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가끔 듣는 말 중에 카르페디엠, 메멘토모리, 아모르파티 등이 있다. 잘은 모르지만 여타 책에서나 책 좀 읽는 사람들 중에 이러한 개념을 말하는 이들이 있다. 몰라도 티를 내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줄로 안다. 나도 한때는 그랬으니까. 모르는 것은 창피한 일이 아니다.
근데 이들 말들은 모두 라틴어다. 의미하는 바가 뭘까?
carpe diem(카르페디엠)은 호라티우스가 한 말로 ‘오늘을 잡아라.’ 또는 ‘내일은 최대한 믿지 마라.’ 정도로 번역된다. 이 속에 담긴 원래의 뜻은 ‘모두 오늘도 행복하세요. 당신에게 내일은 없을 수 있습니다.’라는 거. 그러니까 쉬운 말로 내일 죽을지도 모르니 오늘을 최대한 행복하게 지내라는 의미다.
Memento Mori(메멘토모리) 라틴어로 '죽음을 항상 기억하라'라는 뜻. 고대 로마시대.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에게 노예가 ‘너도 언젠가는 죽을거다!(메멘토 모리!)’라고 했다는 말을 노예였던 에픽텍토스가 전했고 이것을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자신의 책 <고백록>에 수록하여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amor fati(아모르 파티)는 니체가 “인간의 위대함에 대한 나의 공식은 아모르 파티이다: 아무것도 다르게 원하지 않는 것 – 앞으로도, 뒤로도, 영원히.”라고 말한 데서 유래한단다. 즉 삶의 고난까지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사랑하는 태도를 말한다.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는데, 이 운명을 받아들이는 삶의 자세가 곧 위대함이고 이것이 바로 초인이라는 것.
결국 카르페디엠, 메멘토모리, 아모르파티를 관통하는 단 하나는 ‘죽음’으로 귀결된다. 좋은 삶과 죽음은 어떤 관계인가? 몽테뉴의 <좋은 죽음에 관하여>(아르테, 2024)는 바로 이 문제에 대한 개인의 대략적인 고찰(에세이)이다. 몽테뉴의 <에세>에서 죽음에 관한 내용만 편집한 책이라 할 수 있다.
몽테뉴는 살아 생전 소크라테스를 열렬히 존경했단다. 그래서 책 도처에 소크라테스의 핵심 사상이 몽테뉴의 어휘로 다시 설파되고 있다. 몽테뉴는 소크라테스뿐만 아니라 그리스-로마 철학자 및 스토아-에피쿠르스 철학자들의 죽음에 대한 언명들을 소주제에 맞게 소개하고 있다.
이제 더는 세상이 그대에 대해 어떤 말을 하는지 신경 쓰지 말고 그대가 자신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지를 생각해 보게. 자신 안으로 들어가게. 그러나 우선 그대의 마음이 그대를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하네. 스스로를 다스릴 줄 모르면서 자신을 믿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니. (세네카가 친구인 루킬이우스에게 세상사에서 벗어나 은거하기를 권유하는 편지, pp69-70)
“죽음은 오직 죽음 이후에 뒤따라오는 것들 때문에 불행이 된다.(성 아우구스티누스, <신국론>)” 그러나 나는 죽음 이전의 일이건, 이후의 일이건 죽음과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고통을 들먹이며 그릇된 변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중략)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오직 고통뿐이다. 그것이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불행이라는 것을 나는 기꺼이 인정하는 바다. (p83)
책장을 넘길수록 죽음이 곧 삶이고, 삶이 곧 죽음이라는 생각이 뚜렷해진다. 에로스-타나토스가 하나의 쌍인 것처럼 삶-죽음도 완벽한 하나의 쌍이다. 주역에서 말하는 음-양의 논리와 차이가 없었다. 결국 ‘좋은 죽음에 관하여’는 ‘좋은 삶에 관하여’의 다른 말이었던 것.
이 책에서 ‘죽음’이라는 단어를 ‘삶’이라는 단어로 치환해도 뜻은 똑같다. 단지 그 감정의 결만 차이가 있다. 이 미묘한 차이가 본 책이 가지는 매력이다. 죽음에 대한 철학자들의 언명을 차례로 검토한 뒤 몽테뉴는 죽음에 대한 자신의 사상을 마지막에 부가한다.
“내 생각에 가장 아름다운 삶은 평범하고 인간적인 모습에 걸맞은 삶, 특별나거나 과도하지 않게 순리에 따라 사는 삶이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이다. 문장에서 삶을 죽음으로 치환해도 의미는 같다. 여기서 ‘평범하고 인간적인 모습’과 ‘순리에 따라 사는 삶’의 전제는 자기를 아는 것이다. 책의 도처에 암시되는 것 또한 나 자신이 누구인지 알 때에야 진정한 자기 삶을 살 수 있다는 말로 요약된다.
그것이 바로 좋은 죽음의 전제다. 그래서 몽태뉴는 말한다. "평온하게 자신의 감정을 즐기고 만족할 줄 알며, 사는 동안 죽음을 준비하는 이들은 행복할 지니!" (p219)
우리는 모두 태어나는 순간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죽는다는 것은 보편적인 진리다. 하지만 모든 죽음은 또한 개별적인 것이기도 하다. 같은 죽음이란 없다. 같은 사랑이란 없는 것처럼.
그래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누구인지 알고 내가 원하는 것을 끊임없이 추구해야 마지막에 후회가 없다. 후회가 없는 삶이 좋은 삶이 아닐까? 이 책을 읽고 내가 내린 좋은 죽음에 대한 답이라 하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