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말의 양심

회화 중에 정물화가 있다. 꽃, 화병, 주전자, 병, 과일 등. 세잔의 사과 그림은 너무도 유명하다. 정물화로 유명세를 떨치기는 좀처럼 힘든데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구자승 화백이 정물화로 인기가 많고 유명하다.

 

근데 정물화는 왜 그리는 걸까? 초현실주의나 다다이즘에서 보았을 때 정물화는 현대적이지 않은 주제다. 개인적으로도 궁금했다. 화가들은 도대체 정물화를 왜 그리는 걸까?

 

공부를 좀 해 보니, 사물과 공간에 대한 기본기를 익히기에 정물화 만한 주제도 없었다. 사물과 사물의 관계 뿐만 아니라 그걸 보는 화가의 관계도 잘 드러내 주기에. 작가에 따라서 사물을 대하는 방식이 천차만별이고.

 

구성이나 구도를 잡는 것 또한 작가의 능력이라 이런 걸 보는 재미도 솔솔하다. 여기에 작가의 화풍과 개성이 더해지면 정물화라도 엄청난 매력을 뽑낼 수 있다. 세잔의 사과 그림처럼 말이다.

 

최근에 정물화의 매력에 빠져 몇 자 적어 본다. 정물화는 화가에 따라 진짜 천차만별이다. 단순하기에 화가의 개성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장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좋은 작품을 감상하면 기분이 매우 좋다.

 

정물화는 회화 중에서 매우 정적인 화면이라 다소 심심할 수 있지만 화가만의 특색이 잘 드러난 작품을 보면 감동도 느낄 수 있는 장르다. 최근에 발견한 나만의 느낌이다. ㅎㅎ

 

개인적으로 도상봉 작가의 그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화풍 변화도 없었고 그림 자체가 좀 밋밋하고 작가의 서사가 없어 그냥 그랬다. 헌데 정물화를 보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도상봉은 일생을 두고 지속적으로 풍경화나 정물화를 그렸다. 도자기에 일가견이 있어서 그런지 도자기 드림도 많이 남겼다. 특히 백자에 꽂힌 꽃 그림을 많이 그렸는데, 처음엔 잘 그린 그림으로만 생각했다. 정물화를 쭉 감상하다 보니 도상봉만의 개성이 보였다. 다른 어떤 화가도 도상봉처럼 그리지 않았다.




회화에서 정물은 극히 제한된 사물의 배치이다. 하지만 요구되는 바가 적지 않다. 그것이 회화라면 언제나 짜임새 있는 구도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회화에서 구도와 구성이 가장 극명하게 요구되는 주제다.

 

이는 화면의 밀도에서 드러난다. 좋은 정물화는 안정적인 구도에서 사물의 밀도를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대상들 간의 관계가 드러나며 일상적인 사물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게 된다.

 

헌데 도상봉의 정물화에는 이런 밀도감을 느낄 수 없다. 짜임새 있는 구도도 없다. 대신 그 자리를 공간의 균질함이 차지하고 있다. 도상봉의 정물화를 보면 한결같다. 부드러운 파스텔 색조가 부드럽게 퍼져가는 느낌이 강하다.

 

위 <국화>에서 보듯이 국화가 꽂혀 있는 화병이 불안정하게 크다. 저런 식으로 구도를 잡는 작가는 거의 없다. 헌데 도상봉은 저런 구도로 많은 정물화를 남겼다. 매우 특이해서 오래 보고 있으면 마음이 가라앉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그런 걸까. 평론가 오광수는 <21인의 한국 현대미술가를 찾아서>(시공사, 2003)에서 도상봉의 정물화를 다음과 같이 평했다. “만년의 화면들이 짙은 관조의 세계로 돋보이는 것은 고른 숨결처럼 잔잔하게 덮어가는 색조와 안으로 스며드는 듯한 부드러운 톤의 다독거려진 터치와 색조의 포화 때문이다.”

 

오광수는 도상봉의 정물화 기법을 ‘포만의 효과’라고 명명했다. 이를 통해 도상봉은 관조의 세계를 성취했다는데, 이는 잘 모르겠고 어쨌든 대상을 기이하게 강조했지만 부드럽고 풍만한 색조의 퍼짐을 통해 대상을 다시 볼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보면 확실히 그만의 개성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 하겠다.

 

도상봉의 <국화>는 구자승의 정물화와는 또 다른 면을 보여 주기에 좋았지만 변월룡의 작품을 보면서 정물화의 경지를 새롭게 느껴볼 수 있었다. 남한에서는 잊힌, 북한에서는 제거된 화가.

 

페테르부르크 출신의 이 고려인 화가 작품을 보면서 나는 단순한 정물화가 얼마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지 체험할 수 있었다. 그림 한 점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대가인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 걸려 있는 <진달래>를 보고 그 자리를 뜨지 못했다. 어떻게 이런 과감한 구도를 택해서 정물화를 그렸는지. 전체를 덮고 있는 화사한 진달래 꽃은 봄의 계절감을 만끽하게 한다.

 

옆 쪽 문지방으로 보여지는 먼 산의 풍경과 떨어져 있는 진달래 잎은 원경과 근경의 조화를 통해 '풍경적 정물'이라는 모습을 보여준다. 방에 떨어져 있는 나무 숟가락(파이프?)과 흩어진 꽃들, 낮은 위치에 있는 화병 등 산만하고 무질서해 보이지만 가운데 있는 흐드러진 진달래로 인해 화면은 정돈된다.

 

밀도감 보다는 대상들의 관계를 통해 '자연의 시간'을 느끼게 하는 작가의 능력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구도의 자연스러움은 대상의 단조로움을 극복하고 공간을 새롭게 창출한다.

 

하나의 화면에서 공간과 시간 그리고 오후의 상실감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작품이라니!. 정물화를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변월룡이라는 작가의 작품이 더 궁금해진다. 내가 본 정물화 중 가장 빼어난 작품이 아닐까 한다.

 

밋밋하고 식상하다고 생각했던 정물화. 구자승 화백의 정물화가 규범이라고 생각했던 내게 도상봉과 변월룡의 정물화는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었다. 또 어떤 정물화가 내게 큰 감동을 줄지 다른 작가의 정물화를 찾아 나선다. (끝)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