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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양심

경계를 허무는 상상력

-구상과 추상의 충돌이 빚어낸 현대적 해학-


작자미상, 고기잡이, 116.8×91cm, 캔버스에 유채



​본 작품은 50호라는 작지 않은 화면 속에 동화적 서사와 현대적인 회화 기법을 과감하게 결합한 수작이다. 화면 중심을 관통하는 거대한 물고기와 그 위에 올라탄 아이,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노인들의 모습은 단순한 풍경을 넘어선 초현실적 에너지를 발산한다. 이 작품이 지닌 조형적 가치와 예술적 담론을 세 가지 측면에서 분석하고자 한다.

 

 

​1. 서사적 전복: 관조의 바다에서 유희의 바다로

 

​작품의 좌측 상단과 중앙은 극명한 서사적 대비를 이룬다. 돛단배에 몸을 실은 두 노인은 전통적인 어촌의 풍경이나 '관조'하는 자의 태도를 보여 주는 반면, 화면 중앙의 아이는 거대한 물고기의 등에 올라타 거친 바다를 정복하거나 혹은 그와 하나가 되어 즐기는 '유희'의 주체로 묘사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스케일의 왜곡'이다. 배보다 훨씬 크게 묘사된 물고기는 현실 세계의 물리적 법칙을 무너뜨리며, 이 공간이 작가의 내면적 상상력이 투영된 심리적 공간임을 암시한다. 노인들의 온화한 표정과 아이의 역동적인 행위가 한 화면에 공존함으로써, 작품은 세대 간의 대비를 넘어 인간 본연의 생명력과 자유에 대한 갈망을 해학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2. 조형적 실험: 액션 페인팅과 구상의 기묘한 동거

 

​이 작품의 가장 강력한 미학적 특징은 기법의 이중성에 있다. 인물과 물고기, 배의 형태는 명확한 윤곽선과 양감을 가진 구상 회화의 문법을 따르고 있으나, 이를 에워싸고 있는 배경과 질감 표현은 지극히 추상적이며 즉흥적이다.

 

​특히 화면 상단의 황금빛 소용돌이와 하단의 푸른색 드리핑(Dripping) 기법은 잭슨 폴록식의 액션 페인팅을 연상시킨다. 물감을 뿌리고 흘리는 과정에서 발생한 우연적인 선들은 정적인 구상 형태 위에 겹쳐지며 시각적 노이즈를 발생시킨다.

 

이러한 '노이즈'는 자칫 평범해질 수 있는 구상화에 현대적인 세련미와 속도감을 부여한다. 수면 아래를 표현한 푸른색 층위 위에 다시 얹어진 밝은 하늘색의 자유로운 드로잉은 물의 깊이감보다는 '화면의 평면적 리듬'을 강조하며, 관람객으로 하여금 캔버스라는 물리적 표면 자체를 인지하게 만드는 현대미술적 장치로 작용한다.

 

 

3. 색채의 긴장과 조화: 보색 대비를 통한 에너지의 응축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색조는 상단의 오렌지·황토색 계열과 하단의 블루 계열의 보색 대비이다. 이 강렬한 온도 차이는 화면을 상하로 분절하는 동시에, 시선을 중앙의 물고기와 아이에게로 강력하게 수렴시킨다.

 

​전통적인 풍경화가 원근법을 통해 공간의 깊이를 추구한다면, 이 작품은 색채의 대비와 겹침(Layering)을 통해 깊이를 형성한다. 물고기의 어두운 비늘과 아이의 흰 셔츠는 배경의 화려한 색채들 사이에서 명도 대비를 이루며 시각적 주인공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또한, 배경 곳곳에 스며든 미세한 금색의 흔적들은 자칫 차갑게 느껴질 수 있는 푸른 화면에 온기를 불어넣으며 전체적인 색채 균형을 맞추고 있다.

 

 

총 평

 

본 작품은 구상 회화가 가진 '이야기의 힘'과 추상 회화가 가진 '표현의 자유'를 한 그릇에 담아내려는 시도가 돋보이는 작업(초현실주의라고 봐도 무방한)이다. 기법적으로는 다소 이질적인 요소들이 충돌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해학'이라는 한국적 정서로 버무려낸 점이 인상적이다.

 

​비록 배경의 장식적 요소가 지나치게 전면에 나서면서 물체의 입체감을 간혹 상쇄시키는 아쉬움은 있으나, 50호라는 대작을 밀도 있게 끌고 나가는 작가의 필력과 구성력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이 그림은 박제된 풍경이 아니라, 지금도 꿈틀대며 움직이는 상상력의 생동감을 증명하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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