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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양심


내가 그림을 컬렉션해서 집에 걸어 둔다고 하면, 꼭 이렇게 묻는 분들이 있다. 그림을 사서 걸어두는 삶은 어떤 삶이냐고. 일종의 ‘위화감’의 다른 표현같다. 아주 엔날에 내가 4벽을 모두 책으로 둘러놓은 곳에서 책을 읽는다고 하니까, 어떤 분이 책을 읽는 그런 한량같은 생활은 자기는 상상도 하지 못한다고 했던 말이 기억난다. 대동소이한 말이라서.

 

그 사람의 뒷말이 ‘위화감’의 실체를 뒷받침했다. 책을 소장하고 읽으려면 서재라는 공간이 필요하고 그만한 공간이 있으려면 부르주아가 아니면 안 된다고. 그럴까? 당시 나는 10평짜리 전세를 살고 있었고 평생의 소원이던 서재 벽 4면을 책으로 채울 수 있었기에 뿌듯했는데 어떤 이에게는 이게 부르주아적 생활방식이었나보다.

 

음주와 흡연을 하지 않으니, 상대적으로 돈이 적게 나가고 기호품 중 책은 의외로 돈이 적게 드는 취미 컬렉션 중 하나다. 1년 300권을 산다고 해도 저렴한 헌책방에서 사면 150만 원 정도밖에 들지 않는다. 7년 정도 지나면 약 1천 만원으로 2000 천 권 넘게 모을 수 있다. 이게 부르주아적인 삶인지 잘 모르겠다. 음주와 흡연을 7년 정도 했다고 하면 1년에 150만 원만 될까.

 

어쨌든 책 이야기를 소환했던 건 그림 컬렉션이 취미 생활의 끝판왕이라는 인식이 강해서이다. 컬렉션을 해 보면 안다. 컬렉션의 끝은 미술품 구매라는 걸. 돈도 돈이지만, 구매에 아주 큰 돈이 들어가니 공부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심미적 안목이 뒷받침 돼야 엄한 걸 구매하지 않는다. 갤러리가서 갤러리리스트의 사탕발림에 넘어가 막 데뷔한 신진작가의 10호 그림을 3백만 원에 사는 우를 범하지 말라는 거다.

 

미술품 중 대중에게 그나마 접근성이 쉬운 게 그림이다. 갤러리나 아트페어에 가면 그림이 주가 되는 이유가 다 있는 거다. 대중이 쉽게 사서 집 거실에 편하게 걸 수 있는 게 그림이기에 미술품의 대명사가 그림이 된 거.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집에 그림 하나 걸려 있으면 분위기가 달라지고 소유자의 취미가 고상한 것으로 승격되는 마술을 발휘하곤 하니까.

 

헌데 일반적인 직장인들은 안다. 집에 그림을 걸어놓는 직원이 없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림을 어디서 구입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도 많지 않다. 그럼에도 아트페어에 가 보면 사람들이 넘친다. 놀라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다. 아트페어는 그림 장터와 마찬가지의 공간이다. 마트에서 물건을 사듯이 그림은 아트페어에 가야 다양한 매물을 볼 수 있고, 구매할 그림의 선택을 늘릴 수 있어 좋다.

 

원래 그림을 파는 곳은 갤러리다. 우리나라는 마트처럼 갤러리가 동네에 있지 않다. 물론 있는 곳도 있긴 하지만 금새 망한다. 대부분 갤러리들은 모여있다. 강남 청담동, 종로 인사동, 서대문구 홍대부근 등에 몰려 있다. 그렇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기 때문. 그림은 사치재로 분류되기 때문에 비싸다. 그래서 이렇게 모여 상권이 형성되지 않으면 홍보도 어렵고 그림 팔기도 힘들다.

 

아까 위에서 책 얘기를 했는데, 그림은 책과 동일한 기호를 표출하는 물건이지만 경제적으로 그 가치가 확연히 구분된다. 책은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그림은 매우 비싸다. 책은 대중적인 상품이고 그림은 절대 대중적이지 않은 사치재이기에. 그래서 그림을 걸어놓는다고 하면 일반적이지 않은 삶이 된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위화감을 발생시킬 정도로 다른 세상의 삶이 된다.

 

그도 그럴 것이 갤러리에 가서 그림 가격을 물어보면 기가 찬다. A4용지 크기만한 신진작가 그림이 50만 원이란다. 미키마우스를 그린 작은 그림이. 위화감을 느낄만한 가격이다. 그래서 일반인들이 “그림을 걸어놓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는 고백이 나온다. 고액 연봉을 받는 사람 중 그림을 향유할 줄 아는 특권층이라는 인식을 암암리에 내포하고 있다. 취미활동이 아닌 쓸모 없는 작은 그림을 몇 백만 원을 주고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도시근로자 평균 임금을 생각할 때 갤러리 그림값은 일반 샐러리맨들이 접근할 수 없는 가격이다.

 

왜 사람들에게 이런 생각이 자리잡게 되었을까? 나는 우리나라의 미술시장이 기형적이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대한민국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 그림 시장이 가장 많이 왜곡되어 있다. 그림을 집에 걸어놓는 집이 5가구 중 하나라는 통계는 참으로 많은 것을 나타내는 지표다. 통계 숫자보다 표면적으로 느끼는 바는 아마도 10가구 중 한 집이 그림을 걸어놓을 것이다. 아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30가구 중 하나이지 않을까. 내가 아는 직원만 100명이 넘는데 집에 그림이 있는 집은 딱 1곳이었다. 그 이유가 자기 언니가 회화를 전공했단다.

 

생활 문화 전반에 그림을 향유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심지어 벽은 아무 것도 걸어놓지 않아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분들도 만나 봤다. 뭔가를 걸거나 붙여 놓으면 안된다고. 참 특이한 나라다. OECD 선진국 중 우니나라만큼 미술 저변이 없는 나라는 거의 없다. 필리핀이나 인도를 대상으로 찍은 다큐멘터리를 봐도 집에 그림 하나씩은 다 있다. 멕시코나 아르헨티나는 말해서 뭘할까. 그 나라 주민들의 집들은 우리나라보다 못하면 못했지 결코 좋은 환경의 집이 아니다. 그럼에도 벽에 그림이 걸려 있음을 본다.

 

우리나라는? 없다. 대체로 없다. 당신의 집을 생각해 보면 된다. 사무실에는 그림이 있는가? 회사 사무실에는? 최근에 교육을 들으러 연수원에 간 적이 있다. 연수원 화장실을 가니 김환기 복제 그림들이 작게 걸려 있는게 보였다. 연수원 직원들에게 그 작은 그림들은 어떻게 설치되었는지 물었다. 돌아온 대답이 걸작이었다. 놀라면서 “화장실에 그림이 있어요?” 쉬하는 변기 눈높이에 변기 위 마다 붙어있는데 말이다.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림에 관심이 없다. 하도 바쁘게 사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제 선진국을 넘어 국제 공급망을 좌우할 정도로 큰 나라가 됐는데, 문화면에서도 강국으로 올라섰는데 여전히 미술 문화는 바닥을 면치 못하고 있다. 문학이나 미술은 아직도 아프리카 보다 못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 이유는 위에서도 언급했다시피 향유할 수 있는 문화가 형성되지 않아서다.

 

제일 큰 원인이 우리나라 미술 시장에 있다. 아니 원죄는 미술인들이겠지. 상아탑에 갇혀 그들만의 리그를 최우선시했기에 비리도 많고 시장이 왜곡되는 걸 도외시했기 때문이다. 10집 건너 그림이 있는 나라에 연 전시회가 1만여 건에 달하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그러니 저렴한 그림 시장이 형성되지 못하고 작가들은 연봉 500만 원도 안 되는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작가의 길을 포기하게 된다. 위에서 그림을 사서 걸어 두는 생활을 상상도 하지 못한다고 했는데 그 이유가 그림값이 터무니없이 비싸기 때문이다.

 

아트페어나 갤러리에서 경력이 일천한 신진작가 1호 그림이 30만 원을 넘는다는 건 아주 심각한 시장 왜곡이다. 타 상품과 비교해 가격(작가)의 선택폭이 너무 좁다. 외국처럼 저가 작품을 취급하는 갤러리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시장이 전혀 없으니 비싼 그림이 대접받는 이상한 시장이 형성되는 거다. 미국이나 유럽은 동네 작가들을 위해 3만원, 5만원, 10만원 정도의 그림을 파는 갤러리들이 꽤 된다. 아마추어 작가나 등단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신진작가들을 위한 갤러리다.

 

10호(약 50×45cm) 그림 한 점에 5만 원이나 10만 원 정도면 그리 비싸지 않아 집에 좋아하는 그림을 걸 만하지 않을까. 헌데 우리나라는 이런 시장 자체가 없다. 멕시코나 브라질 심지어 인도에도 있는데 말이다. 세계에서 순수 미술 작가들은 대체로 가난하지만 우리나라 작가만큼 어려운 나라도 없을 듯하다. 저가 그림 시장 자체가 없으니 작가들이 그림을 팔래야 팔 수 없는 거. 갤러리와 계약을 해야 하는데 그림값이 10호에 200백 이상이니 누가 그림을 사겠는가.

 

물론 우리나라에서 좋은 원화 그림을 10만 원 내에 살 수 있는 곳이 아예 없지는 않다. 소규모 경매를 이용하면 중견 화가 이상의 10호 작품을 10만원 이하로도 낙찰 받을 수 있다. 1천원부터 시작하는 경매가 있어 운이 좋으면 원로 작가의 원화를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 하지만 이는 매우 예외적인 사례이고, 경매에 참여하려면 공부도 많이 해야하고 내가 좋아하는 그림이 확고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구매하고도 후회하게 된다.

 

어쨌거나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그림을 사서 걸어 두는 삶이 현실과는 유리된 특권적 삶이 아니라는 점이다. 쉽게 얘기해서 어떤 사람은 버버리 코트를 300만 원에 사서 그 브랜드를 향유하지만 나는 그 정도 퀄러티 상품을 10만 원에 사서 그 클래식함을 즐긴다는 차이다. 책도 마찬가지. 누구는 3만 원 정가 주고 사지만 나는 헌책방을 전전하며 같은 책을 5천 원에 데려오는 삶 말이다. 이게 현실과는 유리된 특권층의 삶인지 모르겠다.

 

나는 갤러리에서 좋은 그림을 500만 원, 1천만 원 주고 살 돈이 없다. 그 정도 작가는 경매 시장에 나올 확률이 거의 없다. 쉽게 말해서 되팔 수 없는 그림들이다. 나는 그림은 무조건 최대한 싸게 구입해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그래야 나중에 되팔 수 있다. 


 농촌풍경, 122×61cm, 캔버스에 유채


쉽게 생각해서 국전 심사위원장이나 교수 출신 30호 그림을 1천만 원에 구입했다 치자. 갤러리 적정가격이다. 하지만 갤러리에서 산 그림은 절대 그 가격에 되팔 수 없다. 10만 원에 구입했다면? 되팔 수 있다. 이 정도 경력의 30호 그림이면 30만 원에 내 놔도 수요가 있다. 되팔 수 있게 된다.

 

그런 그림을 집에 사서 걸어놓는 삶이 특권층의 삶이라면 할 말이 없다. 요즘 브랜드 코트 한 벌도 아울렛에서 사면 20만 원이 넘는다. 내 임금이 월 200만 원이라면, 한 달에 취미로 20만 원 정도 지출하는 삶이 특권층 삶이라면 사람들이 비웃겠지. 근데 그것이 그림이라면? 


갤러리에서 5백 만원에 팔리는 그림을 10만 원에 살 수 있다면 그건 특권층의 삶이 아니라 그림 덕후의 삶이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옷 덕후, 책 덕후들은 해당 상품에 대한 가격에 빠삭해서 좋은 품질의 상품을 아주 저렴하게 살 수 있다. 그림 덕후도 마찬가지. 그림을 싸게 사서 그림 자체를 즐기는 삶. 이건 특권층의 삶이 아니라 덕후의 삶이지 않을까. (끝)

 

 

[덧]

1. 나중에 기회가 되면 갤러리에서 5백 만원 정도에 팔리는 원화 그림을 50만 원 미만에 살 수 있는 방법을 써 볼까 한다. 

2. 위 그림은 내가 몇 년 전에 인터넷 온라인 경매에서 10만원에 낙찰받은 그림이다. 박수근 그림을 좋아해서 박수근 화풍이 있는 그림을 컬렉션하곤 한다. 이 그림은 박수근 화풍에 작가적 색채가 드러나 입찰해서 데려온 그림이다. 당시 작가 서명을 알아볼 수 없어 작가 미상작으로 저렴하게 나온 작품인데, 열심히 찾아 보고 공부해서 작가 이력을 알게 됐다. 작가 미상의 저렴한 작품은 이런 매력이 있다. 심지어 1천원부터 시작하는 경매가 있어 좋은 작품이 5만원에 낙찰되는 경우도 간혹 있다!

3. 이 그림을 지인(미술가임)이 집에 와서 보고 낙찰 받은 가격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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