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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pe&joy의 서재
  • 완전한 행복
  • 정유정
  • 14,220원 (10%790)
  • 2021-06-08
  • : 27,866

 

                           

 

 정유정 작가의 소설은 처음 읽었다. 다른 작품들을 읽을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아마 나도 모르게 인간 내면에 잠재하는 ‘악’에 대하여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방송에 출연한 작가의 이야기를 들었다. 2년 동안 집에서 소설 집필에만 몰두했던 시간들과 인간 속에 존재하는 선과 악에 대하여. 작가의 노력과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궁금해졌다. 소설은 주관적 장르이기에 정신의학적 지식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선과 악을 오가며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문제적 인간과 그를 둘러싸고 있는 또 다른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준다. ‘오늘 밤은 1부까지 읽고 자야지.’라고 했던 다짐이 첫 장을 읽는 동안 불면 속으로 사라졌다. 몇 년 만에 밤을 새어 날이 밝아올 때까지 소설을 읽었다. 다 읽고 났을 때의 질문과 물음표가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돈다. 선과 악은 우리 안에서 어떻게 시작되고 자라나는지, 그것은 어떻게 작용하고 갈라지는지. 그런 면에서 인간은 영원한 수수께끼이다.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이다. 제목처럼 행복하기를 꿈꾸며 각자만의 행복을 찾아 나아간다. 그러나 과정 속에서 ‘완전한’이란 단어를 붙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인간 자체가 완전하지 못한 존재이기에 우리가 완전한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완전한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떨어져 나가고 희생되어야 했던 많은 사람들과 사건들을 떠올리며, ‘완전’이란 단어가 불행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해석되었다. 그러나 최초의 인간인 아담이 금지되었던 선악과에 손을 댄 후로 인간은 계속해서 완전한 경지에 이르기 위해 도전하고 좌절한다. 바로 그 때가 악한 본성이 우리 안에서 신이 될 수 있다고 꿈틀대는 순간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의 감정을 신으로 삼고, 그 속에 매몰되어 타인을 죽음까지 끌고 가는 악력이 무서웠다.

 

- “행복이 뭐라고 생각하는데? 한번 구체적으로 얘기해봐.”

……

“행복은 뺄셈이야.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는 거.”

……

“나는 그러려고 노력하며 살아왔어.” 112~113.p

 

 

  행복에 대하여 묻는 남편의 질문에 모든 사건을 끌고 나가는 ‘유나’의 대답이 소름끼친다. 완전한 행복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는 것. 자신은 그러려고 노력하며 살아왔다고. 그녀는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데 일말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라면 가차 없이 제거하며 살아 왔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르시시스트이면서 사이코패스인 ‘유나’가 밉지 않았다. 불가피한 사정으로 어린 시절 부모와 떨어져 지내야 했던 시간은 그녀에게 치유될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남겼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그러한 일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본인 또한 피나는 노력을 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형성된 그녀 안의 광기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부터 괴롭히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정해진 순서대로 유나와 그들은 불행해졌다. 자신을 떠나려고 하는 사람들, 자신을 거부하고 거절하는 사람들을 향한 분노가 유나 안에 잠재된 악한 본성에 불을 붙였을 것이다. 거기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사람은 가장 친밀하고 약한 여섯 살 먹은 딸 ‘지유’이다.

 

 

- 엄마는 규칙을 정하는 사람이었다. 규칙을 어기면 벌을 주는 사람이기도 했다. 엄마에겐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았다. 용서를 빈다고 용서해준 적도 없었다. 지유는 가차 없이 벌을 받아야 했다. 고아가 되는 벌이었다. 31.p

 

 

  엄마라는 이름으로 얼마든지 어린 딸을 조정하고 움직일 수 있었을 테니까.

 

 

  만약에 유나가 아닌 언니 재인이 할머니 집으로 보내졌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었을까. 부모와 떨어진 어린 손녀에게 할머니가 엄격하게 다루지 않고, 무조건적인 사랑과 연민의 정을 더해 키웠다면 유나의 성격은 달라졌을까. 왠지 잘 모르겠지만 상황에 대한 경중이 다를 뿐 유나의 악한 본성은 사라지지 않고, 감정의 찌꺼기가 되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을 것 만 같았다. 그것은 유나를 통해 들여다 볼 수 있는 나와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했으니까. 

 

 

  유나가 완전한 행복을 위해 가차 없이 뺄셈을 하는 동안 어린 지유는 공포와 불안에 시달렸다. 지유의 영혼이 점점 가늘어지다가 어느 새 텅 빈 채 사라지고 말 것 같아서 불안했다. 할 수만 있다면 그 어린 영혼을 감싸주고 싶었다. 그러나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본인의 몫이다. 옆에서 격려하고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오롯이 그 길을 살아내는 것은 자신뿐이다. 그런 면에서 어린 딸 지유는 타인이 자신을 향해 베푼 사랑과 따뜻한 선의에 대해 공포와 두려움을 무릅쓰면서도 결코 외면하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악한 본성에 비해 선한 본성이 절대로 약하지 않다는 것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작가는 우리에게 “개인은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점에서 고유성을 존중받아야 함과 동시에 누구도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점 또한 인정해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자신을 특별한 존재라고 믿는 순간, 개인은 고유한 인간이 아닌 위험한 나르시시스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면서 말이다. 그동안 자의든 타의든 우리 모두는 각자 세상의 중심이자 특별한 존재라고 주문을 걸며 살아왔다. 그렇기에 무시 받거나 인정받지 못하면 괴로워하거나 분노했다. 그 에너지가 어느 쪽을 향해 나아갔는지 알 수 없지만.

 

 

 이쯤에서 다른 방향으로 생각하고 고민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나 자신, 현재 살아 숨 쉬는 소중한 존재이나 언젠가 한 줌 흙이 되어 이 세상에서 사라질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 너무 완전해 질 필요도 없고, 그럴 수도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며 편하게 내 주위를 마주한다면 조금은 나 자신과 세상에,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관대해 질 수 있을 것 같다. 악한 본성만큼 우리 내면에 자리한 선한 본성도 힘이 세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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