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56 더 나아가서 성경이 진정한 자유로 상징하고 있는 것은, 갈매기의 비상이아니라 독수리의 비상이다. 「갈매기의 꿈」이 말하는 거짓 복음은 다름 아닌 무지와 물질주의 그리고 실패로부터 우리가 "우리 자신을 끌어올릴 수 있다."(27)고 하는 것이다. 반면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복음은 그분이 우리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이 말하는 ‘비상‘은 자신의 노력이 아니라 예수님에 의한 구원을 상징한다. 다시 말해 성경이 보여 주는 것은 부단히 날개를 퍼덕거리는 것이 아니라, 날개를 펼쳐서 바람을 타기만 하면 되는 것, 자아의 노력 없이도 창공으로 높이 솟아오르는 모습이다.
구약의 지혜서에는 독수리의 비상에 대해 괄목할 만한 언급이 두 번 나오는데, 모두 그 신비와 위엄에 역점을 두고 있다. 하나님이 욥에게 물으신다. "독수리가 공중에 떠서 높은 곳에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이 어찌 네 명령을 의지함이냐?"(욥 39:27) 이 물음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독수리가 높이 날아오르는것은 인간의 이해와 통제를 넘어선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어느 현자는 그가 "기이히 여기는 네 가지 현상 중 한 가지는 "공중에 날아다니는 독수리의 자취 (잠 30:18-19)라고 고백했다.
그러나 독수리의 비상이 수수께끼 같음에도 불구하고 그 힘에 대한 시각적 상징은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과 개인의 경험에서 나타난 대로, 하나님의 구원 능력을 예시한다. 성경은 하나님이 애굽의 압제로부터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키시는 모습을 그리면서, 그분이 그들을 "독수리 날개로 업어 그에게로 인도하였다" (출 19:4)고 한다. 그리고 심지어 이백성이 약함을 의식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가는 것"(사 40:31; 참고, 시 103:5) 이상의 열망을 품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 노력(Self-effort)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새 힘을 얻는" 자들,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한 자들, 그리하여 독수리 같이 비상하는 자들은 오직 여호와만을 간절히 앙망하며 신뢰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사 40:2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