코미디가 벌어지는 바에서 재현된다. ‘과거’ 혹은 ‘한때’라는 세계의 다른 이름은 ‘폭력’이다. 사랑, 재미, 무관심, 두려움……. 폭력은 각기 그럴듯한 이유를 갖는다. 나치, 유대인, 아랍인 사이 역사라는 시간 속에 행해지는 폭력뿐만 아니라 가정과 학교에서 자칫 사소해 보일 수 있는 폭력이 한 사람을 얼마나 처참하게 망가뜨리는지, 작가 다비드 그로스만은 <말 한 마리가 술집에 들어왔다>에서 ‘나’와 ‘도발레’의 이야기로 들려준다.

 

 

폭력의 세계 앞에 선 웃음

 

텅 비어 있던 무대에 키가 작고, 홀쭉하고, 안경을 쓴 남자 ‘도발레’가 등장한다. 관객들은 한바탕 웃어 재낄 준비가 되어 있다. 도발레가 관객에게 조롱으로 첫 번째 웃음을 유발한다. “여기는 카이사레아가 아니잖아, 그렇지?” 그렇다. 도발레가 서 있는 곳은 이스라엘 서북부의 부유한 사람들이 사는 카이사레아가 아닌, 실업률과 조직범죄율이 높은 네타니아다. 관객은 도발레의 조롱에 소리 내어 웃는다.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코미디는 시종일관 타인 혹은 자신이 아닌 모든 것을 조롱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심지어는 아랍인 거리에서 정착민(이스라엘인)이 아랍인에 행한 폭력까지 웃음의 소재가 된다. 이러한 농담을 관객 일부는 못마땅해하지만, 곧 모두가 편하게 웃는다. 관객은 웃음으로 거대한 폭력의 세계를 어느 정도 용인한다.

이야기 속, 또 다른 종류의 웃음이 있다. 앞의 웃음이 다른 존재에게 폭력을 가하는 방식이라면, 지금 언급하는 웃음은 폭력을 당하는 처지에서의 처연한 웃음이다. 일말의 자존심 때문에 짓는 억지웃음인 것이다.

무대에 선 도발레는 코미디를 마치고 본론으로 들어간다.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지닌 어머니, 수정주의적 시온주의자인 아버지 사이 외동아들로 자란 어린 시절 도발레의 이야기다. 무대 위에서 ‘도발레’가 이야기를 시작하자, 관객석에 앉아 있던 ‘나’ 역시 기억을 끄집어낸다.

판사로 지내다 퇴직한 ‘나’는 한동안 도발레와 함께했던 유년의 기억을 잊고 지냈다. 어느 날, 도발레는 전화를 걸어 와 자신의 코미디를 보고 자신에게 있는 게 뭔지 기록해 달라고 말한다. 그렇게 ‘나’는 잊고 싶었던 기억의 한복판으로 들어간다.

오랜 옛날, 수학 과외 시간에 만난 도발레와 ‘나’는 마음이 맞는 친구가 되지만, 각자의 내밀한 상처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 사이였다. 다른 학교에 다녔던 둘은 우연히 가드나 캠프에서 만난다. 그때 ‘나’는 도발레가 심하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때마다 ‘도발레’는 웃음을 지었다. 그러다 ‘나’는 도발레는 “무심하고 텅 빈 눈”과 마주쳤다. 폭력의 세계 앞에 선 웃음의 실체를 확인한 것이다.

그 웃음은 소설에서 물구나무로 모습을 바꿔 나타나기도 한다. 도발레는 물구나무로 걸을 때면 사람들이 자신을 괴롭히지 못한다는 사실을 터득했다. 또, 도발레가 물구나무로 걸을 때면 아무도 엄마에게 주목하지 않았다. 넝마를 뒤집어쓰고, 가끔 정신 이상 증세를 보이는 엄마 옆에서 도발레는 물구나무로 걸었다. 우스꽝스럽게 보이는 모습 뒤에 감춰진 것들에 대해 사람들은 관심 두지 않았다.

작가는, 거대한 폭력의 세계 앞에서 개인이 취할 수 있는 태도는 오히려 웃음에 가까운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웃음이 한 사람에게 파괴력을 갖는 폭력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빨리 어른이 되다

 

무대 위, 도발레는 “평생 지속되는 한순간”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과거 가드나 캠프에서 도발레는 장례식에 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리에서 혼자 나와 운전병이 운전하는 군용 트럭에 탄다. 누가 세상을 떠났는지 듣지 못한 그는 트럭에 앉아 가는 내내 부모님 두 분이 돌아가신 것인지, 둘 중 한 분이 돌아가셨다면 누구일지 끊임없이 생각한다.

도발레를 태운 트럭을 운전하는 운전병은 그의 기분을 살핀다. 도발레는 친구들 중 누구도 건네주지 않았던 담배를 운전병에게서 건네받는다. 도발레는 그렇게 어른이 된다.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지만, 어른이 되는 순간은 원치 않는 때에 찾아왔다. 운전병이 건넨 성인들이 할 법한 농담에 눈물이 나도록 웃으며 도발레는 어른의 순간을 맞이한다.

 

운전병이 내가 벌써 성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는 게 무슨 뜻일까? 어쩌면 나는 그렇게 빨리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거 아닐까? 271p

 

도발레는 자신이 트럭 안에서 했던 생각, 세상을 떠난 건 엄마일 것 같다는 “결정” 때문에 엄마가 세상을 떠난 것이라고 자책한다. 그리고 아빠에 대한 미움과 원망과 함께 안쓰러운 마음을 느낀다. 엄마와 자신에게 폭력적으로 보였던 아빠가, 사실은 누구보다 두 사람을 사랑했으며 “아빠의 삶의 모든 힘은 엄마가 그 곁에 있다는 데서 온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과거 가드나 캠프에서 도발레가 심각한 괴롭힘을 당하는 때에 ‘나’는 도발레를 모르는 척한다. ‘나’는 도발레가 없었다면 아이들이 괴롭힐 사람은 자신이었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훗날 ‘나’는 후회한다. 캠프에서 장례식 소식을 듣고 혼자 떠나는 도발레의 곁에 있어 주지 못했던 것을 말이다. 그리고 다시 그날로 돌아가는 상상을 한다. 누군가 힘들 때 곁에서 함께 걸어 줄 수 있는 어른의 모습을 하고서.

 

지금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모래가 덮인 사각형 훈련장에서 몸을 일으켜 그에게 달려간다. 경로를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다. 흰 도료를 칠한 돌이 가장자리에 박힌 길, 깃발이 나부끼는 열병장. 커다란 군용 텐트. 막사들. 하사는 나에게 소리를 지르고, 위협을 하고. 나는 그를 무시한다. 나는 도발레에게 이르러 옆에서 함께 걷는다. 303p

 

 

 

존재한다는, 어떤 느낌

 

소설 속에서 웃음은 차가운 성질의 것으로만 드러나지 않는다. 도발레는 마음의 상처를 간직한 엄마를 웃게 하려고, 아빠가 집으로 돌아오기 전에 엄마 앞에서 촌극을 공연한다. 운전병은 자신이 개그 경연대회에 나간다며, 도발레에게 단어를 제시하면 개그를 해 준다고 말한다. 나중에서야 도발레는, 군대에서 그런 개그 경연대회는 한 번도 없었다는 걸 알았다. 운전병은 도발레가 받은 충격을 덜어 주고 싶어 노력한 것이다. 이때 웃음은 따뜻함을 품고 있다.

한편, 한때 도발레의 이웃이었던 여자는 관객석에 앉아 종종 도발레의 기억을 온전한 것으로 만들어 주며 마음의 지지를 보낸다. ‘나’는 무대 위 도발레의 이야기를 지루해하며 야유하는 관객을 향해 “저 사람이 이야기를 하게 하시오.”라고 외친다. 그리고 “존재하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기억하게 된다.

누군가의 짐을 함께 짊어지고자 할 때, 자신의 존재는 더욱 또렷해진다. 그런 존재의 느낌은 계속해서 살아나며, ‘나’는 먼저 저세상으로 떠나보낸 연인 ‘타마라’가 곁에 와 있다는 걸 느낀다.

마지막일 것으로 예상되는 도발레의 스탠드업 코미디는 몇 안 되는 관객 앞에서 막을 내린다. 그렇게 쇼는 끝난다. 하지만 전혀 쓸쓸한 끝맺음은 아니다. ‘나’는 도발레를 집까지 데려다준다고 제안한다.

<말 한 마리가 술집에 들어왔다>는 이해하면 할수록 현재 우리 사회와의 접합점을 늘리는 소설이다. 온갖 폭력의 뉴스가 난무하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저 작은 씨앗 하나다. 밝은 온기로 그 작은 씨앗을 틔우면, 물구나무로 걸어야 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다비드 그로스만은 그 이야기를 소설 전체에서 에둘러 말할 뿐이다. 도발레의 마지막 쇼는 시작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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