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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양심

우연찮게 예스24 중고서점에서 건진 책 가운데 걸출한 책이 있어 간략하게나마 소개해 본다.




<마음과 철학>(서양편 하). 이게 철학사 책인줄 읽어 보고 알았다. 다만 한 사람의 저자가 쓴 책이 아니라 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가 엮어낸 일종의 철학자별 논문집인데 그게 플라톤부터 시작해서 데이비드 차머스까지다. 주제는 마음의 본성에 대한 탐구. 즉 색다른 세계 심리철학사라고 봐도 무방하겠다.


나는 고중세 철학 보다는 근대나 현대 철학에 관심이 많기에 하편부터 읽었다. 하편은 니체부터 시작한다. 여기에는 철학사에서 누누히 보아온 현대철학자들이 줄줄이 나열된다. 근데 다른 현대철학자들을 다룬 철학사와는 좀 결이 다르다.


프로이트, 라캉, 데이비슨, 설, 데넷, 차머스 등은 다른 철학사 책에는 거의 볼 수 없는 철학자들이다. 프로이트와 라캉은 정식분석학자들인데 여기 포함된 이유가 이 책이 마음(심신)에 대한 철학사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당당히 재미철학자 김재권이 한 챕터를 장식하고 있다. 물론 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 소장학자들이 엮어낸 책이기에, 그리고 심리철학 분야이기에 김재권이 중요 철학자로 선택된 듯도하다. 하지만 데이비슨이 한 장을 차지하고 있기에 김재권이 들어가는 건 당연한 순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부수현상론 시비에 대한 김재권과 데이비슨 간의 논쟁때문이다. 수반이론을 여기서는 부수현상론이라고 하는 듯한데, 어쨌든 김재권이 데이비슨의 무법칙적 일원론이라는 주장(정신 속성을 인과적으로 무력하게 하는 부수현상론)을 반박하고, 이를 데이비슨이 재반박한 논문으로 학계에서 유명해진 논쟁이다.


그러니 심신문제에서 데이비슨을 선택한다면 김재권은 반드시 검토해 보아야할 철학자인 것. 김재권은 미국 현대철학사 그것도 심리철학 분야에서 매우 탁월한 업적을 쌓은 미국철학자이다. 그래서 어찌보면 여기 포함되는 게 당연한 듯하다. 문제는 그가 한국철학자가 아니라 미국철학자라는 사실이기에 그 부분에서는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이름 자체가 쟁쟁한 서구권 학자들과 동일선상에서 다루어진다는 것이 신선하다 할 것이다.


여러 소장학자들이 참여해서 쓴 철학사여서 체계가 없을 듯하지만 마음의 문제로 한정해서 집필된 책이기에 심리철학 역사에 훌륭한 가이드라인 역할을 하고 있다. 어떤 논제로 마음의 문제가 철학사의 주요 화두가 됐는지 읽어보면 체계적으로 알 수 있을 정도. 특히나 각장 말미에 붙어 있는 '더 읽을 거리'의 서지 정보는 정말 좋다. 관련 분야의 핵심 추천 리스트 역할을 하기에.


개인적으로 한국철학사상연구소에서 펴낸 책들을 신뢰하는 편이다. 책을 읽어보면 각 분야에서 열심히 연구하는 학자들이라는 인상이 짙다. 밀도가 높으면서도 어렵지 않고 풍부한 서지 정보를 알려주는 책은 많지 않은데 서울대 철학연구소가 펴낸 책들은 대부분 이를 충족하고도 남는다.








본 책 <마음과 철학>(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8)은 그 중에서도 아주 잘 엮어낸 철학자들의 편집판. 관심있는 분들이 일독하셨으면 좋겠다. 고전적인 심신문제의 논의가 어떻게 현대철학으로 연결되어 심화되는지 그 발달 과정을 따라가 보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 될 것이라 사료된다. 마음을 바라보는 개념틀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닐까?



우리는 과연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마음의 본성에 대한 수수께끼가 풀릴 것이라는 기대감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지만 심리 현상에 대한 자연과학적 탐구의 성과는 아직 빈약하기만 하다. 그렇다면 어쩌면 지금 필요한 것은 더 정교한 수학적 모형이나 과학적 실험이 아니라 마음을 바라보는 ‘근본적으로 새로운 철학적 개념틀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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