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말 잘 들어보세요. 지금은 1984년입니다. 제발 정신 좀 차리세요. 어떻게 2년 전이나 지금이나 늘 2016년에 살고 있나요? 설마 100년 뒤에도 2016년애 산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요?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청소년소설이 문학동네에서 새로 나왔다. 이꽃님 작가의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이다. 사실 작년에 이꽃님 작가의 『악당이 사는 집』을 읽으며 속도감 있는 전개와 인물 사이의 심리묘사가 유쾌했던 기억이 있어 작품을 읽기 전 기대가 컸다.
편지가 시간을 건너 메세지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떠오르고 2016년 화제의 애니메이션인 신카이 마코토의 '너의 이름은'이 생각난다. 마지막 결말에 이르러서는 영화 '컨택트(원제:Arrival)'이 겹쳐지는 이 작품이 가진 매력은 어떤 것일까?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
2016년 열 다섯의 은유가 느리게 가는 우체통에 넣었던 편지가 1982년 열 살의 이름이 같은 은유에게 전해진다. 어떠한 까닭에서 그렇게 전해지는지 알 수 없지만 두 사람은 서로를 의심하지만 서로의 고민을 '편지'라는 매체를 통해 털어놓는다. 2016년의 은유가 1년 동안 아빠의 결혼과 새엄마와의 관계, 친엄마에 대한 의문 등에 대해 고민하는 동안 1982년의 은유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열 살이었던 은유는 12살이 되고 15살을 넘어 대학에 간다.
가슴에도 마음을 담아 두는 공간이 정해져 있어서, 너무 많은 마음을 담아 두고 뱉어 내지 않으면 가슴이 뻥 터질 것처럼 갑갑해지거든.
청소년기에는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이 절실하다. 호르몬의 탓으로 청소년기의 방황을 모두 설명하기 전에 우리는 아이들의 이야기에 얼마나 귀 기울였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 작품은 두 은유가 서로의 고민을 나누는 모습과 그 이야기에 공감해 주는 따뜻함을 전해준다. 또 서로만 공유하는 특별한 이야기를 엿보는 듯한 재미도 느낄 수 있다. 41편의 편지로 이루어진 이 작품을 읽으며 중학교 시절 유행하던 남의 교환일기를 훔쳐보는 느낌마저 들었다.
시대와 세대를 건너오다
남자는 바깥양반이고, 여자는 안사람이라 아이들 교육을 맡는다는 거 그거 진짜 충격적인 말이다. 무슨 조선시대에 사냐?
1980년대를 사는 은유와 2016년을 사는 은유의 가치관은 대화를 통해 드러나고 부딪친다. 이 다툼은 단순히 두 개인의 다툼이 아닌 세대간의 갈등을 드러낸다. 이 갈등을 지켜보고 또 두 사람이 서로의 진심을 드러내며 서로 해결하는 과정이 꽤 흥미롭다. 또한 6월항쟁, KAL기 폭파사건, 성수대교 붕괴 등 우리나라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은 시대를 건너 두 사람을 연결해준다.
시간여행이라는 소재의 즐거움
1980년을 살아가는 아이와 2016년을 살아가는 아이가 편지를 주고 받으면 어떤 일들을 할 수 있을까? 2016년의 은유는 1980년대의 은유에게 학력고사 기출문제를 알려주고 미래에 나오게 될 '로또번호'를 알려준다. 1980년대의 은유는 2016년의 은유가 궁금해하는 젊은 시절의 아빠와 엄마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시간여행이 줄 수 있는 발칙한 상상을 지켜보는 것도 이 작품이 지닌 매력 중 하나이다.
시간을 건너, 세계를 건너서라도 만나야 할 사람
그 먼 시간을 건너 네 편지가 나한테 도착한 이유를.
너와 내가 사는 세계의 시간들이, 그 모든 순간들이 모여 있는 힘껏 너와 나를 이어 주고 있었다는 걸.
이 작품은 결국 두 사람이 서로를 만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과정들을 담고 있다. 결국 두 사람은 이어져야만 했다. 아니 만나야만 했다. 우리의 삶도 어쩌면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과정은 아닐까? 시간을 건너, 세계를 건너서라도 만나야 할 사람을 떠올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